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LE | 김연아, 스케이트에 영혼을 담은 피겨여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김연아 특집 1
김연아, 스케이트에 영혼을 담은 '피겨 여제'
- Chapter 1. 연아야, 이렇게 성장해줘서 너무 고맙다(리틀 연아 편)
2009년 3월 31일,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인천국제공항은 모여든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한국 역사상 최초로 '피겨 여제'에 등극한 김연아(19, 군포수리고)를 보기 위해서다. 2008-2009 ISU(국제빙상경기연맹)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싱글 역사상 최초로 200점을 돌파한 김연아는 다른 선수들을 압도적인 점수 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수많은 카메라 셔터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김연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획득한 금메달을 당당하게 목에 걸고 입국한 김연아는 "이번 세계선수권은 매우 중요한 대회였다. 올림픽을 앞둔 마지막 세계선수권 대회라서 꼭 우승하고 싶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만족한다. 이번에는 컨디션도 좋았고 훈련도 잘돼 잘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팬들의 성원에 기대에 부응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늘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지녔지만 고질적인 부상으로 정상 등극을 다음으로 미뤘던 김연아는 마침내 가장 높은 자리에 우뚝 올라섰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0년 9월 5일, 경기도 군포시에서 태어난 한 소녀는 세계 피겨 사를 새롭게 쓰는 선수로 성장했다. 만 6세 때, 처음 스케이트를 접한 김연아는 신세계에 도달한 꿈 많은 소녀처럼 작은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을 질주했다.
꿈이 시작됐던 과천 아이스링크
김연아가 처음 피겨를 접할 무렵, 군포시와 가까운 과천시민회관에 아이스링크가 들어섰다. 평소 스케이트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 박미희 씨는 어린 두 딸을 데리고 과천 아이스링크를 찾았다. 두 딸 모두 스케이트에 관심을 가져서 피겨 강습반에 들었고 그 순간부터 김연아의 운명이 결정된다.
당시, 과천 실내아이스링크를 5년간 위탁해 관리하고 있던 이는 한국 피겨의 '대모' 이인숙(55) 현 생활체육전국스케이팅연합회장이다. 생활체육전국스케이팅연합회 부회장과 과천시민회관 체육센터에서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던 그는 쾌적한 피겨 훈련환경을 만들기 위해 여러모로 고심했다.
"국내 아이스링크에서 피겨가 좋은 시간에 훈련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매우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위탁 관리한 과천아이스링크만은 피겨 스케이팅의 비중을 높여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제 제자들이었던 류종현(42) 코치와 변성진(40) 코치가 과천에 있었는데 피겨 대관 시간이 늘어난 만큼, 정말 제대로 해보자는 열의가 강했습니다"
- 이인숙 현 생활체육전국스케이팅연합회장
전 아이스댄싱 전문 선수였던 류종현 코치와 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변성진 코치는 과천실내아이스링크의 피겨 지도자였다. 여기에 류종현 코치의 권유로 합류한 오지연(43) 코치가 가세하면서 과천 아이스링크의 체계적인 코칭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이 세 명의 지도자들은 각기 전문적인 분야를 나누어서 선수들을 지도했다.
"구 소비에트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피겨 환경은 매우 열악했어요. 시설을 물론, 스케이트 장비도 별로 좋지 않았는데 지도 방식은 매우 체계적이었어요. 점프와 안무, 그리고 스핀 등을 분업해서 가르치는 시스템이 인상적이었죠. 우리도 이런 점이 필요하다고 인식을 하게 됐습니다. 신채점제가 도입된 이후, 지도방식이 세분화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 이인숙 현 생활체육전국스케이팅연합회장
아이스댄싱 출신인 류종현 코치는 스케이팅 스킬과 지상 훈련이 전문분야였다. 안무와 스핀, 그리고 프로그램의 전문가였던 변성진 코치는 이 부분에 주력했고 오지연 코치는 점프와 기술을 가르쳤다.
이러한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을 당시, 1세대로 영입된 최고의 유망주가 바로 김연아였다.
