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오노가 준 아픔 덕에 국민사랑 듬뿍 받았죠

2010. 2. 2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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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국서 지도자길 걷는 쇼트트랙 전 국가대표 김동성씨

4년마다 겨울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쇼트트랙 경기가 열릴 때마다, 그리고 안톤 오노(미국) 선수가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비운의 스케이터' 김동성(30) 선수를 떠올리게 된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에서 오노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1등으로 들어오고도, 실격처리된 김동성.

그는 지금 미국 워싱턴 인근 알링턴에 있는 '포토맥 스피드스케이팅 클럽'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22일(현지시각) 워싱턴 인근 에난데일의 한 빵집에서 그를 만났다. 잠시 그를 기다리면서, '대중들의 눈에서 사라진 지 5~6년, 이제 세월의 흔적이 조금 생길 때인가'라는 생각을 했으나, 그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달변이었다.

"빙상종목 지원부족…장학재단 만들고파"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선전하고 있다.

"나도 놀랐다. 어느 정도 선전은 기대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쇼트트랙 메달은 예상했지만, 스피드 스케이팅까지 이런 성적을 낼 줄은 나도 잘 몰랐다."

-스피드 스케이팅이 이런 좋은 성적을 낸 이유는?

"선수들이 열심히 했지만, 코치진들의 힘이 크다고 본다. 오노 등 미국 선수들의 기량도 좋아졌는데, 미국팀도 한국 코치진이 지도하고 있다. 과거 스피드 스케이팅은 실외 링크에서 훈련했다. 이 때문에 바람을 맞고 해야해 체력이 무척 중요했다. 그때는 체력이 약하면 쇼트트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스피드 스케이팅도 실내 돔 안에서 훈련을 한다. 그러면서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체력보다 테크닉이 중요하게 됐다. 한국 선수들의 체력도 예전에 비해 외국 선수들에 뒤지지 않는다. 한국 선수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호석, 성시백 선수가 충돌해서 많은 안타까움을 줬다.

"나도 참 안타까웠다."

-선수 시절 이런 경험을 한 적 있나?

"사실 자국 선수들끼리 부딪치는 경우는 잘 없다. 그러나 원인을 찾아보자면, 한국 사회의 금메달만 찾는 것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호석 선수는 지난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도 안현수에 뒤져 은메달을 땄다. 이번에도 쇼트트랙의 스포트라이트는 금메달을 딴 이정수가 아닌, 이호석에게 쏟아졌다. 이호석은 '메달'을 따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금메달을 원했을 것이고, 그런 것들이 겹쳐 그런 불상사가 일어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호석이나 (성)시백이나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안현수 선수가 부상 때문에 이번에 출전을 못 했다. 안 선수는 2014년 올림픽에 출전하겠다고 한다. 2014년 올림픽에서 재기할 수 있다고 보나?

"알 수 없다. 현수가 열심히 해야한다. 스케이트는 20대 후반만 되면 체력이 떨어져 쉽지 않다. 또 이정수처럼 어린 선수들이 계속 치고 올라온다. 한국 쇼트트랙은 선수층은 두텁지 않지만, 잠재력을 지닌 선수들이 많다. 시간이 흐를수록 후배들보다 나은 성적을 내는 게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현수가 무릎을 다쳐 이번에 출전은 못 하지만, 협회 차원에서 참관하도록 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런 배려가 많이 아쉽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때, 김연아 선수는 출전도 못했다. 그런데 그때 피겨 쪽에서는 김연아에 대해 '100년, 2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선수'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때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을 참관하도록 했으면 훨씬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겠나."

-오노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오노 선수는 반칙도 문제지만, 특히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원성을 사서 듣는다.

"(웃으며) 반칙도 심판 모르게 하면, 그것도 기술이다. 오노는 그런 기술을 익힌 것 같다. 그리고 오노가 한국인들이 듣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데, 그건 미국의 인터뷰가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처럼 메달을 따도 연금을 주는 시스템이 아니다. 스폰서가 붙어야 한다. 우리 선수들은 인터뷰에서도 겸손한 자세를 보이지만, 미국 선수들은 인터뷰장에서 적극적으로 자기 선전을 해야하고, 자신감 있고 당당한 모습, 스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내가 비록 지금 2등 했지만, 나는 앞으로 충분히 1등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오노는 더 쇼잉업(Showing up)을 하는 것이다. 오노는 몇 년 전 'Dance with star'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나와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등 많은 인기를 얻었다. 나는 오노를 중학교 때부터 봤다. 오노는 그때부터 쇼맨십이 대단했다."

-오노 선수를 원망하진 않나?

