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훈의 Vive o 브라질 ⑰] 브라질-칠레전이 명승부였던 이유

손병하 2014. 6. 2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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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벨루 오리존치)

[양정훈의 Vive o 브라질! ⑰]

29일 새벽(한국 시각) 벨루 오리존치에서 열린 2014 FIFA(국제축구연맹) 브라질 월드컵 16강 첫 번째 경기. 어느 팀도 승리하지 못했지만 한 팀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고, 다른 한 팀은 대회를 떠나야 했다. 골키퍼와 1:1 승부 몇 번으로 가르기엔 이후의 운명이 너무나도 다르다. 승부를 가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안된 방법이라 하더라도 분명 날이 선 칼날과 같은 잔인한 요소가 잔뜩 배어있는 승부차기. 패하지 않았으나 더 이상의 행보를 이어나갈 수 없게 된 칠레의 수장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의 눈망울엔 굵은 아쉬움 맺혀있었다. 회견장에 모인 각국 기자들의 시선은 내년 혹은 그 이후를 향했다. 홈팀 브라질에 밀리지 않고 대등한 경기를 펼친 그의 선수들이 내년 칠레에서 열릴 코파아메리카에서 얼마나 진화한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듯한 질문들을 던져댔다. 감독은 앞으로 일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또 다시 이런 아쉬움을 곱씹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뒤이어 등장한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브라질 감독의 말처럼 한번은 이기고 한번은 지는 게 승부차기라지만 썩 유쾌하지 않은 제도다.

전술이란 팀이 공동으로 목표하는 바를 이루어 가는데 필요한 약속이다. 구성원이 공유하는 이 공통의 이미지를 얼마나 필드 위에서 의도한대로 구현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경기의 성패가 좌우된다. '조직'이란 키워드로도 집약할 수 있는 필드 위 현상은, 사실 '조직'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아도 승리하는 축구를 구사할 수 있는 팀에 대적하기 위해 그렇지 못한 팀이 정밀하고 섬세하게 연구하고 실험하며 발전시켜온 결과물이다. 개인 전술이라 불리는 개개인의 능력이 탁월한 선수들이 모여 있는 팀은 다소 느슨한 공유점을 지향하더라도 폭발적 드리블과 슈팅 승부를 저돌적으로 걸어가며 원하는 결과물 '승리'를 수월하게 획득할 수 있다. 이런 팀의 대표격인 브라질을 타도하기 위해 주로 유럽 축구가 추구해온 바가 잘 짜인 전술이고, 현상으로 들어나는 조직인 것이다. 브라질과 칠레의 경기가 상당히 흥미로운 대진일 수 있었던 것은 기본이 개인 전술인 남미에서 전술과 조직의 색채를 가장 잘 머금고 있는 팀이 칠레이기 때문이다. 팀의 특징이 개인 전술로 대변되는 브라질을 맞아 조직적이고 터프한 수비로 경기초반을 이끌어 나간 칠레였다.

