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용, "SUN의 쓴소리가 날 깨웠다"

안승호기자 siwoo@kyunghyang.com 2010. 12. 29.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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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기획> 임창용, 임창용을 말하다

가장 먼저 나온 답변은 어머니와 아버지, 두번째로는 김성근 SK 감독이었다. 그리고 세번째로 선동열 삼성 감독에 대한 고마움이 뒤를 따랐다.

야쿠르트와 3년간 총액 15억엔(약208억원)에 재계약하며 해외파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올라선 임창용(34)은 '야구선수 임창용'을 만든 세 사람을 꼽아달아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난 주말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임창용은 '임창용, 임창용을 말하다'라는 주제의 인터뷰에서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봤다. 인터뷰는 임창용에 대한 선입견과 속내 등이 담긴 10가지 물음에 임창용이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 중 하나가 임창용이 직접 꼽는 은인 세명. 이에 대한 답변으로 선천적으로 야구에 적합한 몸을 주신 부모님에 대한 설명은 따로 필요 없었다. 해태 신인 시절 2군 감독으로 만났던 김성근 감독은 기술적 혁명의 시기에 함께 했던 은사라고 했다. 여기에 삼성 시절, 끊임없이 자극을 준 선동열 감독의 쓴소리를 통해 전에 없었던 돌덩이 같은 각오를 가슴에 새겼다고 했다.

Q1.임창용은 사람이 좋아 야쿠르트와 재계약했나.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 때문에 이렇게 큰 결정을 한 것은 처음이다. 어릴 때는 야구 실력 하나만으로 나를 평가해주기를 바랐는데 이제는 나이도 들었고 노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게 보인다. 우리팀 투수 중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데 꽤 많은 선수들이 내게 의지하는 게 보였다. 이 팀에서는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병인데도 3년 동안 용병이라는 느낌을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 특히 최고참인 미야모토 신야와 아이카와 료지가 워낙 따뜻하게 잘 해줬다. 미야모토는 선수이지만 고참의 책임감 같은 것으로 야쿠르트의 내년을 보는 것 같았다. 우승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고 있다. 선발투수도 안정이 됐고 하니 나와 함께 우승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임창용은 계약을 놓고 고민하던 중 주장인 미야모토 신야(40)의 전화를 받았다. 야쿠르트에 남아달라는 얘기로 즉답이 없으면 한국으로 날아와 담판짓겠다는 내용이었다. 임창용은 사람을 느꼈다. 마음을 돌렸고, 자신의 에이전트인 박유현 (주)아이안스 대표도 설득했다. 야쿠트르 잔류 조건은 3년간 최대 15억엔. 요미우리의 조건과 비교하면 총액 기준으로 적어도 70~80억원은 손해봤다는 후문. 임창용은 그렇게 더 큰 부(富) 대신 사람을 얻었다.

Q2.야구선수 임창용을 만든 세 사람을 꼽자면.

"우선 부모님이다. 가족들은 내게 힘이다. 다음은 김성근 감독님이다. 해태에 입단하자마자 2군 감독으로 오셨는데 김 감독님 하고 한 6개월 동안 정말 훈련을 많이 했다. 그 시간을 거치면서 볼이 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고등학교(광주진흥고) 졸업하면서는 최고 스피드가 144㎞였는데 김 감독님과 함께 한 뒤로는 150㎞를 넘어갔다. 입단한 뒤 키도 커서 신체조건도 좋아졌지만 그보다는 투구 밸런스, 그런 게 만들어지면서 생긴 변화다. 어느 날은 일본 야구 잡지에 투수들의 피칭 연속 동작이 실린 사진을 주셨다. 옆으로 던지는 투수들의 연속 사진이었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끝으로는…, 당시에는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선동열 감독님이 내게 도움이 됐다. 정말 자극을 많이 주셨다. 자극을 받으면서 오기도 생기고 그랬다. 2005년 팔꿈치 수술 뒤 3년 동안 좋지 않았을 때 야구를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생각도 많았을 때였다. 막상 다른 것도 보이지 않던 상황에 조금 더 몸을 만들어서 참고 해보자 했는데 선 감독님께서 자꾸 자극을 주셨다.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한번은 반드시 다시 일어나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을 때다.

☞☞☞당시 선 감독은 임창용의 변화 필요성에 대해 자주 얘기했다. 팔꿈치 부상과 수술 여파 등을 감안해 변화구에 조금 더 신경을 쓰며 제구 위주의 승부로 경기를 풀어가야 승산이 있다는 조언이자 질책이었다. 이런 내용은 기자들을 통해서도 자주 기사화됐다. 임창용에게는 생생한 자극제였다. 와신상담하며 특유의 직구, 그리고 구위 회복에 더욱 매달리게 된 배경이었다고 한다.

Q3.임창용이 생각하는 임창용의 최전성기는 언제인가.

