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민 스카우트 '박병호 포스팅비 1500만달러도 생각했다'

이환범 2016. 1. 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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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민 미네소타 스카우트.(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이환범선임기자] 박병호(29)가 미국 메이저리그 미네소타에 둥지를 트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은 미네소타의 스카우트 김태민(44·미국명 데이비드 김) 씨다. 박병호의 중학교 시절부터 꾸준히 관찰한 김태민 씨는 마침내 스카우트에 성공했다. 박병호에게 고등학교 3학년 때 이미 미네소타 입단 제의를 했었다는 김태민씨는 “박병호는 이제 미네소타 선수가 됐다. 박병호와 나는 한 배를 탔다. 박병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해야 스카우트인 나도 인정을 받는다”며 미네소타의 박병호 영입에 얽힌 뒷얘기를 풀어놨다. 김태민씨는 미네소타가 박병호 단독교섭권을 따내 협상을 벌이는 동안에는 “박병호의 파워는 다 알려져있는 사실이고 강한 정신력에 높은 점수를 줬다”는 원론적인 얘기만을 했었다.

-미네소타가 박병호 포스팅금액으로 1285만달러를 써내 단독교섭권을 얻었고, 마침내 계약에 성공했다. 포스팅금액을 산정한 근거는 무엇이었나.

구단에서 박병호의 영입을 결정하고 난 뒤 구단 관계자와 모든 스카우트들이 모여 포스팅금액을 얼마로 하는 게 적정할지 회의를 했다. 다른 구단의 관심도 등 여러가지를 감안했다. 1000만달러는 넘어야한다는 게 모두의 중론이었고, 1200~1400만달러 사이와 1500만달러는 돼야 잡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고, 그 이상의 금액을 써내야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결국 구단 고위층에서 박병호에게 줄 연봉까지 합산해 구단이 제시할 수 있는 적정 금액을 산정해낸 걸로 알고 있다.

- 1200만달러도 아니고 1285만달러다. ‘85’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 그 액수면 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나?

아무도 모른다. 단장만이 알고 있는데 아직도 물어보지 못했다. 구단 프런트 사이에서도 궁금해하고 있는데 단장님이 아직 얘기를 안 하신다. 프런트사이에선 단장이 좋아하는 미식축구선수의 등번호라는 얘기부터 최소한 85타점 이상은 올려달라는 의미가 담겨있을 것 같다는 등 여러가지 추측을 하고 있다.
그 금액으로 단독교섭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확신은 할 수 없었다. 어쨌든 교섭권을 따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박병호의 에이전트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14년 말에 SK 김광현이 포스팅에 붙여졌고 샌디에이고가 단독교섭권을 얻었는데 마지막 연봉협상 과정에서 결렬됐다. 단독교섭권을 따낸 뒤 100만달러 이하의 연봉을 제시해 결국 결렬된 것으로 알고 있다. 박병호의 에이전트가 이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포스팅 응찰액만 높게 써 넣고 적정 연봉을 제시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응찰을 하지 않는 게 나을 것이라는 의사를 전달했을 수 있다.

- 박병호가 성남고에 다닐 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알고 있다. 영입결정은 언제 했나.

사실 박병호가 고등학교 3학년때 입단제의를 했었다. 당시 박병호의 아버지를 만나 의사를 전달했다. 그 때 박병호의 아버님께서 ‘박병호가 LG 리틀야구 회원 출신이고 LG를 좋아한다. LG가 1차 지명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LG가 뽑아주면 무조건 KBO에 남는다. 만약에 아니면 미국프로야구 진출을 생각해보겠다’고 말씀하셨다. 결국 박병호는 LG에 1차 지명 됐다. 이후에도 나중을 기약하며 쭉 지켜봤고, 이번에 영입하게 됐다.

- 박병호의 어떤 장점에 끌렸나?

박병호가 4년 연속 홈런왕을 하고 2년 연속 50홈런을 때린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맨 처음 영입 결정을 내린 시기는 고교 시절 4연타석 홈런을 때렸을 때였다. 나는 박병호의 모습을 중학교 때부터 관찰했고, 고교 때는 영입리스트에 올려놓고 구단에도 보고를 한 상태였다. 구단의 국제담당 스카우트 디렉터가 크로스 체크를 위해 2004년 4월 말부터 열린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를 보기위해 한국에 왔다. 그가 보는 앞에서 박병호가 4연타석 홈런을 쳤다. 당시 화순고와의 대결에서 박병호가 첫 타석에서 4구를 골라나갔다. 디렉터는 적극적인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4구를 골라나가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두번째 타석과 세번째 타석에서 초구를 공략해 연타석 홈런을 치자 “괜찮네”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리고 4번째 타석에서 다시 초구를 쳐 우중간 홈런을 쳤다. 그리고 다음 게임(휘문고와의 16강전)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쳐 4연타석 홈런을 완성했고, 박병호를 적극적으로 잡으라는 지시가 나왔다.

