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염기훈이 끝낸 '계작살' 심층 분석

홍의택 2015. 3. 2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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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성남] 계작살(鷄鵲殺). 수원 '닭(鷄)'과 성남 '까치(鵲)'가 합작한 피 튀는 전쟁은 염기훈의 두 방이 결정했다. 전반전 종료 직전과 후반 초반을 장악한 수원은 22일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클래식 3라운드에서 성남을 1-3으로 잡았다.

두 팀 모두 주중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원정에 허덕였으나, 경기 후 쥔 성적표는 판이했다. 호주까지 다녀온 서정원 감독이 "체력적으로 못 뛰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고 얘기했는데 선수들이 아주 잘해줬다."며 흐뭇해 한 동안, 중국에 들른 김학범 감독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수원의 정신적인 준비가 더 잘 돼 있었던 것 같다."며 패인을 내놨다.

:: 김두현 후방 배치 vs 오범석 원 볼란치

포커스는 중원으로 향했다. 성남으로 둥지를 옮겨 옛 스승에게 안긴 김두현은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 역을 맡아 왔다. 근 10년 전, 김두현을 최전방 공격수 바로 아래 배치해 K리그를 호령한 김 감독의 셈이 작용했다. 수원으로선 그 위치가 최대 고민이었다. 권창훈은 U-22 대표팀에 차출됐고, 김은선과 조지훈은 뛸 수 없는 몸 상태였다. 서 감독은 오범석을 수비형 미드필더 한 자리에 두는 4-1-4-1로 응수한다.

"김두현이 지난 1월에 운동을 거의 못 했다. 체력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올라왔다. 나이를 먹어도 그만큼 구력(球歷)이 쌓이지 않나. 우린 노장이 더 많이 뛴다. 경기에서 뛴 km 수를 기록하면 김철호가 1등씩 하고, 그다음이 김두현이다. 11km를 조금 더 뛴다. 유럽 챔피언스리그나, 월드컵에서 뛰는 거리만큼이다. 오늘엔 평소 뛰던 위치에서 변화를 줬다. 한 번 눈여겨보라."

(김학범 감독)

경기 내용을 일방적으로 몰고 가는 팀은 없었다. 공간을 넓게 쓴 롱볼에 성남과 수원 모두 최전방-최후방 간격이 벌어졌다. 4-2-3-1 중 이종원과 함께 '2' 자리에 놓인 김두현은 횡패스와 종패스로 좌우 및 공수 전환에 신경 썼다. 상대 압박에도 볼을 간수하는 능력은 여전했으며, 무리하지 않고 볼만 슬쩍 빼내는 수비 지원도 준수했다. 공격적으로 결정짓는 능력 외 후방에서 지원하는 역할도 잘해낼 수 있는 자원이었다.

단, 수원 진영에서 볼을 점유하며 공격을 만들기는 여의치 않았다. 공격수간 거리가 멀어 오밀조밀한 형태가 나오지 않았고, 이는 짜임새 하락으로 이어질 우려가 컸다. 볼을 끊어낸 직후, 혹은 패스를 짧게 주고받으며 상대를 끌어낸 다음 단번에 때려 넣는 그림이 잦았으나, 오범석과 민상기-조성진이 버티는 지점을 부수지는 못 했다. 마무리까지의 과정은 오히려 중원 공백을 우려한 수원이 근소하게 앞서 있었다.

"오늘 경기에 대해 걱정이 상당히 많았다. 미드필드가 거의 다 부상당하고 빠진 상태다. 오범석이 (미드필더) 경험이 있고, 양쪽에 산토스와 이상호를 (역)삼각형 형태로 채웠는데, 잘 맞아 떨어졌다. 김은선의 대체 역할을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

(서정원 감독)

:: '전반 종료 1분 전, 후반 시작 5분 후'. 염기훈이 살아있었다

전반 44분 선언된 프리킥이 분수령이 됐다. 페널티박스 바로 밖 지점으로 골키퍼 박준혁은 시야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풋살대표팀을 거쳤을 만큼 순발력은 뛰어나도, 180cm에 불과한 신장은 방어 범위를 제한하는 고질적인 약점일 수 있었다. 위치나 자세가 흔들릴 경우 더 큰 어려움이 닥칠 터. 현장에서 지켜보던 김봉수 국가대표팀 GK 코치가 해설을 보탰다.

