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백승호의 등장, 그 강렬했던 순간에 대해.

홍의택 2014. 10. 18.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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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지난 9일, 미얀마 네피도 운나테익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4 AFC U-19 챔피언십 C조 예선 베트남전. 후반 27분 그라운드를 밟은 백승호는 투입 4분 만에 팀 다섯 번째 골을 쏘았다. 디딤발이 앞으로 살짝 빠진 듯한 동작에 힘이 제대로 실리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순간, 볼은 골문 구석을 정확히 찔렀다. 베일에 가려 있던 인물의 강렬한 등장에 우리는 흥분했다.

백승호의 재능을 조금 더 오래 지켜보고 싶었다. 이승우가 AFC U-16 챔피언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듯, 날개를 달고 비상하길 바랐다. 하지만 예선 세 경기에서 주어진 시간은 총 38분. 소속팀 징계 소식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뭇 축구팬들의 관심을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정작 본인은 "출장 시간에 대해선 아쉬운 점 하나도 없고요. 정말 많이 배운 대회였어요"라고 답해도 말이다.

대표팀이 백승호를 불러들인 건 두 가지 의미에서였다. 먼저 기량을 높이 샀다. 최전방 공격수 아래 경기를 풀어줄 공격형 미드필더가 필요했던 것이다. 백승호의 경기력 및 스타일이 팀에 맞는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만 17세의 선수가 19세 이하 대회를 쥐락펴락하길 바랐던 건 아니다. 2017년 대한민국에서 개최될 U-20 월드컵의 일정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쳤다. 즉시 전력감으로 데려가기보다는 미래를 위해 국가 대항전의 경험을 쌓게 하려는 의도도 얽혀 있었다.

백승호는 부지런히 성장 중이다. 지난 6월 대표팀에 소집됐을 때보다 2cm나 더 자라서 왔다. 어느덧 170cm 중후반으로 향하는 신장은 황희찬(177cm), 서명원(180cm)등과 견줘도 작지 않다. 그간 청소년 대표팀을 두루 살펴 온 한 지도자는 "이승우는 성장이 어느 정도 안정세에 접어든 것 같다. 하지만 백승호는 아직 뼈가 굳지 않은 느낌이다. 더 클 수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신장 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기술력 충만한 '특급 미드필더'의 탄생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훌쩍 커버린 키가 당장 빛을 볼 수는 없었다. '바르셀로나 후베닐A'라는 후광이 일부 팬들이 기대했던 '요술 방망이'로 이어질 수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피지컬'이 중대 요소로 꼽히는 청소년 대회 특성상, 야리야리한 체형으로는 두 살 많은 형들과의 대결에서 앞서기 어려웠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현저히 얇은 몸의 두께는 아직은 근육도, 살도 더 붙어야 하는 성장기 선수임을 말하고 있었다. "(체격 외에) 체력이나 스피드도 형들보다 부족해요."라고 백승호는 털어놓는다.

지난 2010년 1월 차범근 축구상 대상(22회)을 거머쥐었을 당시, 서울 대동초 소속으로 주말 리그에 나선 백승호는 18경기에서 30골을 퍼부었다. 공격 전개에 적극적이었음은 물론, 직접 골에도 능한 피니셔(Finisher)였다. 특유의 드리블 리듬을 갖춘 터라 자신감이 있었다. 실제 개인 능력에 의존한 돌파로 상대 수비를 도미노처럼 쓰러뜨리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AFC U-16 8강 일본전에서 상대 수비 진영을 무자비하게 부순 이승우와도 어느 정도 유사한 구석이 있었다.

현재의 포지션과 스타일은 과거와는 다소 다르다. 소속팀은 백승호를 경기를 조율하고 운영하는 유형으로 활용했고, 본인 스스로도 스트라이커 및 타 미드필더와의 조합 플레이에 익숙해졌다. 동료가 침투했을 때 찔러주는 패스의 타이밍, 이를 제때 포착해내는 시야는 공격을 만들어 나가는 능력을 한층 높였다. 킥 감각도 뛰어나 이번 U-19 팀의 오른발 세트피스를 전담했다. 최근 이 선수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몇몇 지도자들은 "국내에서 성장한 선수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갖췄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매력은 백승호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이끌었다. 4-2-3-1 중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하는 방안도 있었으나, 수비력이 완전치 않았거니와 수비 부담을 줄여 보다 공격적으로 나서길 기대한 결정이었다. 많은 출장 시간을 보장받지 못해 본인의 끼를 맘껏 펼치지는 못했어도, 다부지고 근성 있는 모습에 지기 싫어하는 투쟁력까지 갖춘 성격은 앞으로 청소년 몇 성인 대표팀에서도 만개할 가능성이 크다.

백승호, 이승우, 장결희만 있는 게 아니다. 바르셀로나 유스 트리오가 초등학교 졸업 뒤 중학교 진학 시기를 기점으로 떠났다면, 이제는 더욱 어린 시기에 해외로 나간 선수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터다. 이들이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당장 팀워크에서부터 문제다. "사춘기가 지났어도 서로 서먹한 관계를 갖더라"는 게 대표팀 관계자의 후문. U-19 팀이 식사 시간 중 정해진 테이블에만 앉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체적으로 순환하게끔 유도해 누구와도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이런 고충 속에서 백승호의 성격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소집일 및 포토데이 당시 취재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스타도 팀 내에서는 영락없는 막내였다. 질문에 답하는 모습에서 야무지고도 똘똘하다는 인상을 줬던 백승호는 싹싹한 면도 갖추고 있었다. 미얀마에 함께 다녀온 형들은 붙임성 좋은 막내에 대해 "우리한테 워낙 잘했어요. 까불거리면서 장난도 먼저 걸어왔고요."라며 입 모아 칭찬했다.

형들도 장난으로 받아치는 여유를 보였다. 백승호는 훈련이 끝난 뒤에도 현장을 찾은 인사들과의 사진 촬영에 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에 서명원은 "네가 스타냐?"라면서 짓궂은 질문을 던졌고, 백승호는 말문이 막혀 쭈뼛쭈뼛 서 있곤 했다. 이내 깔깔대며 숙소로 들어가던 뒷모습에는 그들만의 화기애애함이 묻어났다. 김현욱은 "기자분들 다 승호한테 몰렸잖아요. 그래서 막 사인해달라고 놀렸죠. 동생이 들어왔으니 우리도 더 정신 차리고 잘하자고 했고요"라며 팀 분위기를 전했다.

백승호는 착실히 성장하고 있었다. 뛰어난 기량에 월반까지 했고, 그 속에서도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발전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각각의 플레이에, 한 경기 한 경기에 지나치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것.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묵묵히 기다리며 조심스레 보듬는 것뿐이다.

글=홍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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