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의 따뜻한축구] 소중한 우리들을 잘 부탁합니다.

조회수 2014. 5. 24. 12: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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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는 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의 초대로 월드컵을 중계하는 방송국의 스태프들이 모두 모였다.

축구인이라면 당연히 들떠있어야 하는 시기이지만, 차분한 것을 넘어 말그대로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은 탓에 중계팀을 대표로 한마디 했는데 요즈음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세월호 얘기를 꺼낸 것도 분위기를 더욱 가라앉게 한 것도 이유였다.

나의 경험 부족이었다.

지난 4월, 독일 여행을 다녀오면서 따뜻한 축구에서 하고싶은 얘기가 너무 많이 쌓여서 이번에 들어가면 매일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귀국하고 나니 우리 모두가 너무 엄청난 일 앞에 서게 되었고, 나 자신도 가라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한달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독일에서 선수생활을 하고있을 때, 당시 교통부 장관님이 나를 보러 일부러 경기가 있는 뮨헨까지 온 적이 있었다. 본인도 축구를 하셨고 나를 참 많이 아껴주시던 분이어서 가까운 사이였고 그분은 군인 출신이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즈음 하시는 일을 얘기해 주다가 이북사투리로 한마디 하셨다.

"경제장관 회의라는걸 정기적으로 하는데 내가 경제를 알긴 뭘 알간?"

그때 잠깐 생각했었다. 장관은 적어도 그 분야에서는 최고의 달인[?]이라야 하는거 아닌가?

이번에 슬픈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자신있게 이 일을 내다보고 계획하고 밀고 나가는 그런 곳이 어디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누구도 믿고 귀기울일 데가 없었다. 무수히 많은 직책이 있을터인데도 이 일을 우리들에게 예측해 주고, 그래서 가능한게 무엇이며, 어디까지는 포기해야하고, 어디까지는 불가능하며, 최선의 방법은 이 것이다! 라고 자신있게 알아듣도록 설명을 해주는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답답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야? 묻지 않을 수 없는 40일 여의 시간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보람이 있어서 세상돌아가는 일 아무것도 몰라도 이 것 만큼은 나한테 물어보라는, 그런 자부심 가득한 전문가 아쉬웠다. 정말 많이 아쉬웠다.

내가 독일에 있을 때 몇번 만났던 manfred heun 이라는 함부르크 기자가 있었다.

독일의 경우 보통 기자들은 자기 지역의 팀들을 관리하는데 특집이나 기획물인 경우는 타지역의 스타들도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우리집을 찾아온 그 기자는 낡은 가죽자켓을 걸친, 독일에서 흔히 보는 그런 소박한 모습의 중년이었다.

그런데 그가 너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고 친구기자가 알려줬다. 아침 일찍 편집회의에 나타나지 않아서 연락을 했더니 혼자사는 그가 문앞에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심장마비였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얘기지만 독일사람들은 유서를 써놓고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유서에는 '나의 저축을 독일축구협회 유소년을 위해 써달라'고 적혀있었다.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큰 감동이었다. 독일축구를 사랑하는 마음, 그때 처음으로 '독일 축구는 선수 감독뿐 아니라 이 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축구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제 시간이 흘러서 나와 함께 지지고 볶던 기자들은 거의 현역에서 은퇴를 했다. 머리가 듬성듬성하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인, 날카롭던 눈빛도 적당히 바랜듯한 그런 연금생활자가 되었다.

그들과 만난지 35년여가 지났다. 그들은 평생을 축구만 보고 축구기사만 쓰면서 살아왔다. 보직이 바뀌는 일 같은 것은 없다. 승진 같은 것도 그들에게는 그리 절실한 바람은 아니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낡은 핸드폰과 두꺼운 노트북을 들고 운동장에 나타난다.

은퇴한 그들이지만 축구가 없는 노후는 상상하지 못한다. 그러다 나같은 옛친구가 운동장에 나타나면 서로 변한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 한다. 축구판에서 잔뼈가 굵은 ,예순이 넘는 노기자가 쓰는 축구는 젊은 기자들의 그것과 같지 않다. 몇년마다 보직이 바뀌는 우리기자들이 쓸수 있는 그런 깊이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들을 함부로 말하거나 대하지 않는다. 기자라기 보다는 감정적 동료다. 그러나 우리나라 운동장에는 단 한명도 그런 기자가 남아있지 않다. 평생 자기가 좋아하는 기사만 쓰고 살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다. 또 후배들과 함께 현장에서 뛰는 것 보다는 데스크를 보는게 승진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우리사회의 문화다. 출세와 성공. 우리사회에서 이것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와 아이의 평생 목표이고 과제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크게 모자라지 않는 사람들도 힘에 겨워하고 불안해하며 산다. 만족하는 순간 도태된다는 위기감일까?

출세를 부추키지도 않고, 가지지 못한 것을 크게 못난짓이라고 여기지도 않는, 그래서 치열해 보이지 않는 독일사람들을 보다보면 답답한 면도 있다.

그러나 튼튼하게 각자 자기가 하는 일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런 소박한 모습에 독일의 저력이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 생각은 우리의 사는 모습이 화려해 질수록, 내 나이가 점점 쌓여갈수록 더 확실하게 느껴진다.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우리 젊은이들을 볼때면 부러움으로 바뀐다.

자부심으로 벽돌을 쌓고 , 페인트 칠을 하며, 닭을 키우고, 가게에서 옷을 팔며, 푸추간에서 소시지를 만드는 사람들. 이들 각자의 소박한 자부심을 북돋아주고 아껴주는 일, 이게 독일사회가 지향하는 정치인 것 같다. 이들이 없이는 이 사회를 지탱할 수는 없는 아주 쉬운 이유에서 일 것이다.

나는 요즈음 부쩍 모든 분야에서 달인수준의 전문가들이 이런 우리들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우리가 무엇을 하더라도 최고의 실력을 가진 달인들이 구석구석 곳곳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끌고가주는, 그래서 우리는 무슨일이 생기면 그들이 하는 말과 결정을 신뢰하며 믿을수 있는 그런사람들이 높은자리에서 우리들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당연한 바람을 가진다.

'나는 장관으로서 이 분야를 책임질 만큼 전문가가 아니라서 장관직을 사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멋진 일인가?

거기다 Manfred heun 처럼 자기분야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까지 함께 라면 얼마나 멋질까!!

[독일에 있는 친구기자에게 Manfred heun 사진을 찾아보라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안옵니다. 아쉽습니다.]

축구만 하는 놈이 지가 뭘 안다고!

너 정치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해?

이런 비난 오늘은 감수해야겠다.

이제 월드컵으로 돌아아야 하는 시간을 피할수 없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꼭 담고 가겠습니다.

우리모두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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