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차 전북맨' 레오나르도 "가족이 한국을 너무 사랑하니.."

2016. 9. 13.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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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현대 레오나르도 가족이 전주한옥마을을 찾아 화목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한국생활 5년째를 맞은 레오나르도는 데얀(FC서울) 다음으로 오랫동안 K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외국인선수다. 전주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레오나르도 가족의 추석 나들이

수많은 러브콜 뿌리치고 전북 재계약
돈보다 가족들의 잔류 소망이 최우선

비빔밥은 ‘영혼의 음식’…한식 마니아
한국생활은 최고…영원히 못 잊을 것

단란하고 사랑이 넘치는 브라질 가족을 만난 곳은 9월의 청명한 기운이 감돌던 전주의 한옥마을이었다.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은 부부와 어린 두 딸은 따사로운 햇살만큼 화사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2시간 가까운 사진촬영과 전통카페에서의 인터뷰 내내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모처럼의 망중한을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한옥마을 초입 경기전(慶基殿)에서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전북현대의 레오나르도(30)와 그의 가족을 마주했다. 어느덧 한국생활 5년째. K리그에서 활약 중인 용병들 가운데 데얀(FC서울) 다음으로 오랜 시간 한국에서 뛰고 있는 선수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 살면서도 틈틈이 찾았던 한옥마을이지만, 빛깔 고운 한복까지 입어보기는 실로 오랜만이다. 그러나 어색하지 않았다. 한국의 전통놀이 투호를 즐기고, 서로가 꼭 붙어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어루만지면서 깊은 애정을 과시한 네 식구는 영락없는 ‘절반의 한국인’ 가족이었다.

전북현대의 장수용병 레오나르도와 가족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전주 한옥마을 나들이에 나섰다. 한국의 전통놀이 투호를 즐기는 모습은 한국인 가족과 다를 바 없었다. 전주|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딸 바보’ 아빠 & ‘아내 바보’ 남편

가족을 향한 레오나르도의 지극한 사랑을 실감하려면 그의 팔을 보면 된다. 포르투갈어로 오른팔에 새긴 이름은 두 딸, 가슴의 문신은 아내다. 두 살 연하의 카밀라(28)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동네 이웃사촌이었다. 여자는 남자를 축구 잘하는 ‘동네 오빠’로만 여겼다. 그런데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여자가 하교하는 시간까지 알아내 자전거를 타고 일부러 학교 앞을 지나치는 등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이어갔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에게 여자의 집에서 쌀, 배추, 양파 등 식료품 배달 주문이 오면 부모님이 심부름을 시킬 새도 없이 곧장 뛰어나갔다. 본격적으로 프로선수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틈날 때면 고향을 찾아 조용히 사랑의 싹을 키워나갔다.

“카밀라와 눈이 마주친 순간,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었다. 빨려들어갔다고 할까? 누구든지 사랑에 빠지면 나와 똑같은 반응일 것이다.”(레오나르도)

어렵게 용기를 낸 남자의 고백에 여자도 결국 넘어갔다. 지금 그녀의 왼쪽 팔에는 ‘레오나르도’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양가의 허락을 받고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한 둘은 2008년 약혼한 뒤 레오나르도의 소속팀이 있는 그리스로 향했다. 사랑의 첫 결실을 그곳에서 맺었다. 큰 딸 니콜리(7)를 얻었다.

“솔직히 남편의 관심이 싫지 않았다. 그런데 축구선수의 가족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브라질에 축구선수가 얼마나 많나? 특히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다는 것은 대단한 단점이다. 우리도 그랬다. 그리스로 간지 일주일 만에 남편이 해외전지훈련을 떠난다고 하더라. 막막했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어떻게 버텨야 할지…. 다행히 니콜리를 빨리 만나 외로움은 길지 않았다.”(카밀라)

막내 딸 가와니(2)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레오나르도가 ‘전북 맨’으로 3년째였던 2014년 한식구가 됐다. “커피 한 잔 마셔도 이곳에서 즐긴다”는 부모 덕분에 한옥마을을 낯설어하지 않고 마치 제집 안방처럼 곳곳을 깡충거리던 가와니는 아빠, 엄마보다 한국말을 잘하고 한국생활을 즐긴다고 한다.