"글쎄, 구위를 보면 해태 시절이다. 97년과 98년쯤. 그때는 직구 하나 갖고도 모든 승부가 됐다. 지금은 그동안 겪은 경험이 바탕이 되고 해서 성적이 나는 것 같다. 그때는 사이드암에서도 언더에 가깝게 던졌다. 그렇게 직구를 던졌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하면 폼이 많이 변형 됐다. 옆으로 던지다가 위로 던지기도 하고…, 지금 구속이 나오더라도 예전의 직구는 아니다. 지금 던지는 직구는 때로는 일종의 변화구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임창용은 지금도 150㎞대 직구를 줄기차게 던진다. 직구 하나만을 놓고 보면 과거 빨간 유니폼을 입고 던질 때만 못하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Q4.투수 임창용은 고집스럽다. 승부욕도 넘친다. 자연인 임창용은.

"야구장밖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가끔 친구들 만나거나 후배들 만날 때 내 모습을 가만히 보면 야구장에서와는 반대 같다. 친구들 만나 식사 하고 가볍게 내기 당구라도 치게 되면 별로 승부욕이 잘 생기지 않는다. 그냥 지면 밥 한번 사면 되고 술 한번 사면 된다, 뭐 그런 생각이다. 야구장에서 만큼은 진짜 다른 것 같다. 그 말이 맞다. 고집스럽고 승부욕도 그렇다.

Q5.임창용은 빨리 잊는다. 마무리 투수로 그래서 적합한가.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뭐든 잘 털어버린다. 그렇더라도 나도 사람인데 지난 아쉬운 일들이 왜 생각이 안나겠나. 생각은 나지만 빨리 잊으려고도 노력한다."

☞☞☞마무리투수의 요건은 여러가지다. 그 중 한 가지가 '잊는 능력'이다. 어떤 마무리투수라도 블론세이브는 경험한다. 이런저런 생각에 과거에 갇혀 있다보면 다음 경기에 또 맞게 되고 결국 마무리 자리를 내놔야한다. 임창용은 다르다.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같은 대형 국제대회 대표팀을 구성하더라도 임창용이 마무리투수로 첫 손에 꼽히는 이유다.

Q6.야구 외에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

"골프할 때가 재미있다.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잔디 밟다보다 보면 잡생각도 없어지고 가슴이 뻥 뚫린다. 내가 골프선수면 몰라도 나는 골프선수가 아니다. 골프장에서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베스트 스코어로는 83개까지 쳐봤다. 그러나 자주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90~100개 사이다. 드라이버로는 300야드 정도는 보낸다. 얼마 전 후배들 하고 스크린 가서 한번 쳤는데 거기서도 한 300야드가 나왔다. 예전에는 슬라이스가 자주 났는데 이제는 훅이 난다."

Q7.야구선수 임창용이 부러워하는 선수가 있나.

"특정투수 누구라기 보다는 왼손투수가 부럽다. 왼손투수는 내가 던질 수 없는 볼을 던진다. 변화구 각이 훨씬 좋은데 특히 왼손투수가 오른손타자의 몸쪽 볼을 던지면 정말 위협적이다. 굳이 선수를 거명하자면 주니치의 첸 정도. 우리팀 이시가와는 직구 구속이 빨라야 130㎞ 중반인데도 오른손 타자 몸쪽을 찌른다. 각이 좋으니 효과적이다."

Q8.임창용은 10년 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디서 지도자 하고 있지 않겠나. 나름의 스타일이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조금은 죄송한 말씀이지만 자기만의 스타일 갖고 지도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는 않은 것 같다. 감독에 따라 그 흐름대로 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훗날 내가 지도자가 되면 당연히 감독님 말씀을 잘 들어야겠지만 내 분야에서 만큼은 소신대로 해나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공부를 더 해야겠다."

☞☞☞임창용은 은퇴 뒤 지도자를 꿈꿨다. 삼성 시절 그렸던 소극적인 은퇴 뒤 모습과는 꽤 적극적인 지도자론을 갖고 미래를 그렸다. 조금 이른 얘기지만 훗날 지도자 임창용을 기다려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Q9.임창용, 일본 뒤 다음 무대는 있는가.

"미국이다. 2년 뒤에도 힘이 있다면 미국 쪽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겠다. 2년 뒤면 내 나이 서른 일곱이다. 그때도 몸이 좋고 구위가 살아있다면 한번쯤 나가보고 싶다. 돈을 좀 덜 받더라도 그건 문제가 아니다. 그때는 가겠다. 미국 다음으로 마지막으로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뛰고 싶다. 한번쯤 국내무대에서 서서 팬들에게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지난 가을, 임창용은 메이저리그로부터도 적극적인 구애를 받았다. 야쿠르트와는 2년+1년 계약을 해둔 상태. 2년 뒤에는 아주 적극적으로 시선을 돌리겠다고 했다.

Q.10.임창용의 2011년을 미리 그려본다면.

"대부분 선수들이 돈을 많이 받으면 성적이 떨어지고 그런 경우가 많았다. 일단 '먹튀'라는 말은 듣지 말아야겠다. 그래서 스프링캠프 가서 더 열심히 할 생각이다. 또 하나는 우승이다. 요미우리나 주니치는 항상 우승 전력이다. 그런 팀에 가서 우승을 한다면 솔직히 별로 기쁘지 않을 것 같다. 3년 동안 함께 해온 야쿠트르 선수들과 함께 우승을 이룬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안승호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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