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의 월드컵작전판] 브라질-칠레전으로 본 스리백 전성시대

풋볼리스트 2014. 6. 29. 04:22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풋볼리스트=벨루오리존치(브라질)] 한준 기자= 포백 수비의 시대는 끝났다. 2014 브라질월드컵은 세계 축구의 수비 흐름이 페널티 박스 안을 사수하는 방향으로 정착되었다는 것을 보여줬다. 마르크 빌모츠 벨기에 감독은 한국과의 경기에서 측면은 버리고 중앙 수비에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만 집중력을 잃지 않으면 실점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현 칠레 대표팀의 기반을 만든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의 지론도 마찬가지다. 스리백 전술의 신봉자인 비엘사 감독은 수비 구역을 세로로 삼등분하여 구분했다. 측면 지역의 수비수들이 중앙으로 들어오지 말고, 중앙 지역의 수비수들은 굳이 측면으로 나가지 말 것을 엄격하게 지시했다. 전진과 후진을 통해 간격을 좁히는 것만 요구했다.

브라질전에 나선 칠레의 수비도 마찬가지였다. 풀백의 활발한 오버래핑과 네이마르의 현란한 돌파를 막는 과정에서 칠레 선수단은 공격진부터 수비진까지 전진과 후진을 시도하며 압박했지만, 한 시도 페널티 박스 안의 지역을 비워두지 않았다. 페널티 박스 안에 항상 세 명의 선수가 좋은 위치를 선점했다.

이는 브라질도 마찬가지였다. 브라질 축구는 전통적으로 4-2-2-2 포메이션을 통한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했지만, 루이즈 펠리피 스콜라리 감독은 스리백을 중심으로 한 3-4-3 포메이션을 선호한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도 브라질의 통산 다섯 번째 우승을 이끈 3-4-3 전술은 이번 대회에도 큰 변화 없이 적용됐다. 수비형 미드필더 루이즈 구스타보가 사실상 스리백에 가깝게 후방으로 내려와 플레이했다.

스리백 수비가 페널티 박스 안을 지키고 마르셀루와 다니 아우베스가 공격으로 전진한다. 둘은 2002년에 호베르투 카를루스와 카푸가 맡은 역할을 이어 받았다. 달라진 점은 다니 아우베스가 측면 공격 보다는 중앙에서 균형을 잡아주고, 오스카가 측면으로 빠져 측면 지역의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한 점이다.

네이마르는 프리롤에 가깝게 움직였다. 최전방 원톱은 네이마르의 움직임에 맞춰 칠레 수비를 끌고 다니며 미끼 역할을 했다. 네이마르는 화려한 발재간뿐 아니라 놀라운 순간 속력을 통해 칠레의 압박 수비를 흔들었다. 그러나 칠레 수비진이 문전 지역에서 꿈쩍도 하지 않으면서 돌파의 매듭을 짓지 못했다.

현대 축구에서 더 이상 수비 지역을 측면까지 넓게 커버하는 포백 수비는 효과가 없어졌다. 측면 공격수는 돌파 후 크로스가 아닌 커트인을 통한 중앙 돌파에 집중하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선 파이브백으로 변형되는 스리백 수비가 필수적이다. 이제 측면 돌파와 크로스는 풀백의 몫이 됐다.

스리백의 부활은 현대 축구가 수비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스리백 수비는 공격 상황에서 더 많은 숫자의 선수들이 공격에 가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더 많이 뛰고, 더 많은 능력을 갖춰야 한다. 네이마르와 헐크도 공을 되찾기 위해 내려와야 하고, 센터백도 때에 따라 공격으로 올라가 변수 역할을 해야 한다. 고정된 위치는 없다. 전술적으로 모두가 상황과 위치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양 팀 모두 정신적으로 강하게 무장된 경기에서 골이 터진 것은 아주 사소한 작은 순간의 집중력이었다. 전반 18분 브라질의 선제골은 칠레 수비수 메나가 문전에서 치아구 시우바의 헤딩으로 공의 방향이 바뀐 수간에 다비드 루이즈를 0.5초 사이 놓치며 공간이 열렸고, 전반 32분 알렉시스 산체스의 동점골 상황에서는 브라질이 자기 진영에서 드로인을 시도하는 시점에 득달 같이 뒤에서 달려온 에두아르도 바르가스에게 공을 빼앗기면서 발생했다.

상대에 대한 철저한 전력 분석도 이번 대회의 뚜렷한 특징이다. 브라질은 칠레 수비의 높이에 취약점이 있다는 것을 노렸다. 세트피스 공격 상황에서 신장이 좋은 최후방의 세 명이 모두 전진하고 마르셀루, 다니 아우베스, 오스카 등이 배후 커버를 위해 뒤에서 대기했다. 이들은 중거리슈팅 능력이 헤딩 가담 보다 효과적이기에 항상 뒤에 섰다.

칠레는 마르셀루의 뒷공간 커버가 브라질의 약점이라는 것을 파고들었다. 헐크가 수비 커버를 위해 분투했으나 거듭 빈 공간이 생겼다. 전반전의 동점골 상황 외에도 후반 19분 이슬라가 오버래핑에 나서 비달과 2대1 패스를 주고 받은 뒤 문전 우측을 파고들어 배후로 빼준 패스를 아랑기스가 마무리한 슈팅은 세자르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브라질을 침몰시킬 수 있었다.

후반전에는 양 팀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공격 기회가 많이 창출됐다. 브라질은 공격 상황에서 전통적인 4-2-2-2 방식으로 돌아가며 숫자를 늘렸다. 후반 전반부는 브라질이 여러 차례 득점 기회를 맞았으나 마무리에 실패했다. 후반 막판에는 웅크리고 체력을 비축했던 칠레가 맹공을 퍼부었으나 브라질의 육탄 수비에 막혔다.

연장전까지 치열한 육박전이 벌어졌다. 양 팀의 정신이 모두 강했다.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은 어쩌면 전 브라질 국민의 염원 때문이 아니었을까? 연장 후반 막판 칠레 공격수 피니야의 슈팅이 골대를 때렸고, 피니야는 승부차기 슈팅은 세자르가 선방했다. 칠레의 마지막 키퍼 하라의 슈팅이 또 한번 골대의 불운에 가로막히며 개최국이 8강에 올랐다. 경기는 그라운드 위의 선술 뿐 아니라 12번째 선수로 불리는 관중의 힘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는 사람이 한다. 위대한 전술은 위대한 정신과 함께 해야 완성된다.

현대 축구는 더 빠르고 정확하고 강해지길 요구하고 있다. 90분동안 1초라도 방심하면 그 순간 골이 터진다. 슈팅 상황에서도 0.5초만 주저해도 기회를 잃는다. 초인이 되지 않으면 월드컵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축구는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2014 브라질월드컵은 역대 최고의 경기력을 선사하며 축구를 더 매력적인 스포츠로 완성시키고 있다.

사진=풋볼리스트

Copyright © 풋볼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