- 포스팅 금액에 비해 연봉이 적다는 평가들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얘기가 언론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선수계약은 비즈니스다. 보통 메이저리그에서 에이스급 투수는 1500만달러 이상, 2선발은 1000만달러 이상이다. 지명타자 및 1루수는 600~650만달러가 평균이다. 박병호의 연봉이 예상보다 적다는 얘기를 하지만 포스팅비와 합친 금액이 구단이 생각하는 선수 몸값으로 박병호에 들어가는 평균 금액은 600만달러선이다. 나쁘지 않은 금액이라 생각한다. 박병호에게는 공식 연봉 이외에 타석과 홈런수에 따른 인센티브도 따로 있는 것으로 안다.
뉴욕 양키스 존 콕스 스카우트(오른쪽)와 미네소타 트윈스 김태민 스카우트가 2004년 6월 15일 광주 무등구장에서 무등기전국고교대회 1회전인 광주일고전에 선발등판한 신일고 서동환의 투구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스포츠서울DB)
- 김태민씨는 미네소타 스카우트 신분이지만 한국사람이다. 솔직하게 박병호의 입장에서 박병호와 미네소타가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은가.

여러가지로 잘 맞는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 미네소타 팬들의 성향은 너그럽다. 필라델피아나 보스턴, 양키스 팬들과는 달리 미네소타 팬들은 적응이 더디다고 해도 쉽게 비난하거나 하지 않고 너그럽게 봐주는 경향이 있다. 감독은 레전드 출신으로 카리스마가 대단하지만 독불장군이거나 잘난 척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은퇴 말년에는 지명타자로 뛰었기때문에 병호한테 많은 조언을 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미네소타라는 팀은 역대로 새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많이 주는 팀이다.

- 구단은 박병호를 지명타자로 쓸 요량인 것 같은데 1루수로 뛸 가능성은 없는건가?

원론적인 말이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스프링캠프에서는 당연히 1루 수비와 지명타자를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예전 미네소타에 입단했던 니시오카도 2루수로 입단했지만 시범경기에서는 유격수로 나서기도 했다. 현재 1루는 조 마우어가 맡고 있는데 그는 미네소타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앞으로 3년간 매년 2600만달러를 받고 트레이드 거부권도 갖고 있다. 원래 포지션은 포수지만 2년전부터 1루수를 맡고 있는데 타율이 떨어졌다. 경쟁자가 없다보니 긴장감이 떨어진 듯한 인상도 드는데 박병호에게는 이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구단 입장에서는 박병호가 잘 하면 마우어를 긴장시키게 만드는 요소도 있어 일석이조다.

- 박병호가 어느 정도 할 것 같은가. 또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

숫자를 언급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박병호에겐 메이저리그는 이제 시작이다. 대신 미네소타 팀분위기를 전한다면 단장이 이런 말을 했다. ‘박병호는 19살도 아니고 29살이다. 더 가르치고 말고 할 게 없다.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둬라’라고 말했다. 그 말은 박병호의 멘털(정신력), 사생활, 훈련의지 등 모든 면에서 구단은 신뢰한다는 뜻이다. 한시즌 50홈런은 구장이 크든 작든, 리그의 수준차가 나든 안 나든 쉽게 나올 수 없는 기록이다. 그만큼 박병호는 인정받을 능력을 지녔고,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입증시킬 수 있다. 이런 선수가 팀에 영입됐는데 마우어도 긴장하지 않겠나.
내가 박병호에게 해줄 말은 미네소타는 숫자보다 멘털을 중시하는 팀이라는 것이다. 재밌게 자신있게 하라고 말하고 싶다. 혼자서 3할-30홈런을 치는 것보다 마우어와 경쟁해서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면 본인에게도 팀에게도 보탬이 될 수 있다.

▲김태민씨는 1971년생으로 호주에서 중·고교와 대학을 졸업했고 1993년 신고선수로 LG에 입단해 1996년까지 4년간 뛰고 은퇴했다. 은퇴 후인 1998년엔 두산에서 트레이너로 일했고, 2000년부터 미네소타 트윈스 아시아담당 스카우트를 맡고 있다.
이환범기자 whit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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