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의 스페인노트] 블랙홀에 빠진 갈락티코, 호날두만 빛났다

한준기자 2010. 3. 11.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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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마드리드(스페인)] 한준 특파원= '은하 군단 2기가 블랙홀에 빠졌다(La Galaxia II acaba en agujero negro)'

'갈락티코 군단' 레알 마드리드가 10일(현지시간)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탈락하자 FC 바르셀로나를 지지하는 카탈루냐 신문 <스포르트>가 뽑은 헤드라인이다. 세계 최고의 별들을 한 자리에 모은 레알 마드리드는 '별들의 전쟁'에서 너무도 일찍 퇴장했다.

<스포르트>의 표현대로 레알 마드리드가 불러모은 별들은 빛을 잃고 블랙홀에 빠졌다. 하지만 유일하게 빛을 발한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슈퍼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5.포르투갈)다. 호날두는 경기 시작 6분 만에 선제골을 쏘아 올리며 레알 마드리드가 8강에 갈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이끌어냈다.

호날두는 구티의 로빙 스루 패스를 받아 폭풍 같은 스피드로 문전 좌측을 파고들었고, 예리하고 강력한 슈팅으로 위고 요리스 골키퍼의 가랑이 사이를 뚫고 골망을 시원스럽게 흔들었다. 호날두는 자신을 향해 달려온 선수들에게 "가자!(Vamos!)"고 외치며 사기를 충천시켰다.

이른 선제골, 미션 수행한 호날두

호날두가 터뜨린 이른 시간 선제골은 수비 자세를 취하고 있던 리옹이 전진하도록 만들었고, 이를 통해 레알 마드리드는 전반전 내내 수월하게 상대 수비 공간을 열고 공세를 펼 수 있었다. 호날두는 전반전 내내 힘과 스피드, 기술을 겸비한 파괴력 넘치는 돌파로 상대 수비를 끌고 다니며 동료 선수들에게 매끈한 패스를 공급했다.

그는 이날 드리블을 시도하면서 한 번도 볼을 빼앗기지 않았다. 그는 공을 몰고 갈 때와 패스를 할 때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플레이 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모든 공격은 호날두를 통해 이뤄졌고, 그가 공격을 시도할 때 흐름이 끊긴 것은 단 한번도 없었다.

볼이 끊기더라도 사이드 라인 아웃을 유도해 상대에게 소유권을 내주지 않았다. 비록 전매특허인 프리킥 슈팅은 불발됐지만 그의 플레이는 어느 한 곳 나무랄 곳이 없었다. 호날두의 창조적이고 깔끔한, 빠른 타이밍의 패스는 때론 동료 선수들이 보조를 맞춰주지 못해 무산된 경우가 많았다.

한 차원 더 성장한 호날두

게다가 리옹 선수들의 신체적인 힘이 강하고 압박의 강도가 높아 무산된 기회도 많았다. 리옹의 강한 견제를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호날두 뿐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달렸고, 그 힘과 스피드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유지됐다. 어린 나이에도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춘 호날두는 시종일관 선수들의 분발을 촉구하며 그라운드 위에서 리더 역할을 했다.

이날 경기의 스페인 주관방송사였던 <텔레 마드리드>의 해설자는 "호날두는 정신적으로 레알마드리드의 주장(Capitan)이었다. 그는 매 순간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 그는 엄청나게 뛰며 노력했고 동료들을 위한 플레이도 탁월했다. 그는 아주 헌신적으로 뛰었지만 동료 선수들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며 오직 호날두 만이 이번 탈락의 책임에서 면죄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평했다.

호날두 한 명만 놓고 본다면 이날 그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를 했다. 올 시즌의 호날두는 이미 세계 최고라고 평가 받았던 2007/2008시즌 당시보다 한층 더 진화한 모습이다. 그는 매우 노련해졌고 매주 더 뛰어난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 더 이상 그에게서 이기적인 플레이는 찾아볼 수 없다.

