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오승환의 승진, 인사권자 매시니가 보여준 품격

조회수 2016. 6. 28. 16:26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오늘 얘기는 한 장의 사진으로 출발한다. 어제(한국시간 27일) 시애틀 게임이었다. 아시다시피 11-6으로 원정 팀의 승리로 끝났다.

경기 직후 외야 쪽에 있던 불펜도 퇴근 준비를 서두른다. 하나 둘, 짐을 챙겨 클럽하우스로 이동한다. 그 중 한 장면이 눈길을 붙든다. 너무나 인상적이다. 느낌표를 100개 쯤 붙이고 싶다. 전직과 현직이 나란히 걸어오는 모습이다. 대단히 놀라운 일 아닌가?

물론 가장 불가사의한 것은 전투적인 외모다. 현직이 1982년생, 전직이 1990년생이다. 그러나 얼핏보면 형/동생이 헷갈린다. 덩치도 90년생이 훨씬 크다. 겨우 20대 중반인데…. 어쩌면 저렇게 세월과 정면으로 맞서는 당당함을 유지했을까. 우리의 82년생도 결코 만만치 않은 액면가인데 말이다. 역시 빅리그가 험하긴 험한가 보다.

두번째 놀라운 점이다. 한 명은 이방인이다. 굳이 둘이 함께 일 이유는 없다. 불펜이 한두 명도 아니고, 말도 편치 않을텐데 말이다. 구태여 유진(통역 구기환씨)을 중간에 끼면서까지 저렇게 가까워 보일 필요는 없다.

게다가 어제가 무슨 날인가. 전직의 보직 해임 첫 날이었다. 대신 새로 승진한 중간 보스가 열심히 몸을 풀었다. 9회에 출근하는 파이널 보스가 되려고 말이다. 못된 해석을 붙이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장면으로도 색칠될 지 모른다.

그런데 둘이 핑크빛(?)이다. 아무리 팀 워크가 어쩌니, 케미스트리가 저쩌니 해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X 팔리고, 섭섭한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런데 없다. 너무나 자연스럽다.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오늘 <…구라다>가 하려는 얘기다.

매시니의 접근 … 로젠탈에 대한 ‘치료’

아무리 같은 팀이라도 그 안에는 편이 있고, 무리가 있다. 일단 맡은 일 때문에라도 나뉘게 마련이다. 투수는 투수들끼리, 야수는 야수들끼리 친하기 십상이다. 그 중 투수들은 또 선발과 불펜으로 그룹이 지어진다. 선발들은 각자 스케줄에 따라 별도로 움직인다.

반면 불펜 투수들끼리는 유대감이 각별하다. 아무래도 경기 내내 같이 대기하며 소통할 기회가 시간적/공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또 일(보직)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팀’이라는 인식이 훨씬 강하다.

그래서 그 내부의 인사 이동은 무척 민감한 사안이다. 더구나 그 부분이 불펜의 상징격인 마무리 투수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이번 카디널스의 보직 개편은 주의 깊게 봐야 할 대목이 많다.

인사권자인 마이크 매시니 감독은 이 부분에 있어 지극히 보수적이다. 섣부른 변화보다는 견실한 유지를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이미 5월을 지나면서 명암은 뚜렷했다. 그래도 꿈쩍하지 않았다. 구단 사상 최다 세이브 기록(2015년 48개)을 경신한 클로저에 대한 신뢰는 변함없었다. 그러나 증세가 점점 심각해지고, 급기야 끝내기 3점 홈런을 맞자 미뤘던 결정을 해야 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접근법을 택했다. ‘교체’라는 표현은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 그가 유지한 스탠스는 ‘치료’ 또는 ‘재활’이었다. “로지(로젠탈)의 마음이 무척 복잡해 보였다. 지금 당장 9회를 맡기는 게 어려워 보인다. 예전 모습을 되찾도록 우리가 그 방법을 다같이 알아낼 것이다.”

그러니까 본인이 미안하고 괴로워해서 어쩔 수 없이 보직 개편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지속적인 게 아니라 임시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어제는 두어 차례나 9회를 준비했다. 그러나 점수 차이가 커지면서 등판은 무산됐다.   mlb.tv 화면

3인 집단 체제라는 신중함

인사권자의 신중함은 후임자 캐스팅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3인 집단 체제를 언급했다. 오승환 외에 케빈 지그리스트, 조너던 브록스턴을 꼽았다.

아니, 누가 봐도 뻔한 상황인데 무슨 3명 씩이나…. 그렇지 않은가. 이력서를 들춰봐도 그렇고, 데이터를 두들겨 봐도 마찬가지다. 야구공 말고 돌 던지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무슨 집단 체제라는 말인가.

듣다 못한 현지 담당 기자(미국사람)가 역시 돌로 된 질문을 날렸다. “오승환은 이미 클로저 경험이 많은 투수다. 그로 바꿀 생각은 없는가.”

여기에 대한 인사권자의 답변은 역시나 노련한 체인지업이었다. 직구를 가장했지만 핵심은 피해 갔다. “그도 분명히 옵션에 포함돼 있다. 지금 상황에서 누구 한 명을 지목하기는 어렵지만, 오승환도 그 라인에 있는 것은 확실하다.”

물론 듣는 우리는 갑갑하다. ‘그냥 중간 보스를 파이널 보스로 한 단계만 승진시켜 주면 되는 데. 뭘 저렇게 복잡하고 어렵게 가나.’ 그런 마음들이다.

명문구단다운 품격이 드러난 인사

맞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꿔야 한다. 빨리 올라간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일단 전임자에 대한 예우가 충분해야 한다. 아무리 요즘 로젠탈탈이라고 불려도 그렇다. 최근 몇 년간 9회를 책임졌던 마무리다. 그런 투수를 쉽게 내친다는 건 책임 있는 리더의 태도가 아니다. 또, 그런 조직은 별로 가치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감성적인 이유만은 아니다. 전략적으로도 그렇다. 오승환 본인에게도 이런 방식의 전개가 유리하다.

일단 임시직이라는 타이틀이 편하다. 그리고 집단 마무리 체제로 표현되는 게 훨씬 부담감이 덜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될 문제다. 매시니 감독과 코칭스태프, 구단 프런트에서도 이런 점을 모를 리 없다.

설마 아무리 로젠탈이 예전 공을 회복했다고 해도, (지금처럼만 해낸다면) 잘 막고 있는 클로저를 바꿀 리가 없지 않은가. 그 때는 또다른 선택지를 놓고 고민할 것이다. (아마도 로젠탈이 줄곧 선발을 원했으니…)

과정에는 격식 있는 절차가 필요하다. 변화는 충분한 여유 속에 이뤄져야 한다.

카디널스는 역시 오랜 전통을 가진 명문구단이다. 그게 이번 인사(人事)에서 확인된 품격이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