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스윙으로 박병호를 비난할 순 없다

2016. 6. 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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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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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메이저리거 타자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강정호를 필두로 이대호, 박병호와 김현수까지 KBO리그 출신 타자 4명이 매일 한국 메이저리거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이 중 초반에 선전했으나 최근 부진한 박병호의 모습은 다소 안타깝다. 9호 홈런을 날릴 때까지 박병호는 타율 0.245, OPS(출루율+장타율) 0.906을 기록했지만, 이후 5월 30일까지는 타율 0.149, OPS 0.437에 그쳤다. 6월 들어서는 3일(이하 한국시간) 첫 안타 경기에, 6일 시즌 10호 홈런을 날리며 다소 살아났다.

부진의 늪이 깊어질 때 삼진과 헛스윙이 많은 박병호의 타격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시속 95마일(153km/h) 이상의 빠른 공에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부쩍 늘어났다.
하지만 박병호는 KBO리그 최초로 2년 연속 50홈런을 기록한, 확고한 자기 타법을 터득한 선수다. 이런 선수의 타격을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건 온당할까. 우선 다른 선수를 예로 들어보자.

21세기 최고의 교타자 스즈키 이치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아시아 타자는 단연 스즈키 이치로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통산 3000안타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은 논쟁 거리로 취급 받지도 않는다. 정작 논쟁은 이치로의 타격 능력에 대한 평가에서 이뤄진다.

이치로는 200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통산 타율 0.314를 기록 중이다. 탁월한 배트 컨트롤로 최고의 교타자란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이치로가 데뷔한 2001년 이후 통산 최고 타율은 홈런왕 배리 본즈의 0.325다. 천재 타자 미겔 카브레라 역시 교타자보다 장타자에 가깝지만, 통산 타율은 이치로보다 높은 0.32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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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본즈는 약물의 힘을 빌었다. 하지만 카브레라는 그런 의혹은 받지 않는다.

통산 타율 0.310의 알버트 푸홀스, 0.307의 로빈슨 카노, 0.305의 마이크 트라웃도 이치로 못지 않다. 컨택트 능력만이 아니라 종합적 완성도를 높게 평가 받는 타자들이다.

타율만 놓고 보면 최고 교타자라는 이치로의 컨택트 능력은 다른 슬러거들보다 나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본즈는 "이치로의 컨택트 능력이 나보다 한 수 위"라는 말을 했다. 타율이 아닌 '컨택트 비율'을 기준으로 한다면 본즈의 말은 옳다.

컨택트 비율은 스윙을 했을 때 공이 배트에 맞을 확률을 뜻한다. 이 기록은 통계 사이트마다 조금씩 다르게 집계된다. 그 중 ‘팬그래프’의 기록에 따르면 이치로의 통산 컨택트 비율은 89.2%였다. 본즈, 카브레라, 푸홀스, 카노, 트라웃의 기록보다 높았다. 대조군 타자들 중에선 카노가 86.5%로 가장 높았고, 트라웃이 81.2%로 가장 낮았다.

결국 안타가 되느냐 마느냐를 제외한 ‘정확도’ 측면에선 이치로의 명성이 합당한 셈이다. 물론 결과인 타율 면에서도 이치로의 정확도는 빼어나다. 21세기 데뷔한 타자들 중 통산 타율 1위는 카브레라, 2위는 이치로다.

컨택트 능력과 타격 생산성은 같지 않다

여기에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공에 배트를 아무리 잘 갖다 댄들, 안타가 되지 않고서야 결과적으론 소용 없는 것 아닐까. 컨택트 비율은 이치로가 높지만, 결과인 타율이 더 높은 본즈와 카브레라가 더 뛰어난 것은 아닌가. 타율 대신 타격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OPS를 가져와도 마찬가지다. 이치로의 통산 OPS는 0.762로 평범한 ‘똑딱이’ 타자 수준이다. 반면 카브레라, 푸홀스, 카노, 트라웃의 통산 OPS는 모두 0.850을 넘는다. 카노를 제외한 나머지는 0.950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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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이치로의 기록은 일부에서 낮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치로의 역사적인 위치로는 명예의 전당 입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치로 논쟁’은 컨택트 능력과 OPS, WAR 등의 지표로 대변되는 타격 생산성이 동일하지 않다는 시사점을 준다.

