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트랙] K리그 망가뜨리는 어두운 '관행의 고리'

한준 기자 2016. 5. 2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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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은 개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고리로 이어진다

[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현역 생활을 마치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A씨는 선수 때와 마찬가지로 열정적이었다. 코치가 되어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향해 소리를 치고 손짓을 했다. 벤치에 앉아 있던 감독 B씨가 흥분하던 A씨를 벤치로 불러 들였다. "어차피 우리가 이길 경기야. 너무 힘 빼지마." B씨가 A씨에게 말했다.

벤치에 들어와 앉은 A씨는 영문을 모른 채 어리둥절했다. 가만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는 특별히 이상해 보이는 상황 없이 진행됐는데 감독 B씨가 얘기한 대로 승리로 마무리됐다. 코치 생활이 이어지면서 A씨는 감독 B씨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차차 알게 됐다. 어느 날 B씨가 A씨에게 현금 200만원을 인출해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A씨가 직접 전달한 것은 아니었지만, 후일 알게 된 돈의 행선지는 심판이었다.

K리그에는 괴담이 돈다. 기자가 된 이후로 이런 류의 양심선언이나 증언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문제는 확실한 물증이 없다는 점이다. 떠도는 이야기의 진위를 가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지난 23일 부산지검을 통해 빙산의 일각이 드러났다. 흉흉한 소문에 어느 정도 신빙성을 주는 수사 결과가 나왔다.

K리그 챔피언 전북현대가 심판 매수 파문에 휩싸였다. 2013년 전북 스카우트 C씨가 두 명의 심판에게 총 5차례씩, 각각 100만원을 줬다. 검찰 조사를 받은 두 심판은 자신들의 통장에 입금된 출처 불분명한 자금의 출처를 전북 스카우트라고 자백했다. 스카우트 C씨는 축구인 후배인 심판에게 생활비조로 건넨 것이라고 했다. 구단 직원이 심판에게 금품을 준 일은 해명과 관계 없이 불법이다.

전북 구단의 공식적인 입장은 스카우트 C씨 개인의 일탈이다. 이철근 단장과 최강희 감독은 인지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밝혔으나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두 사람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 스카우트 C씨도 자기 혼자 벌인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황 만으로 죄를 묻기에 증거가 부족하다. 부산지검도 더 이상의 조사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심판에게 건넨 경기당 100만원의 의미

축구계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활동 반경이 넓은 스카우트가 보통 전달책으로 기능한다고 했다. 그러나 스카우트 C씨가 건넨 돈이 `승부 조작` 혹은 `심판 매수`를 목적으로 한 행위는 아니었다고 입을 모은다. 전직 축구 심판 D씨는 "100만원으로 매수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경기당 100만원 수준이라면 말 그대로 생활비로 쓰라는 의미의 돈이다. 유리한 판정을 유도하기 위한 적극적인 매수 행위라기 보다 우리 팀에 불리한 판정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심판에게 경기당 100만원 지급하는 게 특수 사례가 아니라는 얘기다. 대부분의 팀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심판에게 같은 의미로 돈을 줘왔다.

"자신 혹은 자신의 구단도 `인사`를 했는데 제대로 봐주지 않기 때문에 분노하는 경우도 있을 것"

K리그 경기장에 유독 오심에 강한 분노를 표하는 감독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불분명한 것처럼 관행의 고리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서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우리 팀 경기를 관장하는 주심이 상대 팀에 매수되었을 가능성을 염려하다 보니 결국 모든 팀이 심판에게 떡값을 찔러주는 관행이 자리를 잡았다. 매수를 위해 주는 게 아니라, 우리 팀만 불이익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줘야 하는 관행이다.

경남FC는 돈을 준 심판이 맡은 경기에서 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강등을 피하지 못했다. 전북의 경우에도 이긴 경기도 있고, 진 경기도 있다. 혐의가 드러난 시즌에 우승하지도 못했다. 법리적으로 승부조작의 정황이 입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의 존재 자체가 한국 프로축구에 승부조작 시도가 만연해왔으며, 지금도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심판 매수 혐의가 알려진 뒤 전북 팬들은 성명서를 발표해 명백하게 밝힐 것을 요구했다. #심판에게 준 돈은 어디서 왔을까?

심판 매수는 K리그에 만연한 관행의 한 고리일 뿐이다. 전북 스카우트 개인의 일탈도 아니고, 전북현대만의 문제가 아니듯, 심판 매수라는 행위가 한국 프로축구 부패의 모든 것은 아니다. 심판에게 주는 돈은 회계처리가 불가능하다. 1년치로 따지면 만만치 않은 이 자금은 보통 감독 혹은 구단 고위 관계자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그렇다고 이들이 순전히 자신들의 연봉을 깎아먹는 손해를 감수하며 심판에게 돈을 주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팬들을 충격에 몰아 넣었던 또 하나의 사건은 외국인 선수 영입 과정의 비리다. 감독과 구단 관계자, 그리고 에이전트가 외국인 선수의 몸값을 부풀려 나눠 갖는다. 과거 구단에서 일했던 E씨는 "브라질에서 연봉이 몇 천 만원 수준인 선수를 억대 연봉으로 데려 왔다. 그런데 그 돈이 실제로 모두 선수에게 지급된 것은 아니다. 선수 역시 브라질에서 받던 것 보다는 많이 받았지만, 나머지 돈은 다른 곳으로 갔다"고 했다.

외국인 선수 영입 과정에서 이 같은 일은 비일비재하다. 투자한 돈에 비해 실패하는 선수가 많은 이유다. 외국인 선수 교체가 잦은 이유이기도 하다. 선수를 바꿀 때마다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이전트 F씨는 선수 프로필을 들고 한 감독의 사무실을 찾았다. 어떤 선수인지 열심히 설명하는데 감독이 슬며시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했다. 이 선수를 영입하면 자신에게 얼마를 수수료로 줄 것이냐는 신호였다.

