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덕운동장을 울린, 비탄에 젖은 한 부산 팬의 절규

김태석 2015. 12. 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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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덕운동장을 울린, 비탄에 젖은 한 부산 팬의 절규

(베스트 일레븐)

김태석의 축구 한잔

개인적으로 고향이 부산이다 보니 구덕운동장으로 갈 때마다 옛 기억에 설렌다. 어린 시절 눈으로 지켜봤던,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관중을 열광케 하는 플레이를 펼쳤던 기억이 생생해서다. 네 번의 리그 패권은 물론 각종 컵대회 우승까지 합하면 기억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영광이 빚어졌던 곳이기에 더욱 특별하기도 하다. 지금은 얼어붙은 인기 때문에 그저 낡은 경기장처럼 비칠지 모르지만, 구덕운동장은 ‘구도(球都)’를 자처했던 부산 사람들에게는 축구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선지 지난 5일 부산 구덕운동장 풍경은 한동안 잊을 수 없을 듯싶다.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5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서 부산 아이파크는 수원 FC에 무력한 플레이로 일관하다 0-2로 완패당했다. 앞서 2일 수원 종합운동장에서 벌어졌던 1차전서 0-1로 무너졌던 부산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이겨야 했던 경기에서 너무도 허약하게 무너졌다.

경기장은 1,000여 수원 원정 팬들이 벌이는 축제의 한마당이 아니라, 5,000여 부산 축구팬들의 슬픔과 분노의 장으로 뒤바뀌었다. 수원 임성택의 골이 터지는 순간, 응원은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 자파의 골이 터지고 종료 휘슬이 울리자, “그 따위로 축구하려면 나가 XXX”라는 안티성 노래가 울려 퍼졌다, 경기 후 로커룸으로 향하는 선수들에게 이물질을 투척하는 이들도 있었다. 서포터스가 자리하지 않은 일반석에서는 정몽규 부산 구단주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렸고, 경기 후에는 아예 선수단 버스를 막는 이들까지 있었다.

경기 후 각종 매체를 통해 빠르게 전파된 이 소식은 경기 결과 못잖게 크게 주목받았다. 일부에서는 쓰라린 패배를 당해 누구보다도 크게 상심했을 선수들에게 지나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상황 여부를 떠나 상대를 해할 수 있는 물병을 던진 건 질타받아야 할 일이 아니냐는 따끔한 일침도 있었다. 맞다. 일부든 전체든 그날 과격한 행위를 일삼은 이들의 잘못은 분명 있다. 혼나야 할 일이다. 변호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릇된 그들의 행동을 보면서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심정적으로 이해가 됐다. 강등이라는 결과물 때문에? 구단의 적은 투자 때문에? 물론 그것이 한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이들이 분노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1년 내내 도저히 눈 뜨고 봐 줄 수가 없을 정도로 무성의했던 경기 자세 때문이다.

사실 일부 부산 열혈 팬들은 승강 플레이오프가 벌어지기 한 달 전에 부산 클럽하우스에서 피켓 시위를 벌인 바 있다. 그들은 무척 다급했다. 리그 4회 우승 경력을 자랑하는 팀이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초조하고 불안했다. 올 한 해 긴 시즌 동안 단 5승에 그친 데다 스플릿 라운드 초기에 광주 FC와 대전 시티즌에 연거푸 발목이 잡히면서 하마터면 자동 강등당할 위기에 처해지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클럽하우스로 달려간 것이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도 강등의 위험을 선수들에게 알리며 이런 경기 자세로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하며 부디 투지 있는 모습이라도 보여 달라는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문제는 이런 팬들의 외침에 선수들이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부산의 강등은 대전과는 다른 케이스다. 대전은 모자랐던 K리그 클래식 준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밀려 내려갔던 팀이지만, 부산은 그렇지 않다. 혼신을 다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 팀이라는 걸 최근 수 시즌간 스스로 입증한 바 있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그렇지 못했다. 부산의 경기 패턴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경기 초·중반까지 나름 대등하게 싸우다가 중반부 이후에 고비가 찾아오면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지는 팀이었다. 올 시즌 5승밖에 기록하지 못했으니, 거의 매 경기 이런 패턴으로 승부를 치렀다고 보면 된다. 1년 내내 이런 경기를 했다. 돈과 시간을 투자해 매 라운드 경기장을 찾은 부산 팬들의 인내심은 당연히 한계에 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도 똑같은 경기를 펼치니, 이쯤 되면 성토를 안 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선배들은 이곳 구덕운동장에서 네 번이나 우승했지만, 너희들은 강등당했다. 선배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느냐? 투지 있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했는데, 그런 적 있나? 우리가 많은 걸 바랐는가? 군대 가고 다른 팀 가면 그만인가? 우리는 어쩌란 말인지….”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선수단 버스를 막은 한 부산 팬의 절규다. “나가 XXX”라는 과격한 구호와 이물질 투척에 가린 듯하지만, 적어도 이 말만큼은 부산 구단과 선수들이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본다. 이 말에는 올 시즌 부산 선수들의 경기를 바라본 팬들의 절망감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올 시즌 부산은 돈을 받고 축구를 파는 프로다운 모습을 전혀 보이지 못했다. 일부가 어긋난 방향으로 분노를 드러내긴 했으나, 당시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분노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부산 선수들에게는 굴욕일 수 있고 수치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답지 못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격려의 박수를 바란다는 건 프로답지 못한, 직설적으로 말하면 염치가 없는 짓이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사진=베스트 일레븐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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