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에닝요의 마음 "전북이 주는 행복, 연봉보다 컸다"

풋볼리스트 2015. 1. 1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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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서울에서 전주 시내를 향해 가다보면 자연스레 전주월드컵경기장을 만나게 된다. 전주로 처음 돌아오던 날, 에닝요는 경기장 앞에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홈구장 앞에서 잠시 전주의 공기를 만끽한 에닝요는 기다리던 동행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주에 처음 왔을 때의 느낌이 다시 살아났다. 심장이 두근거린다."K리그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 중 하나인 에닝요(34)가 전북현대로 돌아왔다. 2009년 전북에 합류, 약 4년 반동안 두 차례 K리그 우승을 함께한 에닝요는 전북의 대표 스타였다. 지난 2013년 7월 창춘야타이로 이적했던 그는 지난해를 끝으로 창춘과의 계약을 마쳤고, 제2의 고향 전주로 돌아올 결심을 세웠다. 구단의 상징 같은 외국인 선수가 같은 팀으로 돌아오는 건 K리그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에닝요는 11일 입단 발표와 함께 인터뷰를 가졌지만, '풋볼리스트'는 에닝요를 따로 만나 그동안의 사정과 지금 느낌을 물었다. 중국에 있는 동안에도 전북을 그리워했던, 조금 특별한 외국인 선수의 이야기다. 돌아오고 싶었다, 한국이 아니라 전북에다시 한국행을 결정한 이유는?"질문을 바꾸고 싶다. 한국이 아니라 전북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중국에서도 열심히 플레이했지만 행복한 축구는 하지 못했다. 전북에서 느낀 만족감이 없었다. 전북은 팀 전체가 함께 싸워나간다는 느낌을 준다. 승부욕이 강한 나는 승리에 대한 갈망이 큰 전북과 잘 어울린다. 내겐 그 느낌이 중요하다. 중국에선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1년 반 전, 창춘으로 떠났던 건 금전적인 조건 때문이었나"물론 창춘이 좋은 조건을 제시했고, 내게 찾아온 기회를 전북도 이해해 줬다. 그런데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처음 하는 것 같다. 축구 선수는 한 팀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나태해지기 쉽다. 난 그때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중에 전북으로 돌아오더라도, 그땐 다른 팀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북을 떠날 때도 복귀는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떠나 있는 동안 팬과 구단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졌다." 창춘의 불안한 치안 때문에 호텔비만 1억원 넘게 썼다는 보도도 있었다. 현지 생활이 힘들었던 것 같다"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호텔 생활과 금액 모두 사실이 아니다. 2013년엔 창춘의 강등을 막기 위해 축구에만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가족도 부르지 않고 6개월 동안 혼자 호텔에서 지낸 것이 맞다. 호텔 생활은 거기까지다. 2014년엔 구단에서 잡아준 집에 가족을 모두 불러 함께 지냈다. 창춘의 치안은 불안하지 않았다. 팬이나 서포터들의 사랑을 느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만약 위험한 곳이었다면 가족을 데려갈 수 없었을 거다." 전북으로 복귀하며 창춘에서 받던 연봉이 절반가량으로 깎였다던데"기사에 나온 금액이 정확하진 않지만, 물론 창춘의 조건이 훨씬 좋았던 건 맞다. 창춘을 떠난 뒤에도 중국과 일본 팀들이 영입을 제의했는데 전북보다 좋은 조건의 팀이 있었다. 그러나 전북의 제안을 받은 뒤 모두 물리쳤다. 나는 전북이 좋아서 여기 돌아온 거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감독님이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이유는 2011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이다. 그때 우승하지 못한 것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날 괴롭혔다. ACL에서 우승하기 위해 돌아왔다(*에닝요는 2011년 ACL 결승전 패배 당일 고열에 시달리다 구급차에 실려갈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중국에서도 한식을 먹고, 전북 경기를 봤다

