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의 타인의 시선] K리그, '경기력 지상주의'와 이별하자

조회수 2015. 2. 28. 11: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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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만 잘하면 팬은 모이게 돼 있다"

K리그 위기설이 흘러나올 때마다 많은 이들이 해답으로 제시하는 답안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축구도 하나의 상품이라고 한다면, 좋은 상품을 만들면 많은 이들이 찾기 마련 아닌가. 하지만 이 말은 반만 진실이다. K리그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

경기력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와 같은 경기력을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EPL을 보면 재미 있는데, K리그는 졸리기만 하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잣대로 K리그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아시아에서 K리그보다 경기력이 좋은 리그를 찾을 수 있을까? K리그는 아시아 최상위급이다. 기록도 이를 증명한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에 5년 연속 소속팀을 내보냈다.

"그래도 EPL보다는 떨어지는 거 아니냐. 그러니 관중이 없다"라고 말한다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이런 논리에도 허점은 있다. EPL은 물론 K리그보다 확실히 리그의 평균 경기력이 떨어지는 호주와 동남아시아의 흥행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동남아시아는 한국보다 EPL의 인기가 더 높다. 그래도 관중석이 들어찬다. 호주는 자국 내 스포츠 중 축구의 순위가 한국보다 더 낮지만 평균관중은 약 2배(1만 3천명) 정도 더 많다. 결국 경기력과 관중의 상관관계는 완벽한 정비례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경기력을 높이는 게 K리그를 살리는 정도는 아니다. 여전히 평균관중이 8천명이 되지 않는 K리그 현실이 그 증거이기도 하다. 여전히 절대적인 가치로 인정받고 있는 경기력과 그 영향력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어떤 병에 듣지 않는다면, 다른 약을 찾아봐야 한다.

K리그의 진짜 문제는 경기력이 아닌 운영철학의 부재다. 쉽게 표현하면 축구로 돈을 벌겠다는 의지가 약하다. 승강제가 도입되면서 조금 목표가 다양화되기는 했지만, 6강 플레이오프가 벌어질 때만해도 모든 팀의 목표는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었다. 6강 플레이오프 진출 후에 우승을 노리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팀들이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고, 결과적으로 다른 부분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선수들의 연봉은 리그 흥행에 관계없이 높아지기만 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기력에 초점을 맞추면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J리그를 경험한 선수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가 있다. K리그는 너무 팬들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 주빌로이와타와 감바오사카에서 뛴 이근호는 "훈련이 끝나면 훈련장에 온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게 일반적인 일이다. 관내 학교를 돌면서 아이들에게 표를 나눠주는 일도 있었다. K리그에 있을 때는 이런걸 해야 한다는 걸 잘 몰랐다"라고 했다. 당연하다. "경기력에 영향이 가"기 때문이다.

ACL과 같은 클럽대항전이 끝난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가면 각 리그의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한국 팀은 조금만 인터뷰가 길어지면 홍보팀 직원 혹은 코치들이 나서서 이를 제지한다. 다른 선수들이 기다리고 있고, 선수의 몸이 식어서 컨디션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다른 나라 팀들은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비행기 시간이 급한 게 아니라면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는다.

인터뷰는 언론이 아닌 팬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경기를 볼 수 있는 팬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팬들은 기사(신문, 인터넷, 방송)를 통해 궁금증을 해소한다. 언론과의 관계가 아니라 팬들과의 관계에 방점을 찍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 더 예를 들기에도 미안할 정도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이런 약속을 잘 지킨다. 호날두는 패한 날도 30분 이상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터뷰는 프로축구선수의 의무인 셈이다.

경기력이 지상과제가 되면 팀 운영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K리그 구단 홍보팀 직원들은 항상 진땀을 흘린다. 무엇을 준비하든 감독과 선수단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팬과의 만남과 같은 행사, 인터뷰를 모두 감독에게 허락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구단도 있지만, 이는 K리그에서 일반적인 일이다. 감독과 구단 홍보팀은 상하관계가 아니다. 엄연히 하는 일이 다르다. 감독이 홍보팀에 지시를 내리는 게 정상은 아니다. 이기는 게 중요하지만, 팬들을 모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날릴 이유도 없지 않나.

기업구단이든 시민구단이든 할 것 없이 대표를 수시로 교체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2015시즌을 앞둔 23개 구단 중 이미 8개의 구단이 신임대표체제로 운영되고 있고, 상주상무도 새 대표를 기다리고 있다. 한가지 철학을 가지고 팀을 운영하는 것보다 우승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대표의 전문성까지 따지지 않아도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선장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기 마련이다. 반면 경기력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표가 바뀌어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K리그에 필요한 것은 장기적인 계획과 일관된 실천이다.

K리그 구단들은 몇 해 전부터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소년 육성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좋은 선수를 수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미래의 축구팬을 키우는데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이런 방향성은 대표가 바뀌면 유지되지 않을 경우가 많다. 임기가 짧은 K리그 구단대표는 유소년 정책 보다는 성과를 보일 수 있는 팀 성적에 더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대표의 임기가 짧고, 전문성이 없으니 이런 일이 일어난다.

좋은 축구는 팬을 부른다. 선수와 감독은 좋은 경기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거기까지다. 감독은 경기력 부분만 신경 써야 한다. 선을 넘으면 안 된다. 그리고 구단의 나머지 직원들은 선수들의 경기력이 아닌 팬과 흥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K리그는 프로축구리그다. 해마다 열리는 K리그 개막미디어데이에서 감독과 선수들이 입을 모으는 것처럼 "프로축구는 팬들을 위해 존재"한다. 우승과 좋은 경기력은 팬을 모으기 위한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이게 전부가 돼 버리면 K리그의 미래는 어둡다. 우리는 이미 그 실패를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보고 있다. 2015시즌 개막이 일주일 남았다. 이제 경기력 지상주의와 이별하자.

글= 류청 기자(풋볼리스트 취재팀장)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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