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인들이 기억하는 몰수무..'6월항쟁이 만든 역사'

입력 2016. 4. 8.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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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배 국제축구 한국 대 이집트의 경기에서 최루가스로 인해 경기가 중단되자 선수들이 코를 막은 채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김승두 //1987.6.11(마산=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한국 축구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역사를 갖고 있다.

경기장 외부에서 일어난 시위로 몰수경기를 치렀다는 것이다.

대표팀은 6월 항쟁이 한창이던 1987년 6월 10일 마산 공설운동장에서 이집트와 대통령 배 국제대회를 치렀는데, 경찰의 최루탄 발사로 몰수 무승부를 기록했다.

대표팀의 몰수무 경기는 7일 쿠웨이트 전이 몰수승으로 확정되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

몰수무 경기를 직접 뛴 축구인들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주전 골키퍼로 출전한 조병득 축구협회 경기위원장은 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시큼한 냄새가 갑자기 나더라. 나는 골키퍼라 바람을 등지고 있어 괜찮았는데, 바람을 정면으로 맞은 이집트 선수들이 하나둘씩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상황은 0-0으로 팽팽히 맞선 전반 29분에 발생했다.

마산 공설운동장 인근에서 '6월 항쟁'에 나선 시위대를 향해 경찰 병력이 최루탄을 발사했고, 최루액은 바람을 타고 경기장 내부로 들어왔다.

조 위원장은 "4~5명의 이집트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뒹굴었다. 소리도 질렀다. 경기 진행 요원이 그라운드에 들어와 이집트 선수들에게 얼굴에 손을 대지 말라고 제지했다"라고 말했다.

최순호 축구협회 부회장도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 공격수로 출전했다. 그는 "경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선수들이 모두 재채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대표팀 선수들은 최루탄이 터지는 상황을 종종 경험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지만, 이집트 선수들은 안 그랬다"라고 말했다.

결국 주심은 경기를 재개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해당 경기를 몰수 무승부로 결정했다.

마산 공설운동장에 모였던 2만3천명의 관중들은 그제야 차례대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조 위원장은 "그 시대엔 많은 이들이 최루탄을 경험했다. 관중들은 큰 동요를 하지 않았다. 우리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라고 말했다.

이날 경기는 한국 축구사에 '유일한 몰수 무승부'로 새겨져 있다.

조병득 위원장은 "돌이켜보면 해당 경기는 한국 축구사에 의미있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정치적으로도, 축구 역사적으로 쉽게 잊지 말아야 할 장면이 아닐까 싶다"라고 회상했다.

한편 대표팀은 1948년 출범 이후 각각 한 차례씩 몰수승, 몰수무, 몰수패를 기록했다.

몰수패는 1960년 4월 30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로마 올림픽 아시아 예선 대만과의 경기에서 벌어졌다.

심판의 계속되는 편파 판정에 흥분하던 한국 선수들은 0:1로 뒤지고 있는 가운데 페널티킥까지 선언되자 심판을 폭행해 몰수패를 당했다.

cy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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