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흥민아, 승우 잘 데리고 있어라

조회수 2014. 8. 1. 14: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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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민이와 함께 레버쿠젠 팀이 한국을 찾았다.

Bayer 04.이것이 레버쿠젠 팀의 정확한 이름이다.세계적인 화학회사인 바이엘이 1904년에 이 팀을 창단했다는 의미다.

이 팀에게, 나 차붐도 작지않은 선물을 해줬지만 Bayer 04도 나에게 크고 많은 선물을 해줬다.

내 인생에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칼문트'를 만난 곳, 그리고 꼬마 두리가 '쿠쿠! 아저씨'라고 부르던 '우도 보네코'를 만난 곳이다.

<당시 레버쿠젠 매니저였던 나의 베프 '칼문트'>

<두리의 쿡쿡아저씨 '우도' 내 머리숱이 많은걸 늘 부러워 하는...>

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순간인 '나의 두번째 UEFA컵'을 들었던 곳이기도 하다.지금과는 비교할수도 없는 초라한 반쪽짜리 운동장에서 이렇다할 스타도 없는 소박한 팀이 커다란 우승컵을 차지했다.5월의 초여름 밤이었다.레버쿠젠은 온통 믿을수 없는 흥분으로 흥건하게 취해있었다.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행복한 밤이다

온통 흥민이 얘기 뿐인 레버쿠젠에는 류승우라는 또 한 명의 한국선수가 있다.93년생이니까 스물두살인가 보다.지난 3월에 'SBS 스페셜' 촬영을 하러 레버쿠젠에 갔다가 흥민이만 보고 류승우를 빼먹었다.촬영팀도 정신이 없었고 나도 그랬다.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서 스태프들과 얘기를 하다보니 아무도 류승우에게 연락을 안했고 생각조차도 안한 것이다.해외 생활이라는 것이 스타플레이어들에게도 어렵지만 무명선수들에게는 더욱 힘들고 외로울 것을 빤히 알면서도 우리 모두가 시청자들에게 보여지는 장면에만 너무 몰두한 것이다.

스태프들이 한국으로 돌아간 다음 날, 아내와 함께 류승우를 만나러 레버쿠젠으로 다시 올라갔다.작고 어리기만 한 선수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분데스리가에서 성공하겠다고 저렇게 어린애가...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해졌다.저녁을 먹이고 나서 불고기 제육볶음 김치볶음...같은 음식들을 한 번씩 꺼내먹을 만큼 포장을 해달라고 해서 한보따리 들려주었지만 우리집 막내보다 어린 녀석을 두고 헤어지는게 영 마음이 편해지질 않았다.

<류승우. 일용할 양식을 한보따리 챙겨주고...>

그날 저녁,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오는 길에 본[Bonn] 쪽으로 길을 틀어서 '한길라'호텔에 들렸다.물어물어 찾고 있는데 길에서 만난 중년 부부가 그대로 있다며 자세히 알려줬다.

까마득하게 잊고 살던 곳이 어린 선수들을 보면서 다시 생각났다.1979년 내가 혼자서 그곳에 머물고 있을 때에는 아주 작은 시골 호텔이었는데 지금도 조금 늘려 붙이고 깨끗하게 정리를 했을 뿐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1979년 여름, 나는 차범근은 커녕 코리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독일이라는 나라로 건너갔다.베켄바우어가 있고 뮬러가 있으며 피셔가 골을 넣는다는,그냥 세계에서 축구를 최고로 잘한다는 분데스리가에 가고 싶었다.10년 안에 벤치에서 벗어나 운동장에서 뛰겠다는 각오로.그리고 나를 찾아줄 팀을 기다리기 위해 한달 남짓 머문 곳이 본의 변두리 허름한 호텔이었다.정확하게 말하자면 호텔이 아니라 모텔이다.행여나 나를 보자는 팀이 나타날까 기다리면서 시골의 공터를 매일 혼자서 뛰고 또 뛰었다.그러다가 공이 차고 싶으면 동네에서 모여 놀고있는 꼬마들 틈에 끼어달라고 했다.몇번 하고나니까 소문이 나서 동네 꼬마들이 그랬다."이 사람도 공을 잘차!"

하하하.

늦은 시각이라 '한길라' 호텔은 조용하고 수더분하게 생긴 아가씨만 식당을 지키고 있었다.요즈음은 어디를 가도 치안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살고 있는데, 이 아가씨는 늦은밤에 혼자서 지키고 있는 호텔을 우리가 둘러보고 또 둘러 보는대도 우리를 겁내지 않고 내 말을 신기해 하며 들어줬다.어른들의 도움이 없이는 나를 알아볼 수가 없는 20대의 직원이었다.한길라 호텔의 그때 주인은 돌아가시고 아들이 호텔을 운영 하고 있는데 지금은 휴가를 떠났다고 했다.내가 왔다 갔다고 꼭 전해 달라고 했다.호텔을 물려받은 아들의 나이를 들어보니 우리집 큰 딸하고 비슷한 또래 같은데 그래도 틀림없이 부모님들한테 많이 들었을 것이다.아마도 TV에 내가 보일 때마다 들었을지도 모른다.지금 내가 묵곤 하는 호텔들하고는 비교 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다음에 독일에 가면 꼭 한길라 호텔에서 일주일을 묵어야겠다.

