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배구의 추억 "우리는 자랑스런 성대,한대인이다"

2011. 8. 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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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체=CBS체육부 백길현기자]

※본 기사는 한양대 동문들과 한양대 배구팬의 혈압상승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경기시작 1시간 30분전. 고희진이 수건 뭉치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왔다.

벤치 자리에 하나씩 펼쳐놓으며 '후배'노릇을 한다. 현역에서는 고참이지만 이날만큼은 다르다. 그저 하늘같은 선배들을 모신 성균관대 00학번 후배일뿐이다.

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기 위해 코트 중앙에 모인 선수들은 '킹고 킹고 에스카라 킹고'를 외치기 시작했다. 잊고 있던 그 길고 긴 구호가 내 입에서도 자동 재생됐다. 그렇다. 나는 잊지 않았다. 나는 성균인이었다. 99년 한양대와의 OB라이벌전에서 '진식오빠'를 목놓아 부르던 성균인이었다. 과거 그리 촌스러워 보이던 은행나무를 딴 삼색선 유니폼, 거기에 새겨진 한자 성균관도 사랑스러웠다.

28일 장충체육관에서 추억이 꽃처럼 피어났다. 한국 남자배구를 주름잡은 두 대학이라 하면 성균관대와 한양대를 꼽을 수 있다. 두 팀의 기라성 같은 OB 스타들이 이날 한 자리에 모여서 라이벌전을 펼쳤다. 나도 선수들도 모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듯 대학 유니폼을 입고 춘계연맹전, 혹은 추계연맹전에서 결승전을 벌이듯 두 눈에는 불이 담겼다. 아웃되는 공을 잡기 위해 코트 끝까지 달리는 것도, 애매한 심판 판정이 나오면 네트를 잡고 흔들며 울분을 토하는 것도 과거와 다름없었다.

1세트 5-5로 팽팽하던 순간 한양대의 막내둥이 박준범(07학번)이 시도한 강타를 성균관대 박종찬(89학번)이 막아냈다. 과거 국가대표 센터로 척척 거미손을 내밀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OB 올스타전의 참맛이 이런 장면이 아닐까. 손맛을 본 박종찬은 포효하며 잠시 뒤 숨을 헐떡거리며 벤치로 걸어나가기도 했다.

1세트를 진 뒤 성균관대 선수들의 표정은 일제히 구겨졌다. 99년 성균관대 율전에서 열린 라이벌전의 분위기는 이렇지 않았다. 점수를 잃어도 점수를 얻어도 웃음이 만발했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신치용 감독은 이재선 주심에게 '휘슬이 너무 빠르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자리에 앉은 신치용 감독은 땀이 나는 듯 연신 부채질을 했다.

출전 선수에서도 두 팀의 의지는 엿보였다. 이날 경기는 은퇴한 OB선수 4명, 현역 OB선수 2명이라는 규정이 있었는데 양팀 사령탑은 이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오더를 내기 위해 치열한 머리싸움을 한 듯 했다. OB전의 특성상 상징적으로라도 선발에 나올법한 마낙길(성대87), 하종화(한대88)은 벤치만 달궜다.

성균관대의 희망은 현재 실업팀 현대제철에서 뛰고 있는 장병철(95학번)이었다. 장병철은 지금 프로로 복귀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통할만큼의 높이와 파괴력을 선보였다. 기대됐던 신진식(93학번)은 타점이 훌쩍 낮아진 모습. 자주 상대의 벽에 막혔다. '장사' 임도헌(90학번)의 경우 나이를 고려한다면 베스트 플레이어였다. 박종찬의 활약은 상상이상이다. 현재 성균관대 감독을 맡고 있는 그는 선수들에게 본보기를 보이듯 이날 모든 세트를 소화하면서 든든한 구심점 노릇을 했다.

한양대는 현역 국가대표인 박준범이 버티고 있었다. 주상용(02학번), 이선규(01학번)도 쟁쟁하다. 그리고 세터 카드도 많았다. 선발로 나온 손장훈(00학번) 외에도 최태웅(95학번), 한선수(04학번)등 국가대표 안방마님이 있었다. 현재 실업팀 화성시청에서 뛰고 있는 김형찬도 다크호스였다. 감각을 잃지 않고 있는 김형찬은 고비마다 블로킹을 하며 한양대의 기세를 올렸다.