이러한 일은 감독과 선수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이뤄지기도 했다. 과거 좋은 성적으로 팀을 이끌던 한 감독은 경기 전에 외국인 선수들에게 경기 출전을 원한다면 현금을 가져오라고 했다. 돈을 준 선수를 출전시켰다. 누가 경기에 나서도 이길 수 있을 만큼 팀 전력이 안정적이던 시기에 생긴 일이다. 계약 조항에 따라 선수는 출전 수당, 승리 수당, 공격 포인트에 따른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이 돈의 일부를 감독에게 주는 셈이다.

외국인 선수뿐 아니라 국내 선수의 입단 과정에도 검은 돈이 오간다. 팀에 입단할 실력이 아닌 선수들이 계약을 맺는다. "볼 돌리기 훈련만 한번 해보면 바로 안다. 어떻게 들어온 선수인지. 팀 마다 그런 선수가 한두 명씩은 있다. 특별히 따돌리고 그러진 않는다. 그렇게 들어온 선수도 민망해 하고,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긴다." 은퇴한 선수 G씨의 말이다.

프로 선수가 되는 일은 하늘에 별 따기다. 그런데 소리 소문 없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선수도 적지 않다. 프로 선수 경력만 쌓고, 실제로는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사라지는 선수가 많다.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하고 사라진 재능도 있지만, 애초에 들어올만한 능력이 없는 데 들어오는 선수들도 있다.

#학원축구를 통해 무뎌지는 윤리의식

한국 축구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관행이다. 관행의 근원지는 프로축구가 아니다. 학원 축구의 부패는 더 심각하다. 현직 고교 축구 감독 H씨는 "심판이 마음 먹고 부는 경기에선 이길 수 없다"고 했다. 팀 간 전력이 비등한 경우에 승패의 균형을 좌우하는 게 판정이다. 실력으로 극복하기엔 한계가 있다.

학원 축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학교로 진학시키거나, 프로 선수로 입단 시키는 일이다. 학부모의 돈은 우리 아이를 잘 봐달라는 의미로 지도자에게 들어가고, 지도자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심판에게 돈을 준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내고 나면 친한 감독끼리 대회별 성적를 나눠 먹는 일도 관행 중 하나다. 온갖 관행이 공정한 경쟁을 훼손하고 있다.

연령별 대표팀 선발 과정에도 관행이 끼어든다. 은퇴한 축구 감독 I씨는 "명단을 보면 당연히 뽑혀야 할 선수가 보이지 않고, 엉뚱한 선수가 들어가 있는걸 볼 수 있다"고 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어차피 벤치에 머무를 시간이 대부분인 몇몇 선수는 가진 실력 이상의 기회를 받았다.

여론의 주목이 덜한 대학 선발팀, 학생 선발팀 등에는 그 비율이 더 높아진다. 실제로 2015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 나선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한국대학축구연맹 전무이사가 학부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금품을 제공한 학부모의 아이가 대표 선수가 되지는 못했고, 전무이사는 일부 돈을 돌려줬다. 대표팀에 선발된 선수들 중 누가 금품을 통해 선발되었는지에 대한 의심은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를 겪으며 프로가 된 선수, 심판, 지도자들이 경기 윤리 의식을 잃어버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태는 결과에 큰 의미가 없는 리그컵 경기에 집중됐다. 팀 성적에 큰 의미가 없는 군 팀 선수들이 대거 연루됐다. 선수들은 이런 경기에서 일부러 지는 것에 대해 큰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 유소년 시절에도 여러가지 이유와 지시로 인해 져준 경기가 있기 때문이다.

관행에 젖은 이들이 승부조작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었다. 프로축구는 돈을 벌지 못하는 산업이고, 불안정한 경제 상황은 부정의 유혹에서 모든 이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있다. 발전하지 못하는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패한가. 그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소문으로만 돌던 의혹의 일부가 사실로 드러난 지금, K리그를 향한 팬들의 신뢰는 땅으로 떨어졌다.

#개별 사건이 아니라 모든 고리를 끊어야 한다

지금 축구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모두 부패를 저지르고자 이 업계에 뛰어든 것은 아닐 것이다. 푸른 잔디 위를 열정적으로 누비고, 그물을 출렁이는 공에 열광한 순수한 마음으로 발을 들였다. 그 열정을 되살리기 위해선 관행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모든 경기가 조작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대로 지나가면 모든 경기가 조작의 의심을 피할 수 없다.

전북현대의 심판 매수 혐의는 개별적 사건으로 봐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주지하듯 관행의 고리는 모두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얽힌 모든 고리를 해체하지 않는다면, 다시 새로운 관행의 싹이 튼다.

과거와 비교하면 한국 축구는 훨씬 더 투명해졌다. 그러나 쉬쉬하며 숨겨오던 일들 때문에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질 위기다. 지금 당장 위기를 넘겨도, 장기적으로는 더 큰 위기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가 요원하다. 증거를 입증할 수 없다고 결백한 것은 아니다. 법리적으로 죄를 물을 수 없다고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 언급된 일에 연루된 모든 이들의 잘못은 기본적으로 개인에게 죄를 묻게 되는 일이다. 그러나 `개인의 일탈`로 끝낼 문제는 아니다. 개인이 관행과 시스템에 저항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축구계 전체의 더 큰 움직임이 필요하다. 증거불충분으로 마무리될 수사가 아니라, 팬들이 신뢰할 수 있는 명명백백한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 판을 이끌어갈 한국프로축구연맹과 모든 구단이 앞장 서서 해야 할 일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사진 속의 구단 혹은 인물은 본문 내용과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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