<한길라 호텔에서>

이런식으로 하고싶은 일이 또 하나 생길때면 나는 괜히 즐겁다.

스타의 이름을 얻고 해외로 나가는 선수들도 있지만, 혼자 그냥 떠나서 부딪히는 선수들도 없지 않다.이들에게는 팬들의 관심도 격려도 거리가 멀다. 당연하다. 모르니까.그냥 혼자서 애쓰고 스스로 격려하고 자신에게 용기를 주면서 버텨야 한다.힘든 시간들이다.

박주호는 그렇게 성공했다.그래서 나는 주호의 성공에 더 많은 칭찬을 해주고 싶고, 고생한 대가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응원을 하고 있다.월드컵을 떠나면서 '잘하고 돌아오겠다!'고 문자를 받았으면서도 '잘해라!'는 문자를 보내주지는 못했다.

박찬호도 박세리도 다 그렇게 떠나서 홀로 성공했다.그래서 나는 온 국민들의 기대와 격려를 받고 선수 생활을 했던 시간들이 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홀로 떠나 성공한 선수들을 볼 때마다 미안하기도 하다.

홍정호랑 지동원이를 만나러 아우스부르크에 갔을때, 거기에도 아마추어에 꼬마 하나가 있었다.김진수라고 했다."감독님이 너도 빨리 나오래!"하고는 전화를 하는듯 하더니 총알같이 나타났다.그리고는 형들이랑 똑같이 스테이크 2인분을 맛있게 뚝딱 먹어치웠다.용돈도 형들보다 100유로를 더 얹어서 줬다. 하하하.

<아우스부르크에서 지동원, 홍정호 그리고 우리 꼬마. 스테이크 2인분씩 뚝딱 먹어치우고...>

월드컵을 앞두고 나와 인터뷰를 하던 독일 기자는 자꾸 물었다.아빠도 삼촌도 형도 아닌 내가 애들을 찾아가고 감독들을 만나고 하는게 신기하고 익숙치 않은 모양이었다.오지랖인가??? 하는 생각도 들기는 했다.하하하.

어제 세월호가 있은 후 처음으로 골프를 했다.밤늦게 집에 왔더니 두리가 내려와서는 '판 마르바이크'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유력한 것 같다고 했다."판 마르바이크가 누구냐?""아!!! 아빠가 천수때문에 나랑 가서 만났었잖아요!!""아!!!!"천수가 네덜란드에 있으면서 너무 힘들어 할 때, 내가 두리를 통역으로 데리고 가서 감독을 만났던 적이 있다.천수의 장점을 많이 설명했더니 그는 내말을 아주 진지하게 잘 들어줬던 좋은 기억이 있는 감독이다.그리고 천수에 대한 기대가 자신도 크다고 얘기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두리 말로는 '점잖은 감독'으로 평이 좋다고 했다.아무래도 지금 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위기는 두리가 나보다 훨씬 더 잘 안다.

세상은 정말 좁다.축구를 하는 이 세계는 정말 더 좁다.한명만 건너면 모두 친구다.그래서 나는 두리에게뿐 아니라 유럽에 나가있는 선수들에게 친구를 많이 만들라고 자주 얘기한다.

내가 선수생활을 할 때에는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어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또 다른 생각이다.친구가 없으면 레버쿠젠이나 프랑크푸르트 같은 도시는 물론이고 독일을 찾을 고리가 없어지고 만다.내가 가면 항상 그 곳에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많은 친구들.갈 때마다 모여서 웃고 떠들 그 친구들이 없다면 내가 그렇게 독일을 자주 가지는 않을 것이다.친구들이 자꾸 늙는다.아프고 수술하고...그리고 더이상 만날 수 없는 친구들이 자꾸 생겨난다.

요즘처럼 선수들이 자주 이적을 하고 거래[?]되는 축구시장에서는 일생을 함께 공유할 친구를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한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또 인터넷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은 TV도 드라마도 다 실시간으로 보는 수준이라니, 친구가 없어도 혼자서 지내는게 별 힘들지는 않은 것 같다.그래도 나는 우리 선수들이 마음으로 서로 보고 싶어하는 친구 몇은 독일에 두고 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흥민아!승우 잘 데리고 있어라.지난번 밥 먹이면서 승우가 너무 안타까워 보여서 "운동장에서 절대 기죽지 말라!"고 계속 일러줬는데... 내가 너무 과했나?

<기죽지마!!>

연습경기에서 빨간 딱지를 받는 바람에 이번에 한국에 들어와서 경기를 못한 이유가 나 때문인가???승우도 9월에 레버쿠젠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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