[야구는 구라다] 이글스의 역린(逆鱗)

조회수 2016. 11. 2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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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이 통일하기까지 200년간. 중국은 혼란이 극에 달한 전국시대였다.

스스로 왕이라 칭하는 자가 사방에서 나타났다. 한편으로 난세는 탁월한 사상가를 배출했다. 한비(韓非)였다. 진시황은 “그런 인재를 만날 수만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며 흠모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저서 ‘한비자(韓非子)’ 설난편(說難篇)에 실린 얘기다.

‘용은 상냥한 짐승이다. 가까이 길들이면 탈 수도 있다. 그러나, 턱 밑에는 지름이 한 자나 되는 비늘이 하나 있다. 거슬러서 난 것인데, 만일 이것을 건드리게 되면 용은 그 사람을 반드시 죽여버리고 만다. 군주(君主)에게도 또한 이런 역린이 있다.’ 절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 왕의 노여움을 ‘역린’이라고 부르는 유래다.

사건이 발발하다

이글스가 2명의 코치를 해임했다. 2군에 있던 이홍범 트레이닝 코치와 박상열 투수코치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해임은 아니다. 코치는 1년 단위로 연장된다. 따라서 재계약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전달했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파장이 일고 있다. 여기저기서, 조금씩…. 파도는 아직 크지 않다. 그러나 잠재적인 폭발력은 상당할 것 같다. 어쩌면 거대한 쓰나미의 시작이 될 지도 모른다.

심상치 않게 보는 이유는 몇가지 팩트 때문이다. 두 코치는 전형적인 김성근 사단의 일원들이다. 40년 이상 유지된 인연이다. 그런 이들을 내보낸다는 사실부터 예삿일이 아니다.

시기적으로도 그렇다. 다른 자리 알아보기도 어려운 때다. 통보 과정도 지극히 업무적이었다. 한 자리에 있던 프런트 수뇌부가 설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구단의 방침은 운영팀장을 통해서 전달됐다.

결정적인 부분은 언질이다. 김 감독은 제3자를 통해서 이 사실을 처음 들었다. 적어도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렇다. 김성근 체제에서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까지 운영 방식으로 볼 때 그렇다.

결코 단막극이 될 수 없는 사건이다. 파장은 필연적이다. 해서 <…구라다>는 오늘 이 게임의 정체에 대해서 얘기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스탠스 정리가 필요하다. 워낙 첨예한 대립이 예상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스탠스 정리

대개 이글스나 김성근 감독 문제를 거론할 때 ‘누구편이지?’라는 흑백 논리가 전제된다. 하지만 그건 본질을 파악하는 데 별로 도움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배제돼야 할 또 하나의 관점이 있다. 잘/잘못 따지기다.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다’는 비판은 오늘의 논점이 아니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 많은 의견들로 개진됐다. 굳이 보태고 싶지는 않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바는 앞으로에 대한 것이다. 이대로 잠잠해질 것인가? 계속 파문으로 커질 것인가? 커진다면 어디까지 번질 것인가? 그런 부분에 대한 추론을 다뤄보기 위함이다.

그러려면 조금 다른 관점을 제안한다.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관람하듯. 또는 사건을 프로파일링하듯. 그렇게 관조적인 시각으로 접근해보자. (결코 사안을 가볍게 보자는 뜻은 아니다. 이해 당사자들과, 가슴이 뜨거운 팬들에게는 깊은 양해를 구하는 바다.)

두 개의 태양?

한동안 김 감독의 거취 문제가 뜨거웠다. 내년에도 하느냐, 마느냐.

아시다시피 구단의 선택은 재신임이었다. 그런데 묘한 인사가 뒤따랐다. 박종훈 신임 단장의 부임이었다. 1군 감독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아울러 육성 쪽에서도 능력을 보였던 인물이라는 평가였다.

뭔가 의미가 내포된 캐스팅이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았다. 관심이 커질무렵, 이 사건이 생겼다. 미디어들은 ‘참사’ ‘두 개의 태양’ ‘냉각 기류’ ‘마찰음’ 같은 키워드를 유통시켰다. ‘(김 감독의) 손발이 잘렸다’는 표현도 등장했다.

박 단장도 이런 시각이 편할 리 없다. 여러 미디어들과 얘기하면서 이 부분 해명에 집중했다. “프런트는 최선을 다해 감독을 서포트하는 위치다. 다만 팀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구단의 가치창출 1원칙은 성적이다. 내년에 성적을 못내면 모두가 궁지에 빠진다. 그걸 알면서 잘못되도록 협력하지 않는 미련한 짓은 안한다.”

그러나 자신의 소신도 숨기지 않았다. 1군 감독 본연의 임무에 대한 철학도 밝혔다. “부임 때 김신연 사장께서 명확하게 역할을 정해줬다. 2주 가량 구단을 돌아보니 김 감독의 팀이었다. 프런트 조직이나 의사진행등 모든 것이 그랬다. 그걸 놓는다는 것이 팔다리를 잘려 나가는 아픔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나, 이런 부분을 정리하기 위해 전문야구인을 영입한 게 구단의 뜻이다.”

박 단장의 행보는 미리 정해진, 확고한 방향성을 가진 것들이다. 따라서 일시적일 리 없다. 지속적일 것이다. 재편 작업은 이제 출발했다고 봐야 한다. 그건 곧, 훨씬 많은 '부딪힐 일'들이 계속된다는 뜻이다.

김성근 감독의 속내

결국 중요한 것은 김 감독의 반응이다. “섭섭하게 생각할 것 없다. 팀을 쇄신해야 한다니까 어쩔 수 없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외견상은 참는 모습이다. 그러나 속내는 다를 것이다. 한 매체와 통화에서 유독 이런 부분이 두드러진다. ‘스포츠서울’ 장강훈 기자가 전한 기사에서 여러차례 드러난다.

