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시즌2] 추신수가 '짠돌이'로 오해 받은 사연

스페셜 입력 2014. 3. 3. 09:22 수정 2014. 3. 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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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스페셜9 제휴] 훈훈한 외모의 남자 한 명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쳤다. 종업원이 가져온 계산서에는 147달러(15만 7천원)가 적혀 있었다. 훈남은 여기에 3천 달러(320만원)를 팁으로 보탰다. 종업원이 깜짝 놀라 "잘못 쓴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손님은 영수증에 '예수님을 위한 팁(Tips for Jesus)'이라고 적고 식당을 떠났다.

작년 연말 쯤 미국의 SNS를 뜨겁게 달궜던 실제 사건이다. 비단 이 레스토랑에서 뿐아니었다. 전국 곳곳에서 올라온 목격담이 60건이 넘었다. 'Tips for Jesus'의 주인공은 LA와 할리우드, 샌프란시스코 등 캘리포니아 지역을 비롯해 뉴욕, 시카고 등지에서도 나타났다. 적게는 500불(50만원) 많게는 1만불(약 1천만원)까지 팁을 나눠줬다.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수많은 추측이 나돌았다. 그 무렵 천문학적인 금액에 매각됐던 IT 기업의 공동 소유자 중 한 명이라는 설이 유력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자신이 받은 혜택을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과 나누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부터 미주 한인 사회에는 묘한 소문 하나가 떠돌았다. 추신수가 말도 못하게 짠돌이라는 수근거림이었다. 소문의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추신수 가족이 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일행도 있었다. 친분이 있는 가족과 함께였다. 고급 식당이었고, 10명 정도의 일행이 같이 먹었다. 식대는 못해도 몇 백불은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팁은 달랑 5불(5,300원)만 계산됐다.

이 사실이 전해지자 온라인 커뮤니티가 시끌시끌해졌다. 불과 얼마 전에 1억 3천만불짜리 계약을 한 사람이 팁을 고작 그만큼 놓았으니 기가 막힐 일 아니겠는가.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부터 시작해서 '세상에 짠돌이도 저런 짠돌이가 없다'는 악담이 쏟아졌다. 그러나 얼마 후 진상이 알려졌다. '계산을 한 사람이 추신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즉 '아는 분'의 초대를 받아서 갔고, 그 지인이 식사비를 지불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사건을 재구성 하면 이렇게 된다. '잘 아는 분'이 추신수와 가족들에게 밥 한번 사겠다고 했다. 호의를 거절하기 어려워 자리를 함께 했다. 물론 그 '잘 아는 분'도 재력이 꽤 되는 사람이어서 밥값을 계산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 다만 본래 팁을 후하게 주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어디를 가서 얼마를 먹든지, 5불만 놓고 오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추신수가 '팁이 적으니 내가 더 내겠다'며 나서는 것도 경우에 어긋나는 일이다. 밥 사는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는 억울하게 '짠돌이'라는 오명을 견뎌야 했다. 이제는 다행히 오해가 풀렸지만....

사실 추신수는 화끈한 통 크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는 가는 곳마다 보통 사람의 2배가 넘는 30~40% 정도의 팁을 놓고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까 100불어치 밥을 먹었다고 치면, 40불을 보태서 140불을 지불한다는 말이다. 한인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어제 추신수 선수 우리 가게 오셨는데, 팁을 40%나 주셨어요' '추신수 선수 듣던대로 매너 너무 좋아요. 화통하구요' 같은 선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서 겪는 가장 큰 문화적인 갈등 중 하나가 '팁'이다. 처음에는 '음식값 다 냈는데, 거기에 무슨 돈을 또 얹어줘야 돼'라는 의문이 든다. 또 쌩돈 나가는 것 같아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팁 때문에 수근거리고, 얼굴 붉히는 일이 부지기수다.

정해진 룰은 없다. 10%를 주면 기본은 했다고 여기고, 20%면 후하다고 여긴다. 15%가 적당하다는 말도 있다. 그것도 세전이냐, 세후냐를 따지기도 한다. 어느 것이 매너 있는 것인지는 사실 애매모호하다. 뉴욕이나 동부 쪽은 비율이 높고, 캘리포니아 같은 서부 쪽은 다소 낮다는 말도 있다. 물론 통계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서비스가 괜찮았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주고, 기분 나쁘면 그냥 가버리기도 한다(가끔은 팁 안 준다고 주차장까지 따라 나와 손님과 시비 붙는 종업원도 있지만).

참 애매하고, 자의적이고, 규정짓기 어렵다. 어찌보면 돈으로 인간의 서비스를 조절하고 평가하는 비뚤어진 자본주의의 부산물로 보인다. 그런데도 팁은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구라다>는 팁이야말로 미국 사회의 건강함과 합리성을 담고 있는 문화라고 여긴다. '친절하고 상냥해서 기분 좋은 식사를 했으니 조금 더 줄게' 같은 해석은 팁이라는 문화의 한쪽 면만 이해한 것이다. 그러면 어둡고, 끈적한 한국식 팁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팁은 여기에 '나눔'이라는 사회적인 철학을 담고 있다.

그 뜻은 이렇다. 손님은 음식값을 낸다. 이건 주인의 차지다. 그와는 별도로 팁을 지불한다. 이건 손님이 직접 종업원에게 주는 돈이다. 업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팁은 그 테이블을 담당한 종업원이 혼자 갖는 게 아니다. 그 시간 함께 일한 직원들이 공평하게 나눈다. 서빙한 사람 뿐아니라, 주방에서 일한 사람, 카운터 보는 사람까지 포함된다. 그러니까 나한테 서빙한 사람이 친절하고 고맙기도 하지만, 사실 그 식당 종업원 모두에게 준다는 뜻이다. 때문에 팁은 주인이 절대 건드리면 안되는 돈이다. 액수와 관계 없이 법으로도 보호돼 있다. 처음 한국에서 온 식당 업주들이 이 점을 잘 몰라서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즉 팁에는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 그리고 부(富)의 분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왼손 투수 랜디 존슨은 현역시절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았다. 그는 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비단결(?) 같은 마음 씀씀이로 유명했다. 소방관이나, 단골 레스토랑 종업원, 클럽하우스 청소부 같은 사람들과 친구처럼 지냈다. 그는 "야구 선수가 뭐라고 이렇게 돈을 많이 받아야 하느냐. 진짜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당신들 같은 사람"이라며 자신의 명품 슈퍼카 열쇠까지 선뜻 내준 일화가 유명하다.

비싸고 좋은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돈 많은 사람은 부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존경할 필요까지는 없다. 추신수 같이 후하게 나누며, 사회의 가장자리까지 챙기는 사람이야말로 박수와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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