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2] 오승환은 단조롭다, 그러므로 압도적이다

스페셜 2014. 8. 1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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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스페셜9 제휴] 며칠 전이었다. 참 어설픈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출처는 일본의 야구 전문지 <슈칸(週刊) 베이스볼>이었다. 아, 물론 <...구라다>가 이 잡지 자체를 까려는 의도는 아니다. <슈칸...>은 야구 관련 잡지 중에 일본에서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한다. 역사도 깊고, 해박하고, 전문적인 주간지임에는 틀림없다. '어설프다'고 한 이유는 다만 어느 기사의, 어느 대목 하나 때문이다.

<슈칸 베이스볼>은 현재 일본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 70명을 대상으로 평점을 매겼다. 절대적인 평가라기 보다 연봉에 대비 효율성을 따진 것이었다. 여기서 오승환은 A, 이대호는 C를 받았다. 오승환은 기대치 보다 높은 활약을 보였다는 뜻이고, 이대호는 그냥 본전 정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뭐 그럴 수 있다. 관점에 따라서, 기준에 따라서, 평가야 지들 맘이니까.

그러나 문제는 이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슈칸...>은 오승환에 대해 이렇게 리뷰를 달았다. '현재까지(퍼시픽리그) 구원 부문에서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돌직구'라고 불리는 직구의 위력으로 타자를 압도했다. 단조로운 구종은 단점이다.'

얼핏 별 문제 없어 보이는 당연한 소리를 써 놓은 것 같다. 하지만 이 문장은 논리적으로 결정적인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이 글 속에 '직구의 위력으로 타자를 압도했다'와 '단조로운 구종은 단점이다'라는 말은 서로 상충된다. 왜냐하면, 결론이 '기대치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주 잘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려면 이렇게 서술돼야 한다. '오승환은 돌직구의 위력으로 타자를 압도했다. 단조로운 구종인데도, 상대는 공략하지 못한다. 그래서 구원 부문에서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라고. 즉 단조롭다는 게 단점이 아니라, 사실은 오승환의 강력함을 설명하는 가장 적합한 말이라는 뜻이다.

그의 일본 진출 때 상당수 전문가들이 이 부분(단조로움)을 가장 많이 걱정했다. 워낙 빠른 볼 위주의 패턴이다보니 정교한 일본 타자들에게 시달림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였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계속 커트 당하면서 투구수가 늘어나 피곤해질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대비해서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는 변화구를 결정구로 연마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많았다.

물론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아주 상식적이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을 뛰어넘는 어떤 압도적인 실체가 존재하기도 한다. 돌부처의 돌직구가 그렇다. 한국 리그에서 몇 년 동안 그런 위치에 있었다. 이렇다할 변화구 없이 90% 이상 빠른 볼을 던진다는 걸 알면서도 파울조차 만들지 못하는 공이었다.

과연 일본 타자들은 수준이 높아서 다를까. 6월 한달간 돌부처가 극도로 부진했다. 6경기에서 1패 2세이브 5⅔이닝 6피안타 5실점 평균자책점 7.94라는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나갈 때마다 얻어터지고, 승리를 날렸다. '일본의 수준은 역시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들 법도 했다.

이 무렵 그의 인터뷰 하나가 기억난다. 볼배합에 관한 얘기였다. "일본은 구장이 작아서 그런 지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포수가 높은 직구 사인을 내지 않는다. 바깥쪽 낮은 직구로 조심스럽게 간다." 웬만해서는 툴툴거리지 않는 돌부처지만 많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사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의 높은 직구는 헛스윙을 유도하기 좋은 구질이다. 반면 볼 끝이 무디거나, 위력이 별로라면 장타의 위험성도 높다. 때문에 한신 포수(특히 신인 우메노 류타료의 경우가 그렇다)는 안전 위주의 볼배합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조심조심 코너워크 해가면서 어렵게 승부해가는 건 성에 차지 않았다. 괜히 던지기만 어렵고, 투구수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뭔가 피해간다는 인상이 못마땅했다. 오기와 배짱, 근성으로 먹고 사는 마무리 투수인데.... 타자 눈에 확 들어오는 높은 쪽으로 빠르게 윽박질러 '칠테면 쳐봐' 하는 게 오승환다운 피칭이다.

아마 6월의 부진을 겪으면서 한신 벤치는 문제점을 발견했을 것이고, 그의 스타일대로 해줘야 한다는 답을 찾아낸 것 같다. 그게 7월 이후 반전의 계기가 됐다고 본다. 부쩍 높은 코스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파울로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만들기도 하고, 헛스윙을 끌어내기도 했다. 당연히 개인성적도, 한신의 승률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30세이브째를 올리던 어제(17일) 요코하마전이 전형적이었다. 아웃카운트 3개 중에 2개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그 삼진 2개를 보자. 마쓰모토 게이치로에게는 5개 연속 빠른 공이었다. 볼카운트 1-2에서 결정구는 몸쪽 149km짜리였다. 다음 타자 다무라 히토시도 마찬가지였다. 5개가 모두 직구였다. 카운트 2-2에서 5구째가 150km 높은 공. 다무라는 얼떨결에 배트를 내봤지만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그러니까 삼진 당한 타자 2명에 던진 10개가 모두 스트레이트(직구의 일본식 표현) 승부였던 셈이다.

그는 간혹 슬라이더도 던지고, 싱커, 투심 패스트볼도 구사한다. 하지만 소름이 돋을 만한 정도는 아니다. 그가 던지는 대부분은 아주 단순하고 원초적인 빠른 볼이다. 단조롭기 그지 없는 패턴이다. 게다가 의도적으로 높은 코스에도 마구 뿌려댄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판단할 때는 무모한 짓이다. 한방이면 분위기가 싸~ 해지는 경기 종반인데....

그런데 무서운 것은 상대가 그걸 알면서도 어쩌지 못한다는 점이다. 뻔히 눈에 보이는 코스에 직구가 오지만, 스윙이 투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야구는 복잡하고, 오묘하다. 변수도 많고, 섬세해서 지극히 미세한 차이에서 결과가 엇갈리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스포츠다. 본질은 같다. 잔수는 두터움을 이기지 못한다. 그곳은 항상 가장 강한 것이 지배하기 마련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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