"보통 프리킥은 포스트를 분할한다. 가령 가까운 쪽은 수비 벽에게 맡기고, 먼 쪽은 골키퍼 본인이 담당하는 식이다. 박준혁이 염기훈의 킥을 보려고 몸을 흔들면서 위치가 중앙으로 살짝 쏠렸다. 게다가 자세를 너무 낮췄다. 프리킥은 땅이 아닌, 공중으로 오기 때문에 준비가 부족할 수 있었다. 더 좋은 반응을 할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봉수 코치)

여기엔 염기훈의 왼발이 그만큼 정확했다는 전제가 붙는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아르헨티나전(1-4 패배)에서 왼발을 고집한 슈팅에 전국민적인 원성을 사기도 했으나, 현 K리그 내에서는 염기훈의 왼발에 필적할 자원을 찾기 어렵다. 인플레이뿐 아니라 데드볼 능력까지도 겸비한 덕에 수원은 다른 팀보다 몇 가지 옵션을 더 쥐게 된다. 서 감독은 하루 전 상황을 전하며 염기훈의 성실함을 극찬했다.

"운동장에서 어린 선수들보다 염기훈이 더 많이 보인다. 쉬는 시간에도 나와서 훈련을 하더라. 어제도 밤에 나와서 몸 만드는 걸 봤다. 프리킥 연습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아까 골 장면에서도 '그렇게 연습했는데 하나 안 들어갈까'라는 생각을 했다. 정성 들여 준비하는 것이 선수들에겐 본보기가 되고, 그게 운동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서정원 감독)

후반 5분, 순간적인 경합에서 포기하지 않았던 수원이 두 번째 득점을 뽑아냈다. 중원에서 투닥거리며 싸우던 중에도 볼에 대한 집중력을 보였고, 이것이 측면으로 벌려 있던 정대세에게 연결됐다. 최전방 공격수가 페인팅으로 상대 수비를 벗겨낼 동안 측면 자원 염기훈은 중앙으로 침투해 슈팅 타이밍을 잡아냈다. 골키퍼 박준혁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 추격 골, 뒷공간, 그리고 카이오의 머리

후반 11분, 김 감독이 짜낸 성남의 노림수는 김두현 시프트. 김동희와 히카르도 대신 각각 김철호와 루카스를 투입해 김두현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뾰족한 수를 찾기도 전 도리어 10여 분 뒤 맞은 김두현의 부상에 계획이 무산된다. 조성진을 등지고 버티는 장면에서 근육이 올라온 듯했고, 이 자리는 정선호로 대체됐다.

꼬일 뻔한 수는 전화위복을 맞는다. 김두현이 얻어낸 프리킥 상황, 상대 수비와 싸우던 황의조가 PK를 얻어낸다. 올 시즌 황의조가 확실히 좋아졌다는 건 수적으로 밀리든, 힘에서 부치든 본인에게 유리한 상황을 연출해낸다는 점이다. 특히 박스 안에서 볼을 본인 것으로 만들고 뭔가를 얻어내는 능력은 이미 ACL 감바 오사카전에서도 증명한 바 있다. 노동건이 방어한 PK를 재차 차넣으며 추격을 시작한다.

하지만 중앙선을 넘어 총공세를 펼친 성남도 상대가 자리 잡은 진영을 뚫기엔 벅찼다. 팀 전체적으로 패스 흐름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고, 밀집 진영을 헤집어 놓을 개인 능력도 부재했다. 오히려 뒷공간을 얻어맞는 장면 중 이상호의 오버헤드 킥을 카이오가 헤더 추가 골로 연결하며 '계작살'을 끝냈다. 적지에서 추격을 따돌리고 승점 3점을 챙긴 서 감독은 공격수에 대한 칭찬을 덧붙였다.

"정대세는 예전보다 성숙해졌고, 팀에 조직적으로 흡수되려 노력한다. 더 좋은 위치에 있는 선수에게 패스해 어시스트를 하거나, (상대 수비를) 끌고 나오면서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후반에 1대 2가 되고, 상대는 공격을 많이 해왔다. 저럴 때 카이오가 들어서 제 역할을 해주며 골까지 넣었다. 공격수의 자신감이 상승하고, 컨디션도 더 빨리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글=홍의택

사진=프로축구연맹, SPOTV 중계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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