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를 향한 제언] 우리가 잊고 있었던 축구 보는 방법

조회수 2015. 4. 2. 13:21 수정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마술사들이 가장 공연하기 힘든 장소와 대상으로 꼽는 1순위가 대한민국과 한국인이라고 한다. 한국 관객들은 "어디 한 번 해봐, 내 반드시 속임수라는 것을 잡아내고야 말겠어"라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마술쇼를 대한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코미디언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일상사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껏 웃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팔짱을 낀 채 '어디 한 번 웃겨봐'라고 삐딱선을 탄다는 푸념이다. 확실히 넉넉하게 즐기는 것에는 다소 인색한 문화다. 형태가 다소 차이가 있으나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에서도 이런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3월 31일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을 통해 14년간 정들었던 태극 마크를 내려놓은 차두리의 은퇴식은 깊은 감동과 진한 여운을 남겼다. 자신의 76번째이자 마지막 A매치를 데뷔전처럼 뛴 차두리는 "경기는 늘 진지해야한다. 끝까지 경기와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멋진 말과 함께 43분을 최선을 다해 뛰었다. 그리고 그 어떤 선수들의 은퇴식보다도 아름다운 분위기 속에서 박수 받고 떠났다. 차두리의 표현대로, 복 받은 축구선수다.

이후 은퇴 기자회견에서 차두리는 여러 가지 뜻 깊은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후배들을 위해,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특유의 솔직담백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매 경기를 간절하게 뛰어야한다는 대표선수로서의 사명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차두리는 팬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인상적인 시간이었다.

차두리는 "언제인가 나의 기사에 붙은 댓글을 보다가 상당히 기분이 나쁘면서도 공감이 됐던 내용을 본 적이 있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여러 댓글 중에 '피지컬은 아버지 발은 어머니'라는 글이 있었다. 공감을 하면 안 되는 것인데 고개가 끄덕여졌다"면서 웃음을 지어보였다. 단순히 재밌던 기억을 소개하고자 꺼낸 내용이 아니다.

차두리는 "맞다. 나는 분명 기술이 화려한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측면의 장점이 있었던 선수였다"고 설명했다. 차두리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선수의 '장점'을 봐달라는 바람이었다.

그는 "알다시피 나는 오랫동안 유럽에서 뛰었는데, 유럽에서는 선수들의 장점을 보려한다. 그 선수가 잘하는 것을 끄집어내고 극대화시켜서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활용한다. 그것이 우리와는 가장 큰 차이"라며 "하지만 한국은 완벽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대표 선수들까지 위축을 받을 정도다. 사실 완벽한 축구 선수는 없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차두리는 "가끔 대표팀에서 훈련을 할 때 (구)자철이나 (곽)태휘, (기)성용이가 공을 차는 것을 보면 놀랄 때가 있다. 참 축구를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그들보다 잘하는 것이 따로 있다. 그것이 분명 팀에 도움이 될 것이고, 그것을 위해 나는 열심히 해야 한다"면서 "선수들마다 장단점이 모두 다르다. 각자의 장점을 팀을 위해 쏟아낼 때 이길 수 있다. 그렇게 채워가는 것이 축구"라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요컨대 이런 것이다. 차두리는 기술이 부족한 선수가 아니라 힘과 스피드가 발군인 선수다. 이정협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선수가 아니라 지칠 줄 모르는 활동량을 갖췄고 한교원은 그저 빠르기만한 선수가 아니라 보기 드문 주력을 지닌 플레이어다. 그리고 김신욱은 그냥 엄청나게 큰 선수가 아니라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축복받은 하드웨어의 소유자인 것이다.

이탈리아대표팀과 AC밀란에서 오랫동안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던 필리포 인자기는 '위치선정의 달인'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인자기가 문전에서 소위 주워 먹으면 "탁월한 감각으로 공이 올 지점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기막힌 표현이 나오는데 이동국의 비슷한 장면에서는 "남들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면 넣지 못하는 선수"라 갑자기 폄하되는 한국 축구의 풍토다. 이동국은 골만 넣을 줄 아는 선수가 아니라 결국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다.

차두리는 "거듭 말하지만 완벽한 선수는 없다. 단점을 계속 찾으면서 그 선수를 평가하지 말고 그 선수의 장점을 보면서 즐거워했으면 한다. 그래야 축구가 더 재밌다. '어라, 저 선수의 장점이 더 좋아졌네'라는 즐거운 마음으로 봤으면 좋겠다"는 진지한 바람을 전했다.

어쩌면 K리그 팬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인지 모르겠다. 전술·전략적인 분석이나 누군가 혹은 다른 팀과 비교하면서 심각하게 지켜보는 것도 일종의 맛이겠으나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팀과 선수들을 신나게 응원하는 것이다.

방법을 몰랐던 게 아니라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내 얼마나 잘하는지 보겠어'라는 날카로운 시선과 공격적인 팔짱을 풀길 권한다. 결국 즐겨야 즐거운 법이다.

글= 임성일[뉴스1스포츠체육팀장/lastuncle@daum.net]

사진= 스포츠공감 제공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