"이젠 뭐…. 오노 선수 때문에 제가 상처를 받았지만, 그때 많은 국민들이 저한테 많은 사랑을 주셨다. 저한테 금메달을 만들어 선물로도 많이 주셨다.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또 지금도 오노 선수가 등장할 때마다 내가 같이 연상된다. 아마 내가 그때 금메달을 땄다면, 나는 그저 2002년 금메달리스트였을 것이다. 그런데 오노 때문에 내가 국민들에게 또 다르게 각인돼 있다. 이젠 오노한테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최절정기에 은퇴를 했는데, 그것도 오노 때문인가?

"7살에 스케이트를 시작해 그때까지 평생을 몰두했다. 그런데 2002년 오노에게 올림픽 메달을 빼앗긴 것은 감당하기 힘든 첫 시련이었다. 2002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훈련하다 3번 쓰러져 산소호흡기 신세를 지기도 했다. 평생 운동하면서 그렇게 연습에 몰입했던 적이 없다. 당시 연습 때 기록이 지금 우승하는 선수들과 비슷했다. 당연히 금메달을 따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했는데도, 심판 판정으로 인해 금메달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진절머리가 났다. 부상도 겹쳤고.

얼마전 NBC에서 그때 경기를 놓고 '8년 전 대회에서 오노가 반칙을 한 게 맞다'는 설명이 있었다. 그러나 다 지나간 일인데, 이제 와서 그러면 뭐하나? 당시에는 미국 언론에서 그런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았다." 

-은퇴 후에는?

"국제심판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처럼 안타까운 선수들이 다시 나오지 않도록.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어학연수를 왔다가, 이어 이모가 사는 애리조나를 거쳐 2007년 6월부터 워싱턴의 스케이팅 클럽에서 초청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5살, 3살된 딸과 아들이 있다) 배우는 아이들 중에 미국 전국체전에서 1등한 아이도 있고, 주니어 상비군 팀에 들어간 아이도 있다. 3월초에는 위스콘신에 있는 올해 전국체전에도 선수들과 함께 간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성인까지 40~50명을 가르친다."

-앞으로 계획은?

"미국에서 배우고 한국에 돌아가서 시작하는 애들을 돕고 싶은 생각이 있다. 장래에 장학재단을 만들고 싶다. 겨울 스포츠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스케이트 하나가 200만원이다. 유명 선수가 되기 전까지 이런 부담을 모두 부모들이 져야 한다. 돈이 없어 중도에 포기하는 선수들도 많다. 봅슬레이의 경우, 우리 대표선수가 썰매가 없어 빌려타고 그러지 않았나? 썰매 하나가 1억원이니까.

나 같은 경우도, 오노 사건이 있고 나서 기업 스폰서가 막 붙었다. 그러나 메달 따기 전에, 상비군 때 지원해 줘야 한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환한 (이)승훈이도 중학생 때부터 봤는데, 한국체대 링크장에 와서 새벽에 대학생 형들과 같이 운동하고, 중간에 있을 때가 마땅치 않아 주변에서 자다가, 오후에 형들 오면 또 같이 운동하고 그렇게 자랐다. '진흙 속의 진주'를 발굴해 이들이 어려울 때 돕고 싶은 게 지금의 내 꿈이다."

-지금 선수들에게 권하고 싶은 게 있다면?

"공부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대표팀에 들어오면서 학교 공부는 거기서 끝이 났다. 나중에 국제심판이 되려고 공부를 하려니 무척 힘이 들었다. 당장은 운동만 하는 것이 성적은 더 나을 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미국이나 일본은 운동선수들도 공부를 시킨다. 이제 한국도 선수들에게 공부를 시켜야 할 때다."

-동계 올림픽의 의미는?

"지금까지 올림픽은 여름 올림픽만 인정했다. 그러나 앞으로 경제수준이 발전하면서 앞으로 동계 올림픽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사람들의 관심도 더 높아진다. 또 한국의 경우 쇼트트랙이 치고 나간 이후로 10위권 밖으로 떨어진 적이 없고, 이번에는 스피드 스케이팅이 더해지면서 5위권까지 솟았다. 미국 방송을 봐도 '한국이 대단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새롭게 되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스포츠는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다. 1등만 하자는 건 있을 수 없다. 못할 때도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셨으면 좋겠다. 나도 처음 코치 생활을 할 때는 아이들한테 무조건 1등을 하길 고집했다. 그러나 코치 생활을 하면서 보니, 3등 정도의 기량이 있는 아이가, 2등을 했다면 이를 더 칭찬해 줘야 한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됐다."

워싱턴/글·사진 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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