수비에서의 조직이란 라인과 라인, 선수와 선수의 간격 밸런스를 잘 유지해 상대가 다음 플레이로 이어나갈 수 있는 공간을 없애거나 최소화 하는 작업을 의미할 경우가 많다. 하지만 브라질처럼 개인 전술이 출중한 선수들로 구성된 팀은 '보통'이라면 다음 플레이로 이어나가는데 협소해 파고들기가 어려운 공간에서도 패스나 드리블로 이어가곤 하기에 수비 처지에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자신에게 할당된 위치나 마크맨을 일시적으로 버리고 두 명 세 명이 공격수 한 명에 따라붙어 협력해 막는 작업은 필드 위 어느 한 부분에서의 공백 가능성을 감수해야 하는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다. 협업이 성공하거나 혹은 실패해 상대 공격수가 다음 플레이로 전개해 나간다면 또 다른 포지셔닝을 빠르게 판단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수고로움이 반복된다. 동일한 전술적 기조를 수년간 대표팀에서 꾸준히 유지해온 칠레에겐 강점으로 작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 조별 라운드 세 경기에서처럼 브라질이 지향하고 있는 공격의 이미지는 네이마르를 통한 혹은 네이마르에 의한 마무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브라질을 상대하는 팀이 수비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은 당연히 네이마르의 활동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저지하겠냐는 점이다. 1:1 승부로는 대적하기 힘들 네이마르를 맞아 파울을 불사하는 강력한 몸싸움으로 대응한 칠레의 전략은 적절히 먹혀 들어갔다. 자칫 부상이 우려될 정도의 거친 파울이 몇 차례 이어지자 네이마르의 몸놀림이 다소 위축됐다. 공격의 최종 승부가 가능한 장면에서도 다소 멈칫하는 모습도 여러 번 목격되기도 했다. 잘 조직된 견고한 칠레 수비를 뚫기 위해선 신장의 우위를 활용할 수 있는 세트피스 노림수가 필요해 보였고, 마침 첫 골은 네이마르의 코너킥이 헐크의 머리를 거쳐 다비드 루이스와 수비의 발에 거의 동시에 맞고 들어가며 터졌다.

네이마르를 활용하는 공격 루트에 지체가 생기자 헐크의 개인 전술에 의한 승부와 좌우 측면 풀백의 오버래핑, 특히 마르셀루의 공격 가담이 잦아졌다. 마르셀루의 빈자리는 미드필더, 심지어는 전방의 헐크가 후방으로 내려와 커버하곤 했다. 하지만 개인 전술이 열세인 칠레로서는 중앙돌파를 노리기보다 우측면을 적절히 활용하는 전략이 효과적이었다. 마르셀루의 공백을 커버하는, '원래는' 다른 포지션인 개개인의 수비능력의 높고 낮음을 떠나 안정이 요구되는 수비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너무 빈번히 바뀌기 때문에 일시적인 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르가스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산체스에 원투 콤비네이션을 의도한 패스를 내며 공간으로 파고들자 일시에 수비수들의 시선은 바르가스의 질주에 빼앗겼다. 산체스는 리턴 패스를 내지 않고 바로 슈팅으로 연결해 동점골을 만들어 냈다. 패스 & 무브가 이끌어 내는 상승 작용의 모범과 같은 장면이었다. 바르가스가 단순히 산체스에 패스를 연결한 후 전방으로 뛰어 들어가지 않았다면 슈팅이 골로 이어졌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설령 다시 돌아오는 패스를 받지 못하더라도 과감히 뛰어 들어감으로써 골에 기여한 바가 결코 적지 않은 바르가스였다.

전후반 통들어 경기의 주도권을 주고받은 양 팀이지만 더 이상의 골은 만들어 내지 못했다. 네이마르가 막힌 브라질은 팀 전체가 공유하는 공격 전개의 이미지가 조금은 엷어 보였다. 칠레는 후반 포제션을 54%까지 늘여가며 경기 전개를 주체적으로 이끄는 모습이었으나 과감한 슈팅이 부족했던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브라질의 슈팅도 '양'에서는 앞섰지만 골과 연결될 가능성을 내포하는 전반적인 '질'의 측면에서는 칠레와 비등했다. 연장 전후반의 동적 평형 상태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축구의 신에 운명을 의탁했고 개최국 브라질이 토너먼트에 살아남게 됐다. 원정의 그라운드에서 홈팀을 맞아 대등하게 선전한 칠레 선수들은 무승부로 남게 될 1:1의 결과가 말해주듯 남미 팀이 구사할 수 있는, 개인 전술이 탁월한 브라질을 맞상대 할 수 있는 조직 축구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브라질은 8강에서 콜롬비아와 만난다. 이 경기는 개인 전술로 맞대결할 또 다른 양상의 남미 대결이 예상된다. 기다림이 흥미로울 것이다.

글=양정훈 칼럼니스트(derutan@officelfp.com)사진=양정훈, ⓒgetty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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