“1군 감독 본연의 역할에 집중한다는 문구가 가져온 결과가 이건가 싶어 허탈하다. 야구인, 그것도 감독 출신이 단장으로 와 내심 그동안 부족한 부분을 해소해 나갈 것으로 기대했다. 코치 인사권이 구단에 있더라도 최소한 구단 방침이라도 귀띔해줬더라면 덜 섭섭했을 것이다.”

“전력보강에 온힘을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데 왜 구단을 깨려고 하는 지 모르겠다.”

“박 단장이 일본에 왔을 때에도 ‘2군과 육성군은 알아서 하시라’고 말했다. 단장이 ‘그렇게 하겠습니다’고 할 때 코치들에게 손을 댈지도 모른다고 혼자 생각했다.”

“단장이 ‘(코치와 주요 FA선수 등을) 다 감독님께서 데려오시지 않았느냐’고 말하더라. 코치도 부족하고 부상자가 많아 전력 구상에 골머리가 아픈 상황인 데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다.”

김 감독이 전혀 감을 잡지 못했을 리는 없다. 박 단장은 얼마전 미야자키 캠프를 방문했다. 2박 3일간 일정이었다. 이 때 제법 중요한 메시지들이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역할 분담에 대해서 말이다. 당시를 설명하는 김 감독의 말 중에 눈길을 끄는 멘트 2개가 숨어있다. 앞으로 사태의 추이가 주목되는 이유다.

중요한 키워드 2개

캠프에서 이뤄진 대화다. 김 감독은 “외국인 선수를 포함한 전력보강 부문을 구단에 일임했다. 다만 박 단장에게 ‘야구인답게 행동하시라’고는 말했다. 본인도 ‘야구인으로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하겠다’더라. 지금은 나 스스로 말을 아껴야 할 때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나는 1군으로 권한이 제한돼 있다. 그룹의 방침인 지, 구단의 결정인 지는 알 수 없지만… ”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2개다. ‘야구인답게’와 ‘그룹의 방침’이다.

먼저 ‘야구인답게 행동하시라’의 의미는 무엇일까.

김 감독에게 현장(선수단)과 프런트는 양립하는 축이다. 2개의 요소를 이분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맞서서 대립하는 구도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즉, 서로 융합하고 협업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긴장과 거리를 유지하며 견제하는 관계로 설정된다.

실제로 그가 선수단 내에서 갖는 리더십의 중요한 부분은 프런트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감독님 얘기면 모든 게 OK’라는 방식이다. 현장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을 ‘간섭’이라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심지어 터부시 하던 시대부터 비롯된 뿌리 깊은 관념일 지 모른다.

그 의식 속에 구단(프런트)은 선수단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장이 최적의 상태가 되도록 쟁취하는 것이 리더의 의무라고 여긴다. 역할 분담을 후퇴, 타협이라고 못 마땅해 할 것이다. 더구나 메이저리그 방식으로 프런트가 주도하는 리더십은 결코 달가울 리 없다.

“야구인답게 행동하시라”는 말뜻은 이런 배경에서 해석돼야 한다.

구단 외에 존재하는 변수

반발이 예상되는 두번째 이유. 바로 그가 얘기한 “그룹의 방침인 지, 구단의 결정인 지”라는 부분이다.

2년전 그의 부임에는 그룹 최고위층의 의도가 담겼다. 이제껏 막강한 권한을 가졌던 배경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사장이 개편에 대한 내용을 전화로 알렸다. 그리고 신임 단장은 일본에 와서 다시 확인시켜줬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여운을 남겼다. 구단과 그룹의 뜻에 차이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암시였다.

감독의 인사권자는 구단 사장이다. 일반적으로 그렇다. 하지만 한국적 현실이 존재한다. 중요한 사안은 구단의 판단만으로 이뤄지기 힘들다. 그룹의 재가가 필요하다.

김 감독은 누구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결정적일 때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늘 그룹과 직거래를 원했다. 특히 구단 내에서 뜻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 또는 갈등이 생겼을 때 그런 성향이 뚜렷했다. 이런 방식은 가끔 승부수로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극단의 결말을 맞기도 했다.

야구판에서 ‘아는 사람은 아는’ 일화가 있다. 모 구단 재임 때다. 사장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김 감독은 사장의 인사권자인 그룹 최고위층과 직접 대면을 시도했다. 면담이나 방문 같은 형식이 아니었다. VIP가 사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장소까지 찾아가 만남을 성사시키려 했다.

결국 이 일은 역풍이 됐다. 최고위층은 절차에 대한 거북함을 드러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 감독은 꽤 괜찮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결국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평소 성격이나, 행동 패턴을 볼 때 가만히 두고만 볼 김 감독이 아니다. 계기를 만들고, 변화를 구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뭔가를 시도할 것이다. 그건 아마도 그룹이라는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나는 1군으로 권한이 제한돼 있다. 그룹의 방침인 지, 구단의 결정인 지는 알 수 없지만… ”이라고 말끝을 흐린 점이 시사하는 바다.

물론 지금 진행되는 이글스의 변화는 그룹과의 상당한 교감 아래서 이뤄졌을 것이다. 다만 그 확고함의 정도는 미지수다. 그룹이라는 큰 조직 속에는 복잡한 체계가 존재한다. 다양한 시도가 만들어질 수 있는 여건이다.

역린이라는 주제어는 군주를 떠오르게 한다. 그렇다고 김 감독이 왕이라는 뜻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박 단장을 일선에 내세운 구단 프런트를 왕으로 예단하지도 않겠다. 어쩌면 그걸 정하는 게임이 앞으로 갈등의 과정이라고 보는 게 옳을 지 모른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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