"류종현 코치님이 재능이 뛰어나다고 칭찬하던 아이가 있었어요. 그 아이가 바로 (김)연아였는데 어렸을 때는 표정도 없었고 느낌이 '군인'같았어요. 어린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즐겁게 노는 모습이 있는데 연아는 그런 모습도 보기 힘들었어요. 어찌 보면 삶의 희로애락을 볼 수 없었던 아이였죠. 하지만, 시키는 것은 곧바로 잘하고 매우 예의 바른 아이였습니다"
- 변성진 코치
현재 김연아와 세계 정상을 다투는 스케이터들은 모두 기복이 심하고 점프의 정확성도 떨어진다. 그러나 김연아는 지금까지 출전한 시니어 대회에서 단 한 번도 입상권을 벗어난 적이 없다. 늘 꾸준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킨 김연아는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스케이터로 거듭났다. 이 모든 점이 어릴 때 익힌 '탄탄한 기본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류종현 코치는 스케이팅 스킬과 지상훈련을 김연아에게 가르쳤고 변성진 코치는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또한, 오지연 코치는 김연아에게 기초적인 점프를 가르쳤다.
"(김)연아라고 해서 특별한 훈련방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안 되는 것은 곧바로 넘기지 않고 차근차근 될 때까지 가르쳤죠. 또한, 당시 과천에는 국가대표선수들이 모여 있었어요. 올림픽에도 참가했던 이규현(30, 현 피겨 코치)과 박빛나(26, 현 피겨 코치) 선수가 같은 링크에 있었죠. 이 선수들의 점프는 매우 좋았는데 어린 연아는 이 모습을 보고 성장했죠. 이런 환경도 연아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 오지연 코치
젊은 3명의 코치와 꿈 많은 유망주가 쏟은 열정
열정을 지닌 세 명의 코치는 김연아를 비롯한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1997년에 있었던 모든 국내대회를 휩쓸었고 김연아라는 최고의 재목을 완성해냈다.
김연아는 이미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재목'이라고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김연아가 스케이트를 배울 초기에 이러한 환경이 없었더라면 튼튼한 기초는 쉽게 완성될 수 없었다. 기존에 잘못 배웠던 기술을 고치기 위해 애를 쓰지만 다 성장한 후에는 자신의 버릇을 쉽게 수정하기 어렵다.
김연아는 이런 과오를 반복하지 않고 주니어 시절부터 '무한대의 영역'으로 질주했다. 김연아의 기초를 완성한 지도자들은 워낙 재능이 많고 열심히 했던 선수였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줄을 감히 상상도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연아도 뛰어났지만 어머니도 정말 대단한 분이셨어요. 링크 밖에서 연아가 해야 할 일을 꼼꼼히 체크하셨고 링크에 들어오기 전에 무엇을 할지를 항상 질문해 주셨죠. 항상 대관시간에 쫓겨서 지상훈련을 충분하게 한다는 점이 쉽지 않았는데 연아는 링크 안에서 할 일도 잘했지만 링크 밖의 과제도 충실하게 수행했어요"
- 오지연 코치
"연아가 아무리 뛰어났지만 정말, 이 정도의 선수가 될 줄을 생각하지 못했어요. 연아도 열심히 했지만 코치들을 믿어주고 링크 밖에서 연아를 올바르게 이끌어주신 어머니의 공로도 대단했다고 봅니다"
- 변성진 코치
"연아로 인해 피겨의 붐이 일어나고 뛰어난 유망주도 계속 나오고 있어서 매우 기쁩니다. 척박했던 국내 피겨를 생각해 볼 때, 지금의 관심도와 저변을 보면 매우 흐뭇해지지요. 이런 일이 있도록 열심히 해준 연아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 이인숙 현 생활체육전국스케이팅연합회장
과천에서 피겨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배운 김연아는 신혜숙(54) 코치의 팀으로 자리를 옮긴다. 트리플 5종 점프의 완성과 세계주니어 대회의 도전이 이때부터 시작된다.
- Chapter 2. 나는 아사다 마오의 라이벌이 아니라 'Yuna kim'이다. 편이 계속 이어집니다.
By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