중국에 있는 동안 SNS가 곧잘 화제에 올랐다. 한국 음식을 먹는 사진을 올린 적도 있었다

"한국 음식이 정말 먹고 싶은 날이 있었다. 중국인 동료 선수에게 한국 식당 위치를 물어봤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 선수를 식당으로 끌고 가서 같이 먹었다. 중국 호텔에서 한국 음식 페스티벌을 할 때가 있는데 내겐 한식을 먹을 좋은 기회였다. 중국에서 가장 그리웠던 음식은 김치찌개와 '고기를 익힌 돌솥육회비빔밥'이었다. 돌아오자마자 둘 다 먹었다." 2014년 3월 광저우헝다를 상대로 1골1도움을 기록해 승리한 뒤 "오늘 승리는 늘 내 가슴 속에 살아있는 전북에 바친다"고 올리기도 했다"전북 시절 ACL에서 3년 동안 만난 팀 아닌가. 라이벌이라는 의식이 아주 강해졌다. 전북 경기는 늘 챙겨 봤다. 여건이 되면 경기를 시청했고, 최소한 결과는 늘 확인해 왔다." 자신이 없는 전북을 밖에서 지켜보는 기분은 어땠나"너무 이상했다. 전북을 밖에서 본다는 것과 내가 없이 팀이 돌아간다는 것 모두 낯설었다. 전북의 모습을 설명한다면, 2009년부터 2011년까지는 전북의 전성기였다. 이후 2012, 2013년은 분위기가 좀 달라졌고 예전만큼 강하지 못했다. 작년에 창춘에서 지켜본 전북은 또 달랐다. 선수들의 정신력이 너무나 강했다. 그것이 우승의 원동력이었다." 중국에 있는 동안에도 전북과 연락을 유지했나"이동국과 가끔 통화했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장난을 쳤다. 지난 11월에 전화했을때 나는 시즌이 끝났는데 K리그는 아직도 진행중이었다. 동국이 '야, 일 안하냐? 여긴 바쁜데'라고 하더라. ( Q : 간단한 테스트다. 이동국의 자녀가 몇 명인지 아나?) 물론. (다섯 손가락을 펴며) 잘 안다. 더 자주 연락한 사람은 파비오 코치다. 포르투갈어를 할줄 아는 권경원도 페이스북 메시지로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였다." 34세, 나는 전보다 더 강해졌다1981년생, 34세다. 신체 능력이 저하될 때다. 예전같은 활약이 가능할까"나이 많은 선수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보다 경험 많은 선수라고 불러주면 좋겠다. 나이를 먹어서 얻은 것이 잃은 것보다 많다. 이동국을 봐라. 나이를 먹으며 할 수 있는 것이 더 풍부해졌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엔 경기장에서 좌충우돌했지만, 이젠 지름길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 이것이 노련미고 나이를 먹지 않고는 가질 수 없는 힘이다. 어렸을 때 화가 나면 조절하지 못했던 모습도 이젠 없어졌다. 상대팀이 일부러 화를 돋워도 지금은 넘어가지 않는다." 팀을 떠날 때와 선수 구성이 달라졌다. 좌우 날개에 선수층이 두텁다.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등 다른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포지션에 대해 이야기를 듣거나 따로 생각한 적은 없다. 지금 기분으로는 골키퍼를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레오나르도와의 호흡에 기대를 거는 팬들이 많다"2013년에 잠깐 같이 뛰었을 때는 레오가 아직 적응 단계라서 힘들어했다. 그러나 지금의 레오는 완벽하게 적응된 상태라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에닝요는 전북으로 돌아온 첫날부터 레오나르도와 붙어 다녔다.) 프리킥은 누가 차게 될까? 에닝요인가, 레오나르도인가"프리킥은 원래 나이가 많은 선수가 차는 거다." (웃음) 재회가 가장 기대되는 선수는?"재회를 해서 두근거리는 선수는 최철순, 이동국. 조성환이다. 친해서 그렇기도 하고, 경기장 안에서의 호흡이 기대된다. 이동국은 앞으로 마음 편하게 축구해도 된다. 내가 동국에게 딱 맞춘 플레이로 골을 더 많이 넣게 해줄 것이다. ( Q : 득점왕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건가?) 나와 함께 뛸땐 보통 득점왕을 차지하지 않았나?그리고 함께 뛰어보고 싶은 선수가 한명 더 있는데 이재성이다. 전북 경기를 볼 때마다 같이 뛰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잘하니까." 다시 만날 최강희 감독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내 마음을 몇 마디 말로 전할 수 있나. 뽀뽀를 해 드리겠다. 아마 내가 뽀뽀하면 감독님도 똑같이 해주실 것 같은데?" 전북의 올해 목표는 ACL 우승이다. 에닝요의 목표는 뭔가"내 목표는 3관왕, 그중 가장 중요한 건 ACL 우승이다. 아까 말한 것처럼 2011년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올해 안에 70-70클럽에 가입하고 싶다. 앞으로 어시스트 6개가 남았다(*K리그 통산 80골 64도움을 기록한 에닝요는 K리그 최단기간 60-60클럽 가입 선수다). 나는 8번이기 때문에 80-80도 하고 싶은데 어시스트 16개가 가능할지는 의문이 든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나이다. 전북이 마지막 팀이 될까?"그러길 바라지만…, 글쎄. 팀이 허락한다면 그러고 싶다. 그런데 허락하지 않으면 어쩌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전북 팬들은 나뿐 아니라 나의 아버지와 아내에게도 페이스북을 통해 응원해 준다. 창춘에 있을 때도 끝없는 애정을 받았다. 그래서 더 돌아오고 싶었던 거다. 전북은 내가 가장 오래 뛴 구단이고 앞으로 더 뛸 팀이다. 중국이나 브라질에서도 한국 축구 이야기가 나오면 다른 팀보다 전북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그럴 때마다 자부심을 느꼈다. 클럽하우스로 처음 돌아왔을 때 뭉클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나도 이 건물을 짓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느낌이다(웃음)."

에필로그 - 그의 몸에 각인된 것들

에닝요에게 한국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으면 오른쪽 종아리를 보면 된다. 다리를 빙 둘러 새긴 문신에는 언뜻 보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절묘하게 '에닝요'라는 한글이 새겨져 있다.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귀화를 추진할 당시 '진정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섭섭했다. 나는 누구보다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문화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진 에닝요는 요즘 새로운 관심사가 생겼다. 왜 한국 사람들이 유관순 열사를 '누나'라고 부르는지, 그 친근한 호칭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단다.문신 가운데 비스듬하게 누운 숫자 8도 보인다. 유니폼 곳곳에 새겨져 있는 숫자기도 하다. "내가 온 이상, 전북에서 8번 셔츠를 입을 수 있는 선수는 나뿐이다. 전북에 처음 왔을 때부터 8번이었다. 그 유니폼을 입고 우승을 했고, 지금의 에닝요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문신도 8을 새겼다. 내 행운의 번호다."사진= 풋볼리스트, 전북현대 풋볼리스트 주요 기사[A+이슈] 무승부 없는 亞컵, '끝까지 간다'[A+코멘트] 요르단-이라크, 침대축구가 사라졌다[한준의 작전판] 7인의 블루 사무라이, 스시타카 골 합작전북 팬들, 에닝요 보러 훈련 습격… 감격의 프리허그[캔버라 라이브] 슈틸리케 "번호는 셔츠에 새겨진 숫자일 뿐"...속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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