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이어질 최용수 감독의 '행복한 고민'

김태석 2014. 8. 2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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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감독 처지에서 골키퍼는 쉽게 변화를 주기 힘든 자리다. 선수 처지에서는 주전을 차지하기가 너무도 힘든 자리라는 걸 의미한다. 한번 감독의 믿음을 얻으면 롱런할 수 있지만 그 믿음을 얻기가 힘들다. 그리고 그 믿음을 얻었다손 치더라도 지키기도 힘들다. 여러모로 고달픈 포지션임에 틀림없다.

FC 서울의 수문장 유상훈은 마치 바늘구멍처럼 좁디 좁은 경쟁의 틈바구니를 뚫고 강렬한 이미지를 팬들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무대는 2014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였다. 27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대회 8강 2차전에서 유상훈은 포항 스틸러스의 지독한 수비전략에 득점없이 연장전까지 끌려온 서울을 승부차기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포항이라는 팀이 유상훈이란 개인에게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포항의 키커들은 단 한 번도 상대 골문을 넘기지도 않았다. 저마다 노리는 코스를 향해 힘껏 슈팅을 시도했으나 뛰어난 예측력을 발휘한 유상훈의 손에 모조리 걸리고 말았다. 한 명의 골키퍼에게 키커들이 모조리 굴복하는 모습은 어지간해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오죽하면 최용수 FC 서울 감독,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도 놀라움을 표시했을 정도다.

준비된 자가 만들어 낸 기적이다. 서울의 골문은 국가대표 출신 수문장 김용대가 버티는 자리다. 서울에서만 두 차례 K리그 정상에 오른 김용대의 실력을 의심하는 팬들은 없다. 큰 체격 조건에 언제나 침착하며, 최근에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련미까지 장착해 서울의 골문을 물샐 틈 없이 막아내어 팬들의 신뢰가 두텁다. 이런 붙박이 밑에 있는 백업들은 시쳇말로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도 도통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출전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들 어지간해서는 그 자리를 계속 보존하기도 힘들다.

유상훈도 그런 힘든 처지에 놓인 선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도리어 김용대와 당당히 어깨를 겨뤄도 될 만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월드컵 브레이크 직후 김용대가 다친 틈을 타 서울의 골문을 대신 책임지더니, 프로 3년차라는 적은 경험에 걸맞지 않은 안정적 방어 능력을 과시하며 김용대 못잖은 면모를 보인 것이다. 전반기에 부진했던 서울이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타는데 있어 유상훈의 보이지 않은 공헌도가 매우 컸다. 그런 활약상은 김용대가 부상에서 돌아온 후에도 최용수 감독의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토대였다.

최용수 감독은 이날 포항전을 앞두고 주전 골키퍼를 누구로 낙점할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했다고 경기 후 고백했다. 포항전은 지면 안 되는 단판승부, 게다가 원정골 우선 원칙이라는 달갑지 않은 규정에 묶여 절대적으로 실점해서는 안 되는 경기였다. 이런 경기에서는 빅 매치를 치러본 경험이 많은 김용대가 제격이었다. 사실 김용대의 출전이 최 감독 처지에서 내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 판단이다. 그럼에도 그는 유상훈을 계속 떠올렸다. 최근 경기에서 부족한 경험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며 팀에 공헌한 점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용대를 따로 불러 양해까지 받아내면서까지 유상훈에게 골문을 맡겨 대성공을 거뒀다. 음지에서도 묵묵히 기량을 갈고 닦아 점점 성장하는 애제자의 모습을 도외시할 수 없었던 최 감독의 믿음은 유상훈을 골문 앞에서 더욱 춤추게 했다.

유상훈의 활약으로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 2년 연속으로 당도한 만큼, 주전 골키퍼 장갑을 누구에게 맡길지에 대해 최 감독의 고민이 당분간 더 깊어지지 않을까 싶다. 기실 행복한 고민이다. 이는 후반기 대반전을 노리는 서울의 골문을 더욱 철옹성으로 만드는 효과로 이어질게 자명하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사진=김동하 기자(kimdh@soccerbest1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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