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창과 방패] 기술위,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조회수 2014. 7. 20.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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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가 차기 기술위원장 선임을 준비하고 있다. 이용수 세종대 교수, 김학범 전 성남 감독, 안익수 전 성남 감독, 장외룡 전 인천 감독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용수 교수와 김학범 감독의 2파전 양상이다.

 이 교수는 2002년 한일월드컵 시절 기술위원장이었다. 당시 대표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설정했고 히딩크 감독과 싸우고 달래며 4강 신화를 쓰는데 크게 공헌했다. 한국축구가 갖고 있는 온갖 병폐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고 그걸 개선할 수 있는 방안도 역시 그의 머릿 속에 있다. 일부에서는 "색깔이 없다" "안전한 길만 택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 교수가 그동안 밟아온 행보, 보여준 입장 등을 감안하면 이런 비판은 큰 의미가 없다. 이교수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 축구 행정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김 감독은 '학범슨'이라는 별명처럼 뛰어난 전략가다. 필자는 김 감독을 "다른 감독 99명이 A라고 말해도 B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그 B가 궁극적으로는 정답이 된다"고 평가한다. 또 적잖은 지도자들이 자잘한 나무,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 편협한 부분 전술만 논할 때 김 감독은 커다란 숲, 근본적인 원인, 굵은 전체 전술을 거론하는 지도자다. 필자가 축구 기자를 15년 동안 해오면서 적잖은 지도자들로부터 관전평을 받아봤고 적잖은 지도자들과 축구 이야기를 나눴다. 그 중 김 감독이 명실상부한 최고라고 자부한다.

 이 교수와 김 감독 모두 기술위원장 후보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둘은 분명히 차별화돼 있고 나름대로 장점이 뚜렷하다. 이 교수는 행정능력이 탁월하고 대표팀을 넘어 한국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또 2002년 한일월드컵 기술위원장을 하면서 얻은 경험도 풍부하고 국제적인 감각도 탁월하다. 반면 김 감독은 시간이 날 때마다 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지도자다.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브라질 등 축구 선진국이라고 하면 안 가본 데가 없다. 다수 다른 감독들이 팀에서 경질된 뒤 또 다시 감독을 하기 위해서 로비할 때 김 감독은 짐을 싸들고 해외로 나가서 자기 연마에 공을 들였다. 그가 얻은 정보와 경험이 한국축구 전체를 위해 활용돼야 할 때가 됐다.

 둘 중 한명은 기술위원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필자는 둘 다 어떤 식으로든 기술위원회에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이용수 교수가 기술위원장이 되고 김학범 감독이 부위원장 또는 축구대표팀 수석 기술위원이 되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이 교수가 한국축구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김 감독은 축구대표팀 운영을 전담하는 식이다. 둘의 관계가 나쁘지 않고 둘 모두 견제와 균형이 가능할 정도로 합리적이다.

 이는 기술위원회를 강화하겠다는 협회 뜻에도 부합한다. 현재 기술위원회는 8명으로 구성됐다. 황보관 위원장, 최수용(금호고 감독, 광주시협회 전무), 안익수(전 성남감독), 윤종석(장훈고 감독), 정태석(분당베스트병원 재활센터장), 윤영길(한체대 교수), 김경수(공릉중 감독, 중등연맹 전무), 오승인(광운대 감독)이다. 기술위원회는 축구 대표팀만 책임지는 곳이 아니라 한국축구 전체를 이끌어가야 하는 조직이다. 그래서 축구계 다양한 인사들로 구성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 중 축구대표팀 감독을 선임하고 축구대표팀 운영에 대해 현실적인 조언과 대안을 제시할 사람은 몇몇 안 된다. 따라서 기술위원들의 숫자를 늘림과 동시에 연령대별 남녀축구대표팀을 전담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즉, 기술위원회는 한국 축구 전체를 기술적으로 이끌어가는 브레인이 돼야하며 그 중 대중적인 파급력과 상징성이 큰 대표팀을 전담할 인력이 확충돼야한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협회는 기술위원회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 현재처럼 기술위원회의 위상과 힘이 약해진 데는 정몽규 회장이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한다면 현재 협회 집행부가 기술위원회의 위상을 스스로 낮췄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내부적으로 권위와 위상을 세워주지 않는 조직이 어떻게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겠나.

 현재 축구협회 조직도를 보면 기술위원회는 7개 분과위원회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분과위원회도 회장 직속이 아닌 이사회 직속으로 돼 있다. 독일과 프랑스축구협회조직도를 보면 기술위원회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 그리고 회장이 기술위원회를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또 현재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들은 모두 비상근이다. 모든 기술위원들을 상근직으로 만들 필요까지는 없지만 핵심 인력에 대해서는 상근직도 고려해야 한다. 가끔씩 출장비 정도를 받는 비상근직 위원으로 기술위원회가 구성됐다는 점은 협회가 냉정하게 반성해야할 부분이다. 과거 축구협회는 경기국, 기술위원회보다는 홍보국, 국제국을 훨씬 더 중시해왔다. 그건 홍보국, 국제국이 회장들의 대외적인 위상과 이미지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부서이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축구협회의 중심이 돼야 하는 경기국, 기술위원회이 상대적으로 외면받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잘못된 관행을 다른 축구 선진국처럼 경기국, 기술위원회 중심으로 바꿀 때가 됐다.

 기술위원장의 위상도 제고돼야한다. 현재 협회 정관에 따르면 기술위원회는 제안, 건의, 추천, 자문, 협조하는 곳으로 제한돼 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7072055245&code=990100). 이런 상황 속에서 기술위원장에 부회장급 인물 등 거물이 선임되면 힘이 강해졌고 팀장급이 오면 힘이 약해졌다. 누가 우두머리가 되느냐에 따라 조직의 권한이 달라진다는 것은 후진적인 조직체계의 대표적인 전형이다. 축구협회가 기술위원회에 책임을 묻고 싶다면 먼저 기술위의 위상을 높이고 권한을 강화했어야 했다. 힘을 주지 않고 책임을 묻는 건 어불성설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번 기회에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을 도맡을 감독 선임 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싶다. 지금은 기술위원회가 감독 후보를 복수로 내면 협회 회장단이 그 중 한명을 고르는 식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기술위원회는 힘을 잃고 협회 회장단만 힘이 강해지게 마련이다. 결국 회장단 마음에 드는 인물이 대표팀 감독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감독을 선임할 때마다 알게 모르게 불거지는 회장단 입김은 지금같은 구조 속에서 협회가 자초한 것과 다름이 없다. 따라서 월드컵 성적이 부진할 때 실질적으로 책임을 져야할 것은 기술위원회가 아니라 협회 회장단이다.

 협회 회장단은 앞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시키기보다는 그동안 자신들이 휘둘러온 힘을 분산시키는 게 필요하다. 그게 바로 감독 선임 위원회 설립이 될 수 있다. 즉, 현재 기술위원회는 한국축구 전체를 기술적으로 이끌어 가는 데 중점을 두게 하고 남녀축구대표팀과 남녀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뽑는 일은 감독 선임위원회에 맡기는 것이다. 감독 선임 위원회는 기술위원장, 협회 회장단 대표, 프로 감독 대표, 역대 월드컵 감독 대표, 프로축구연맹 관계자, 외부 위원 등 축구대표팀 감독을 선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다양한 대표자로 구성하면 된다. 이 정도라면 제대로 된 대표팀 감독을 선임할 수 있는 능력과 권위를 갖춘 조직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처럼 권력이 소수에 집중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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