침묵한 갈락티코, 호날두만 빛났다

하지만 갈락티코 군단의 다른 선수들은 호날두의 수준을 따라주지 못했다. 특히 호날두의 짝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한 카카의 침묵은 후반전에 호날두의 침묵으로도 이어졌다. 개인 능력으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듣는 호날두지만 축구를 정말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스페인 일간지 <마르카>는 경기 후 보도한 선수 평점에서 호날두에게 7점을 부여하며 레알 마드리드 중 최고 선수로 꼽았다. <마르카>는 "6분 만에 동률을 이룬 골을 기록했다. 빨랐고 폭발적이었으며 날카로웠다. 팀이 무너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적었다"며 호날두의 활약은 충분했다고 평했다.

레알 마드리드가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영입한 선수들 가운데 몸값만큼의 활약을 해준 것은 호날두(9,600만 유로)뿐이었다. 사비 알론소(3,000만 유로)는 경고 누적으로 이 경기에 결장했고, 카림 벤제마(3,600만 유로)는 주전 경쟁에서 밀린 것도 모자라 부상으로 이 경기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카카(6,500만 유로)는 팀이 두 골을 더 넣어야 하는 절박한 순간에 감독으로부터 교체 아웃 지시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 이는 남은 시간 동안 카카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감독의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만성 스포츠 헤르니아 판정을 받은 이후 카카는 탁월한 그의 축구 감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신체적 능력을 상실했고, 더 이상 눈부신 플레이를 펼치지 못하고 있다.

카카는 이날 경기에서 단 한번 리옹 수비 압박을 넘어 천재적인 발 뒤꿈치 패스를 곤살로 이과인에게 내줬으나 이과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레알 마드리드 내에서 호날두 못지 않은 해결사로 칭송을 받아온 이과인은 세비야전에서도 두 번이나 골대를 맞췄고 이날도 골대의 불운을 넘지 못했다. 그는 1차전 리옹전과 마찬가지로 큰 경기에서 또다시 침묵했다.

호날두는 이미 레알의 전설

그러나 호날두의 몸은 강철같다. 매 원정 경기마다 모든 야유를 한 몸에 받는 정신력도 강철 같다. 그는 큰 경기에서 더 강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침묵 속에 호날두는 홀연히 빛났다. 그는 블랙홀로 빠져들어가는 갈락티코 군단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수비 수 너댓명을 상대로도 자신있게 볼을 키핑할 수 있는 호날두였지만 리옹의 문전에는 무려 9명의 선수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결국 호날두는 자신만만하던 그의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호날두는 이날 패배에 대해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이날 챔피언스리그 7호골을 넣은 호날두는 65분 당 한 골씩을 기록해 여전히 득점 선두에 올라 있다. 하지만 더 이상 호날두는 골 수를 늘릴 수 없고, 유럽 최고의 트로피도 그의 손에서 떠났다. 2010년을 다시 자신의 해로 만들고자 했던 호날두에게 남은 것은 생애 첫 라 리가 우승, 그리고 생애 첫 월드컵 우승으로 이 실패를 설욕하는 것이다. 이 역시 쉽지 않은 미션이다.

호날두는 반 년 만에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로 자리잡았다. 벌써 마드리드 시내에 호날두의 동상에 세워졌고, 그 동상이 있는 광장은 호날두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과거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었던 '축구황제' 호나우두와 같은 이름을 마킹하고 같은 등번호를 달면서 비교 대상이 된 호날두는 축구계의 새로운 본좌로 등극할 수 있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마드리드 팬들이 꿈꿨던 마법의 밤은 이날 베르나베우에 찾아오지 않았다. 오는 5월 22일에 베르나베우에서 열릴 '별들의 전쟁'은 남의 잔치가 됐다. 하지만 언젠가 레알 마드리드에게 마법의 밤이 찾아온 다면, 파티의 주인공은 호날두가 될 것이다.

ⓒBenedetta Mascalchi/BPI/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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