2012년 전북에 입단한 레오나르도는 지난해 5월 K리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팀’ 전북과 재계약했다. 중동, 중국 등을 중심으로 쏟아진 수많은 러브 콜에도 흔들리지 않은 것은 가족 때문이었다. 돈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국 특유의 ‘정’에 끌렸다.

“한국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가족이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 또한 (떠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더욱이 우리 팀도 나와 가족을 존중하고, 아껴주고, 잘 챙겨줬다.”

전북현대 레오나르도 가족. 전주|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브라질 가족이 느낀 한국, 그리고 문화

유서 깊은 고궁이나 규모가 큰 역사·문화 유적지가 전주에 많진 않아도 한옥마을에서 한국 특유의 정취를 느끼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카밀라는 “한옥이 워낙 특별하지 않나. 평범한 느낌이 아닌 건물들이 한데 모여 있으니 무척 신기하고 강렬했다. 항상 새로운 느낌이다”고 말했다.

한복은 2번째로 입어봤다. 레오나르도는 2012년 브라질의 지인들이 한국을 찾아왔을 때, 카밀라는 2013년 그리스의 옛 친구들이 방문했을 때 경험했다. 그렇다고 한국의 명절이 익숙할 순 없다. ‘추수감사절’ 형태의 휴일은 있어도 우리네 추석처럼 특별하거나 긴 연휴 분위기를 풍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카니발과 크리스마스가 훨씬 특별하다.

사실 레오나르도 가족이 한국에서 생활한 이후 추석연휴 K리그 경기가 없었던 기억이 없다. 올 시즌도 그렇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1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상하이 상강(중국)과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을 치르고, 연휴 마지막 날인 18일에도 수원삼성과 K리그 클래식 30라운드 홈경기를 펼친다. 이 때문에 연휴 동안 전북 선수단은 전북 완주군의 클럽하우스에서 팀 훈련을 진행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야 한다. 레오나르도의 가족은 언제나 그랬듯이 경기장 어딘가에서 남편, 아빠가 뛰는 경기를 관전할 계획이다.

브라질에는 성묘를 하고, 차례상을 차리고, 함께 음식을 나눠먹는 문화가 없다. 카밀라는 “브라질에선 (추수감사절에) 교회나 성당을 찾아 돌아가신 이들을 위해 추모예배를 드리고, 친지들이나 친구들과 포켓볼(당구)을 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고 떠올렸다. 그럼에도 투호를 아주 적극적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면 레오나르도 가족이 한국의 매력에 푹 빠져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가족은 한국음식도 굉장히 즐긴다. 적어도 일주일에 3번은 한식을 찾아 먹는다. 특히 각종 야채와 고기를 송송 썰어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에 쓱싹 버무려먹는 비빔밥은 이들에게 ‘영혼의 음식’이다. 또 카밀라가 남편과 딸들을 위해 가끔 만들어주는 김밥과 닭볶음 역시 별미 중의 별미란다.

“한국음식을 안 먹으면 너무 그리워진다. 마치 향수병처럼 말이다. 특히 매콤한 음식이 생각난다. 시즌이 끝나고 고국에 가도 반드시 한국식당을 찾는다. 식당을 찾지 못하면 아예 재료를 구해 비빔밥을 해먹곤 한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레오나르도)

“먼 훗날 ‘길었던 외국생활이 어땠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한국생활이 최고였다’고 말이다. 정말로 한국에서 보내고 있는 지금의 매 순간순간이 행복하고 즐겁다.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카밀라)

레오나르도

▲생년월일=1986년 9월 22일 ▲키·몸무게=173cm·70kg ▲프로 경력=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브라질·2003∼2004년), 트라시불로스FC(그리스·2004∼2007년), 레바디아코스FC(그리스·2007∼2009년), AEK아테네(그리스·2009∼2012년), 전북현대(2012년∼현재) ▲K리그 통산 성적=126경기 28골·28도움 (2016년 11골·2도움)

전주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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