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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만의 MLB 토크] 마이너 강등보다 더 아팠던 일은?

조회수 2016. 5. 25. 08: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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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과 서길원 위해서라도 반드시 복귀할 것

미국시간으로 5월 18일, 저는 LA 에인절스 산하 트리플 A 팀에 합류했습니다. 횟수로 6년간의 노력과 기다림 끝에 입성한 메이저리그! 하지만 단, 18타석만 소화하고 마이너리그로 내려갔기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18타수 1안타 6볼넷 타율 0.056' 초라했던 제 메이저리그 기록입니다. 표면적인 성적은 형편없습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1주일 또는 10일 간격으로 불규칙하게 출전하면서 제 실력을 보여준다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이대호 선배가 제게 해준 "오랜 만에 경기에 나가 타석에 서면 투수의 공은 눈에 보이지만 몸이 이를 대처하지 못한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이따금 불규칙하게 출전해 타격감을 유지하고 제 실력을 발휘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최지만은 메이저리그에서 제대로 된 기회를 부여 받지 못하고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메이저리그에서 제대로 된 기회를 부여 받지 못해서 '한'이 맺힌 걸까요? 저는 트리플 A로 내려온 후 매일 경기에 출전하며 한국시간으로 5월 25일 기준, 타율 0.400, 1홈런 3타점 1도루를 기록 중입니다. 출루율은 0.478나 됩니다. 매일 경기에 출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5월 11일 '지명할당' 통보를 받은 뒤 에인절스 산하 트리플 A행을 결정하기 까지 일주일간의 시간은 무척 길게 느껴졌습니다. 프로에 입단한 뒤 단 한 번도 하위리그로 강등된 적이 없기에 자존심도 상했습니다. '내 실력이 이것밖에 안되나?' '야구를 그만해야 하나?' 등의 잡다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소식을 접한 뒤 SNS 등을 통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준 많은 팬들과 가족 그리고 지인들 덕분에 마음을 되잡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빌리 에풀러 LA 에인절스 단장과의 통화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에풀러 단장은 지명할당 후 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팀 상황을 설명해줬습니다. "무너진 선발진 때문에 새로운 투수를 영입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25인 로스터에서 한 명을 뺄 수 밖에 없었다"며 미안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우리는 너를 에인절스의 미래로 생각하니 다른 팀으로 가지 말고 우리와 함께 하자"며 "트리플 A에서 실력을 발휘하면 9월 콜업은 물론 그 전에라도 메이저리그로 돌아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LA 에인절스 최지만. 그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빅리그로 복귀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마이너리그로 강등된 것 보다 더 마음 아프고 신경 쓰였던 건 (서)길원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길원이는 농아인들로 구성된 충주성심학교 야구부 출신이며 이들의 이야기는 2011년 영화 '글러브'로 제작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야구선수의 꿈을 이어가고 싶었던 길원이는 국내에 기회가 없자 세계에서 유일하게 농아인 야구팀이 있는 미국 겔러뎃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워싱턴 DC 한인회와 원주 카리타스재단 등에서 경비를 마련해 줘서 가능했습니다.

제가 길원이의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2014년 이었습니다. 장애를 갖고도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제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시 저는 마이너리그 선수였고 수입이 적어서 길원이에게 야구용품 등의 도움만 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약속했습니다. '내가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면 꼭 빅리그 야구장에 초청해 주겠다'고 말입니다.

2년의 시간이 흐른 올 해, 저는 메이저리그 선수가 됐고 길원이는 미국수화과정과 학부입학시험을 통과해 대학교 야구부의 정식선수가 됐습니다. 우리 둘의 꿈이 같은 시기에 이뤄진 것입니다. 저는 구단과 협의해 올 여름 적당한 시기에 길원이를 에인절스 구장에 초대하는 것은 물론 경기 전 시구도 할 수 있도록 해줄 생각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길원이가 자신의 꿈인 '프로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계속 전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제가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면서 당분간 지킬 수 없게 됐습니다.

(농아인 최초 '프로야구선수'를 꿈꾸는 서길원. 그는 올 해 대학야구팀의 정식선수가 됐다)

길원이는 현재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국에 나가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다시 한 번 더 길원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언제가 될 지 확언할 수 없지만 길원이와의 약속은 머지 않은 시간 내에 '꼭 지키겠다'는 말도 함께 전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을 찾는 것보다 지키는 일이 더 어렵다'.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메이저리그에 입성하는 것보다 그 곳에 계속 머무르는 일이 더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살면서 누구나 '실수'와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는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저, 최지만도 이번 실패를 통해 배우고 느낀 게 많습니다. 그리고 이는 제 미래를 위한 훌륭한 자양분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전보다 더 열심히 뛰고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약속합니다. 머지 않은 시간 내에 반드시 메이저리그로 돌아오겠습니다. 그것만이 저를 믿고 성원해준 모든 분들에게 보답하는 일이고, 길원이와의 약속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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