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④ 최용수, "감독은 사업자, 포장의 달인이 돼야"

류청 입력 2014. 1. 10. 07:43 수정 2014. 1. 1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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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류청 기자= 반전. 최용수 FC서울 감독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다.

필자의 직업을 확인한 남성들은 호기롭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FC서울 감독이 누구지?" 정답을 알게 된 후에는 거의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뭐? 독수리 최용수가 감독이 됐다고?" 아시아를 호령하던 스트라이커 최용수가 세월이 흘러 지휘봉을 잡았기 때문은 아니다. 단순하고, 투박하던 스트라이커가 선수들을 지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포함돼 있다. 그 부분이 더 클지도 모른다.

2011년 4월, 최 감독이 감독대행으로 흔들리던 팀을 맡았을 때는 물음표가 더 컸었다. 서울이 징검다리로 최 감독을 세웠다는 분석이 주류였다. 예상 밖 선전이 이어졌다. 최 감독은 서울의 난맥상을 재빨리 정리하고 팀을 3위에 올려놨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지만, 그에게 돌을 던지는 이는 없었다. 2012년에는 정식감독으로 부임하고 K리그를 거머쥐었다. 2013년에는 AFC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AFC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성공보다 더 놀라운 것은 지휘 방식이다. 묵직함이 아닌 섬세함이 돋보인다. 그의 서울은 세련된 축구를 구사했다. 홈경기 전날 합숙을 없애는 조금은 놀라운 선진성도 보여줬다. 경상도 사투리는 덜어낼 수 없었지만 인터뷰에서 쓰는 어휘의 수준도 높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주도 보여줬다. 주위에서 '독수리가 아니라 여우였다'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다. 도대체 2년 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풋볼리스트'가 '독수리 둥지' 조사에 나섰다.

이 양반, 대응도 능구렁이다. "순리"와 "역지사지"를 외치면서 어려운 질문을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여기 독수리가 여우로 변한 사연을 모두 공개한다.

감독이 되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선수 시절 보여주던 투박함은 사라지고 섬세한 감독만 남았다. 원래 그런 성격이었던 건가? 아니면 변화가 있었나?

사고가 많이 바뀌었다. 선수 때는 경쟁자와의 포지션을 두고 다툼도 벌여야 했고, 포지션도 팀의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곳에 있었다. 생존본능에 따라 움직였었다. 골을 못 넣고 경기를 마무리하면 분통이 터졌다. 그런 생활을 십 수년간 하다가 지도자 됐을 때는 역발상을 했다. 역지사지라고 해야 하나. 내가 선수 때 하던걸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내 플레이는 이기적이고 동료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지 않았나. 그런 게 있었다. 이제 선수가 아니고 선수들과 팀의 전체적인 조직, 큰 걸 봐야 하니까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했다. 접근 방식도 세련되게 바꿔봤다. 누구나 한 번의 실수는 할 수 있다. 그 실수를 가지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기로 했다. 실력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 기다리다 보면 꽃을 피운다. 선수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스킨십을 많이 했다.

감독이 됐을 때부터 가졌던 생각인가, 아니면 감독을 하면서 성장한 결과물인가?

코치가 됐을 때부터 감독이 되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떤 팀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다. 어떤 선수구성을 가져갈 것인지, 사람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좋은 지도자들을 많이 만나서 노하우를 많이 배웠다. 현장실습이라고 할까. 감독 중심이 아닌 선수들이 참여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도 신경을 많이 썼다.

사실 최용수가 지도자가 된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감독과는 먼 성격이었다

셌지. (웃음) 강성이었지. 양보가 없었지. 에고가 강했다. 그런데 사람이 변하더구만. 코치 때부터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간 것 같다. 감독이 된 뒤에도 항상 고민을 많이 했다. 선수에게 어떤 동기부여를 줘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똑 같은 상품을 내놓을 수는 없지 않나. 열정과 욕심만 가지고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질문: 원래 지도자의 꿈을 꾸고 있었나?)다른 건 상상도 못했다. 나는 축구로 한 길을 가고 싶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간접경험을 많이 했다고 했는데, 감독 최용수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준 지도자 혹은 감독은 누구인가?

선수 때부터 복이 있었다. 당대에 뛰어난 분들을 많이 만났다. 오심 감독, 히딩크 감독, 차범근 감독, 조광래 감독, 귀네슈 감독, 빙가다 감독 등등. (감독이 되면서) 선수 때부터 만났던 감독들의 성향을 복기해봤다. '나에게 왜 그랬을까?' 그걸 되돌려보면서 '나도 나 나름대로 축구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가야겠다'라고 생각했다.

학습의 결과 가장 비슷해진 감독은 누구인가?

그 표현이 좋다. 믹스. (웃음) 여러 감독 밑에서 느낀 것을 종합했다. 버릴 건 버렸다. 사실 선수 때부터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와 같은 생각을 많이 했다. 탐구력이라고 하나? 그런걸 즐겼다. 상상력도 생각보다 풍부한 편이었다. 나는 지금도 변화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젊다.

