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실어주지 못할 망정..이재명 성남시장의 경솔함

2014. 11. 2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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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프로스포츠경기는 때론 전쟁이다. 한 경기 결과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더욱이 잔류와 강등이 걸린 그 생존 문제의 경기라면,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감독 및 선수들은 시쳇말로 전쟁터로 나가는 장수와 같다. 배수의 진을 치면서 목숨을 걸고 임한다.

그런 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함께 나아가 싸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라운드 위를 밟을 수 있는 건 오직 11명의 선수뿐이다. 벤치에 앉을 수 있는 이도 감독을 비롯해 코칭스태프, 지원스태프, 교체 선수 7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 외 사람들은 그저 더욱 힘을 내라고 응원할 수밖에 없다. 예민한 시기라 말도 행동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괜히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아주 어리석은 짓이다. 팬은 물론 구단주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 중요한 경기를 하루 앞둔 날, 아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취한 이가 있다. 성남시장이자 성남 FC의 이재명 구단주다. 그는 28일 개인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성남, 꼴찌의 반란인가? 왕따된 우등생인가? 2부리그 탈락시 ACL 출전은?"이라는 제목 아래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재명 시장은 "성남시의 지원 예산은 물론, 메인스폰서를 포함한 후원을 50억원 이상 충분히 확보했다.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을 위한 선수 보강 등 특별한 문제가 없다"라면서 "하지만 2부리그 강등 시 약속한 후원이 모두 취소되며 성남시의 예산지원도 2부리그 수준에 맞춰 대폭 감액된다"라고 말했다.

성남은 오는 29일 부산 아이파크와 시즌 마지막 경기를 갖는다. K리그 클래식(1부리그)에서 10위다. 이 자리를 유지할 경우, 내년에도 1부리그에서 활동한다. 하지만 이날 경기를 패하고 경남 FC가 상주 상무를 이길 경우 11위로 내려간다. K리그 챌린지(2부리그) 플레이오프 승자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통해, 잔류 혹은 강등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지난 23일 FA컵 우승으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티켓을 획득한 성남이 2부리그로 강등된다면 끔찍한 악몽일 것이다. 이재명 시장의 표현대로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서있는 성남이다. 그만큼 매우 중요한 시기다.

다들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 가운데 구단주가 먼저 나서서 2부리그 강등 시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포기를 시사했다. 이재명 시장은 "대규모 예산 삭감과 후원 취소로 살림 규모를 줄이면서 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해야 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할 경우 선택지는 많지 않다. 참가를 강행해 핸드볼 경기 수준의 실점을 해 나라 망신을 시키거나 예산과 실력의 현실을 인정하고 출전을 포기하는 것 밖에 없다. 두 가지 모두 한국축구계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아직 다른 선택지를 찾지 못했다"라고 했다.

매우 위험하고 경솔한 발언이다. 성남 선수들은 FA컵 우승과 K리그 클래식 잔류를 위해 달려갔다. 그리고 피나는 노력 끝에 FA컵 우승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맺었다. 꿈에 그리던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티켓을 따고도 나갈 수 없다니 황당할 따름이다.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 시 매 라운드마다 지원금이 제공되며, 최소 6번의 아시아 전역에 성남을 널리 알릴 기회가 주어진다. 점점 꿈의 무대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해보지도 않고 돈이 없다고 출전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성남이 안 나간다고 끝이 아니다. AFC 챔피언스리그 불참 시 AFC의 중징계가 따른다. 지난 2012년 랴오닝 훙원(중국)이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을 포기했다. 이에 AFC로부터 벌금 및 참가 자격 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비슷한 징계를 받을 경우, 성남의 아시아 클럽 대항전 출전은 당분간 어렵다. K리그 클래식 상위권에 입상하거나 FA컵 우승을 하더라도. 당장 불똥은 성남에게 떨어지겠지만, K리그 다른 팀에게도 지장을 줄 수 있다.

선수들도 허탈할 것이다. AFC 챔피언스리그에 뛰지도 못한다는 상실감을 클 것이다. 물론, K리그 챌린지로 안 떨어지면 된다. 그렇다고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준다든지 투지를 불태우는 '불씨'도 아니다. 너무 섣부른 발언이다.

일종의 무언의 압박일 터다. 이재명 시장은 선을 더 넘어갔다. 2부리그 강등을 상상하기조차 싫다면서 그 이유로 오심을 들었다. 3경기 사례를 들어 페널티킥 오심으로 3승(승점 9점)을 날렸고, 이 때문에 성남이 강등 위기에 몰렸다고 주장했다.

올해 K리그에서 오심이 없진 않았다. 그렇다고 그게 오로지 성남만이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다. 성남이 강등권에 있는 건 김학범 감독의 말대로 잡을 경기를 못 잡았기 때문이다. 그건 성남 만의 실력과 정신력, 체력 탓도 있다.

이재명 시장은 "불공정하고 투명하지 못한 리그운영은 축구계를 포함한 체육계를 망치는 주범"이라면서 "승부조작 등 부정행위가 얼마나 한국 체육계의 발전을 가로막았는지 실제로 경험했다"라고 전했다.

29일 성남-부산전에는 오심 피해가 없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말했을지 모르나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먼저 구단주로서 해서는 안 될 이야기였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규정의 인터뷰 실시 조항에는 "인터뷰에서는 경기의 판정이나 심판과 관련하여 일체의 부정적인 언급이나 표현을 할 수 없다"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각 클럽 소속 선수, 코칭스태프, 팀 스태프, 임직원 등 모든 관계자가 대상이다. 공식 인터뷰뿐 아니라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는 어떠한 경로를 통한 언급이나 표현에도 적용된다"라고 명시되어있다.

구단주인 이재명 시장은 예외가 아니며, 그의 SNS도 대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공적인 공간이며 대중에게 이미 공개가 됐다. 규정에 따라, 상벌위원회에 회부되는 건 자연스러운 절차다.

이재명 시장의 행동은 매우 경솔했고 위험했으며 어리석었다. 선수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사기를 진작시키진 못할망정, 괜한 압박만 커질 수밖에 없다.

K리그 클래식 승격을 꿈꾸는 광주 FC와 상당히 대조적인 행보다. 광주는 지난 26일 정원주 대표이사가 선수단 및 프런트 전원을 불러 한우파티를 열어 기운을 북돋아줬다. 그러면서 "K리그 클래식 승격 시 사재를 털어 5000만원을 보너스로 지급하겠다"고 공언했다.

판정 시비나 승격 실패에 따른 예산 삭감 등의 우울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저 좀 더 힘을 내라고 묵묵히 지원을 했을 뿐이다.

성남에게 귀감이 되는 행동일지 모른다. 이재명 시장이 해야 할 일은 3일 간격으로 경기를 뛰어 체력적으로 지친 선수들을 위해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SNS에 선수들의 사기만 떨어뜨리는 글을 남기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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