통계적으로도 이런 관점은 유효하다. 2001년 이후 메이저리그 기록에서 컨택트 비율과 OPS의 상관계수는 -0.18에 그쳤다. 사실상 두 변수 간의 상관관계나 인과관계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즉, 컨택트 비율로 타격 성적을 예상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치로가 본즈보다 더 정교하게 공을 맞췄지만 타격 생산성이 뒤쳐진 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결과다.

그래서 타자의 능력은 컨택트 비율로 평가돼선 안 된다. 컨택트 능력은 선수 개인의 고유한 DNA와도 같다. 이치로처럼 정교한 타격을 지향하는 타자는 컨택트 비율이 높다. 하지만 일발 장타를 노리는 강타자는 낮은 컨택트 비율을 감수한다. 삼진 하나와 맞바꾼 장타의 가치는 내야안타 하나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MVP와 홈런왕을 차지한 워싱턴의 브라이스 하퍼의 컨택트 비율도 75.4%에 그쳤다. 상위권과는 거리가 있다. 2014년 내셔널리그 MVP 2위, 홈런 1위에 오른 지안카를로 스탠튼의 통산 컨택트 비율은 67.8%다. 그러나 통산 OPS는 무려 0.903다. 스윙의 정교함에서 스탠튼은 이치로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더 생산성이 높은 타자는 스탠튼이다.

박병호의 낮은 정확성,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박병호는 분명 컨택트 비율이 낮은 타자다. KBO리그에서도 그랬다.

통계 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박병호의 미국 진출 전 2년간 컨택트 비율은 66.6%와 66.5%였다. 스탠튼의 메이저리그 기록보다 낮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도 이 비율은 60%대로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

KBO리그에서 박병호의 컨택트 비율은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2년 연속으로 가장 낮았다. 즉, 박병호는 리그에서 가장 정확도가 떨어지는 ‘공갈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연속 MVP급 타격 생산성을 자랑했다. 타율도 3할을 넘겼다. 박병호의 낮은 정확성은 적응의 문제보다는 자신의 스타일로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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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개별 선수의 정확성이 예전보다 크게 떨어진다면, 부진의 신호로 해석할 수도 있다. 2년 전 37홈런을 친 스탠튼은 올해 극도의 부진에 빠져있다. 올해 스탠튼의 컨택트 비율은 데뷔 이래 최악이며, 메이저리그에서도 최악이다. 자신의 스윙을 되찾아야 한다.

박병호도 비슷하다. 원래 컨택트 비율이 낮은 타자지만, 5월에는 구종을 가리지 않고 헛스윙이 더욱 늘어났다. 타이밍의 문제일 수도 있고, 구종 예측의 문제일 수도 있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결과는 확실한 좋지 않았다.

박병호의 4월이 고점인지는 알 수 없지만, 5월이 저점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박병호는 5월까지 때려낸 홈런 9개로 타격 기술과 파워 면에선 합격점을 받았다. 남은 숙제는 틀어진 나사를 다시 조이는 일이다. 6월에 부진 탈출 신호를 보였다. 하지만 반등에 성공하더라도 남들보다 낮은 컨택트 비율은 여전할 것이다. 그래서 헛스윙이 많다는 이유로 그를 깎아 내리는 건 부당한 일이다.

박기태(비즈볼프로젝트)

지속적인 스포츠 콘텐트 생산을 목표로 하는 젊은 스포츠 연구자들의 모임. 일간스포츠와는 2014년부터 협력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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