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네덜란드]네덜란드가 이 악물고 뛴 이유, 처절했던 역사가 있었다

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2014. 6. 1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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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단지 5-1이라는 큰 스코어로 이겨서, 4년전 자신들의 월드컵 우승을 좌절시킨 설욕을 해서가 아니었다. 네덜란드 선수들이 스페인전 승리 후 더욱 환호한데에는 처절했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14일(이하 한국시각) 브라질 사우바도르의 아레나 폰테 노바에서 열린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B조 첫 경기에서 사비 알론소에게 PK골을 먼저 허용했음에도 판 페르시와 로번의 두골에 힘입어 스페인에 5-1로 완승했다.

두 팀은 4년 전 2010 남아공월드컵 결승전에서 격돌해 연장전에 터진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결승골로 스페인이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4년만의 리턴매치로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경기였기에 네덜란드 선수들이 열심히 한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600여년 전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3세기 말 네덜란드의 부르고뉴가의 필리프 선공(善公)이 현재의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 전역을 지배하였다. 그후 필리프의 손녀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와 혼인관계를 맺게 되어 네덜란드는 합스부르크가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합스부르크가가 인척관계에 있는 스페인 왕가로 계승하자 1515년부터는 스페인의 통치를 받는다.

네덜란드는 1517년의 종교개혁에 따라 신교를 믿었는데, 카를 5세와 그 뒤를 이은 펠리프 2세는 종교재판소를 마련하고 신교도를 탄압하며 카톨릭을 믿도록 하자 이에 오란냐가 윌리엄공의 지휘하에 독립투쟁을 전개하여 1581년 부분 독립을 쟁취했다.

스페인도 완강해 쉽게 네덜란드 측에 함락당하지 않아 1618년부터 30년 전쟁이 벌어졌으며, 1648년에 와서야 스페인으로부터의 네덜란드의 완전독립이 승인됐다.

이렇게 힘겹게 독립을 쟁취한 네덜란드는 오란냐 가문을 왕으로 추대하게 되고 이 오란냐를 영어로하면 오렌지이고 이에 현재 네덜란드 대표팀의 전통색인 오렌지 색이 굳어지게 됐다.

즉 스페인을 상대로 벌였던 독립전쟁의 산물이 네덜란드이면서 오렌지 유니폼인 셈. 네덜란드가 이날 경기에서 더 열심히 뛰고 5-1 완승에 너무나 기뻐했던 것은 이러한 역사가 배경이 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jay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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