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유준수, 이 남자의 '인생역전 골'

황민국 기자 2014. 3. 1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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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넣고도 실감이 안 나요. 제가 골을 넣은 상대가 진짜 프로팀 맞죠?"

프로축구 울산 수비수 유준수(26)는 경기를 마친 뒤 하루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울산 문수구장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간절히 원했던 프로 첫 골. 골잡이로는 이루지 못했던 꿈을 수비수로 보직을 바꾼 뒤에야 해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듯 했다. 13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는 전날의 흥분이 가득했다.

유준수에게 지난 12일 가와사키전은 기적 같은 행운의 연속이었다. 출전부터 극적이었다. 0-0으로 팽팽하게 맞선 후반 28분, 팀에 미드필더 교체 요원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 '공격도 해본 수비수'인 그가 출전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후반 40분, 공격으로 올라가라는 울산 조민국 감독의 지시를 받자마자 시원하게 헤딩 결승골을 터뜨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골이었다. 경기장에서 유준수의 이름을 외치는 팬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유준수는 "(이)용이 형이 올린 크로스가 워낙 절묘했다. 4년간 기다렸던 순간 같았다"며 "난 평생 프로에서는 골을 못 넣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유준수는 '골'에 맺힌 한이 깊은 선수다. 3년 전인 2011년 인천에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할 때만 해도 신인왕 도전이 거론된 전도유망한 골잡이였다. 그런데 첫 해 18경기, 이듬해 9경기를 뛰었지만 한 차례도 시원하게 골망을 가르지 못했다. 아마추어인 연세대를 상대한 FA컵 경기에서 한 골을 넣은 게 전부였다.

당시 인천 지휘봉을 잡았던 허정무 감독은 "유준수는 꼭 성공할 선수"라고 믿었지만 인천 팬들은 "유준수를 그만 쓰라"고 야유했다. 타고난 재능을 살리지 못한 '유리 심장'이 스스로를 망가뜨렸다. 당시를 떠올린 유준수는 "공 잡는 것도 겁나던 시절"이라고 했다. 결국 유준수는 인천을 떠나야 했다.

무너진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축구에 대한 갈망이었다. 유준수는 내셔널리그 한국수력원자력에서 프로 복귀 발판을 마련했다. 그런데, 골잡이가 아닌 수비수였다. 그는 내셔널리그에서 26경기를 뛰며 5골·2도움을 올리면서 '골 넣는 수비수'로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올해 울산의 지명을 받아 다시 프로 선수가 됐다.

유준수는 "축구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열심히 뛰었는 데 학창시절 은사인 조민국 감독님이 다시 기회를 주셨다"며 "첫 경기에서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은 것 같다"고 멋쩍게 웃었다.

가슴 속 한을 털어낸 유준수는 이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울산에서 자신이 뛸 자리를 찾아내는 게 우선이다. 동료들도 아직 유준수가 어느 포지션인지 모른다. 수비수로 입단했지만 첫 출전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했고 골잡이처럼 골을 넣기도 했다.

그는 현재 골키퍼를 제외한 어느 포지션에도 기용될 수 있는 상태다. 훈련 때마다 자리가 바뀌고 있다. 유준수는 "매일 훈련하는 역할이 달라 동료들이 놀라고 있는데, 경기에만 뛸 수 있다면 어느 자리든 상관 없다"면서 "어디서든 조금이라도 내 몫을 해낸다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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