한양대 배구는 90년대 이후에도 줄줄이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했다. 현역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도 차고 넘친다. 그덕에 이날 엔트리에 들지 않은 한양대출신 배구 선수들은 한양대 벤치뒤에 든든한 장벽을 이루고 서 있었다. 응원에 필요한 수건도 맞춤제작해 응원나온 이들뿐만 아니라 선수들까지 일제히 목에 걸고 있었다. 한양대는 응원단뿐만 아니라 교내 밴드도 왔다. 내내 응원가를 불렀다. 성대의 북 하나로는 역부족이었다.

한양대 선수들은 화끈한 세레머니를 선보이는 쇼맨십을 갖추고 있었다. 한양대의 최태웅은 16-20으로 뒤지던 1세트 서브 득점을 기록한뒤 한양대 응원단쪽으로 달려가 팔을 뻗어 하늘을 찌르는 우사인 볼트 세레머니를 선보여 모두를 열광케했다. 이 순간부터 흐름은 한대로 넘어간 것 같다.

듀스끝에 신진식의 공격을 블로킹으로 막아내 26-24 1세트 승리를 만들어낸 김형찬은 그대로 드러누워 다리를 달랑달랑 흔드는 미스에이의 '배드걸 굿걸' 춤사위를 해보였다. 나이 서른에 그만큼 깜찍하기도 쉽지 않을 듯 하다.

2세트 들어 한양대의 김호철 감독은 '월드스타' 김세진(92학번)을 투입했다. 꿈의 김세진-신진식의 맞불이 코트에서 실현된 것. 그러나 두 선수의 모습은 과거의 전성기와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져있었다.

점프해 뛰어 올라 공을 때리는 폼은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폭발적이었던 탄력은 보이지 않았다. 1세트의 접전과 달리 2세트는 경기의 맥이 다소 풀렸다. 1세트에서만 9득점을 하는등 맹위를 떨치던 성균관대의 주공격수 장병철의 체력이 떨어졌지만 이렇다할 교체카드가 없었기 때문.

그런데 흐름은 바뀌었다. 2세트에서 완벽히 기선을 잡은 듯한 한양대는 3세트 들어 대거 선수교체를 단행했는데 이때문인지 조직력이 흐트러졌다. 성균관대의 경우 바꿀 수 있는 교체카드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어쩌면 이는 성대에게는 3,4세트 호재였을지도 모른다.

세트스코어 0-2로 뒤지다 3세트 기회를 잡은 성대는 심판의 애매한 판정이 나오자 일제히 달려가 항의를 시작했다. 전광판에 보이는 그림을 짚어보였다. V리그 로컬룰로 존재하고 있는 비디오 판독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신청할 기세였다. 결국 성대는 기어코 3세트를 따냈다. 신진식을 비롯한 선수단은 곧장 응원단쪽으로 다가가 양팔을 돌리며 응원을 유도했다.

4세트도 비슷했다. 장병철은 고비마다 강타를 내리꽂았고 신진식의 몸도 조금씩 풀리면서 선수시절의 기량이 나왔다. 장병철은 4세트 막판 한양대의 추격이 시작될때 내리 서브에이스 두개를 내리 꽂았다. 그리고 다시 성균관대의 4세트 승리. 1,2세트까지 축 쳐져 있었던 성균관대 응원단도 후끈 달아올랐다.

마지막 5세트 분위기는 최고조로 치달았다. 점수를 낼때마다 양팀 선수들은 둥글게 코트를 돌며 분위기 몰이를 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양팀 선수들은 끝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승리는 3-2(26-24 25-18 22-25 18-25 15-12)한양대의 몫.

99년 경기에서 성대는 2-0으로 이기다 내리 3세트를 내주며 역전패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시나리오가 머리를 스쳤지만 두번째 이야기는 달리 풀어졌다. 한양대는 1,2세트후 아끼던 박준범 카드를 다시 꺼냈고 그는 현역 국가대표의 힘을 보여줬다.

졌지만 뭐 상관없다. 성균관대와 한양대의 배구팬들은 그리고 동문들은 오랜만에 뜨거워 졌으니까. 달콤하고도 짜릿한 배구는 바로 이런 맛이었다.pari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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