감독 부임 초기보다 언변도 많이 좋아졌다. 물론 윤성효 감독이 더 재미있지만, 일종의 상황으로 웃음을 끌어낸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귀네슈 감독의 인터뷰를 모두 뽑아서 '공부'를 했다고 하던데?

(윤)성효형은 캐릭터가 독특해. (큰웃음) 어차피 내 입을 통해서 우리 선수들의 자신감, 우리의 방향을 이야기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인터뷰는 상당히 중요하다. 만들어갈 게 많다고 생각한다. 귀네슈 감독의 인터뷰를 모두 읽었다.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이겼을 때, 졌을 때 했던 말들을 찾아봤다. 확실히 아..,무리뉴, 퍼거슨, 벵거 감독은 수준이 다르다. 진짜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경직돼 있는 기자회견장 자체를 밝게 만들고 싶었다. 기자회견 못한다고 승점 3점을 빼앗기지는 않지만, 다양한 팬들을 위해 스토리를 만드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감독은 사업자다. 상품인 선수들을 잘 포장하는 포장의 달인이 돼야 한다.

감독 최용수에 주목했던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위기대처능력이다. 경력이 짧은데 위기를 잘빠져 나왔다. 대행 첫 해에 AFC챔피언스리그 8강 탈락, K리그 6강 플레이오프탈락. 고요한이 이흥실 감독대행(전북) 앞에서 신발 끈을 고쳐 멨을 때도 달려와서 사태를 수습하지 않았나

당시에는 순간적으로 생각한 거다. 다행히 일이 커지지 않았다. 일을 크게 만들어서 좋을 게 없다. 결국 축구는 멘탈(정신) 싸움이다. 위기에 빠질 때를 대비해서 여러 가지 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빠르게 처방하고, 그 계획이 맞아 들어가면 희열을 느낀다. 이겼을 때는 다 같이 잘해서 이긴 것이고, 졌을 때도 모두가 함께 책임을 지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누가 실수를 해도 감싸줘야 한다. 실수도 감싸줘야 한다. 입이 있다고 모두가 할말을 다하면 절대 못 이긴다. 가급적이면 긍정적인 말로 배려해줘야 한다. 내 속에서 불이 나도 선수들에게 보이면 안 된다. 내 마음도 못 다스리면서 선수들과 상대를 어떻게 제어하나? 누가 그런 말(화를 내고도 이긴다)을 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리고 난 이제 3년 차다. 실수를 하는 게 당연하다.

지난 '2013 AFC챔피언스리그' 준우승과 몇 번의 좌절도 모두 성장하는데 겪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우승을 했다면 내게는 더 부정적이었을 거다. 리피를 못이긴 것도 순리대로 가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생각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 않나. 그래도 ACL은 도전이 됐다. 훈련하는 것을 다 봤는데 알아흘리, 에스테그랄, 광저우헝다 모두 좋은 팀이더라. 특히 리피와 페헤이라 알아흘리 감독은 팀을 정말 잘 만들었다. 수비시선을 흔들어 놓고, 교란하는 기술이 매우 좋았다.

현장에서 결승전을 봤다. 그런데 의문이 풀리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모두 그럴거라고 생각한다. 1-1 상황에서 하대성을 빼고 최현태를 넣었다. 그리고 교체카드를 한 장 남겼는데

그 때는 뭐 몰리나가 코너킥을 실수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음…참 세트피스에서 뭐 하나가 나오지 않을까. 묘한 그런 게 있었다. 전술전략적으로…(한숨)… 그래도 기가 막힌 게 뭔가 하면, 감독 생활을 오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께서 준우승을 줬다. 남은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선물을 주신 게 아닌가? 열정이 식을 즈음에 준우승을 하다 보니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거지. (웃음)

AFC챔피언스리그 결승전도 그렇고, 몰리나가 기량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도 많았다

'몰리나의 경기력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 애들이 성장한 거다. 몰리나가 처음 왔을 때만해도 애들이 경기 중에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몰리나에게 공을 많이 줬었다. 2012년, 2013년 들어서는 몰리나에게 공을 안 줘도 될 만큼 성장한 거다. 선수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해줬다.

또 한 가지 의문이 있다. 합숙폐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전지훈련, 합숙을 병적으로 많이 했다. 시대가 변했다. 자율성을 부과하면서 책임을 묻는 시대다. 우리 선수들 보니까 자기관리에 상당히 노력들을 많이 하더라. 왜 굳이 경기 전날 합숙을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여름철에 저녁 경기를 하면 아침에 밥 먹고 얼굴보고 또 밥 먹고, 지겨울 수 있다. 각자의 생활 패턴이 있다. 좋은 컨디션을 가져오려면 생활리듬을 맞춰줘야 한다. 그런 이야기도 들어왔지. 누구를 경기 전날 밤늦게까지 봤다는 둥. 강남 쪽이라는 둥. 내가 눈으로 확인 못했기 때문에 절대로 믿지 않는다. 우리 선수들은 노출이 된 애들이라 시기질투를 받을 수 있다. (질문: 만족하나?)진짜 만족한다.

앞으로 믿음에 반하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되는 건가?

가차 없지. 나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팀과의 약속이다. 믿음이 쌓이는 게 중요하다. 진짜 신뢰로 가는 길이다. 나도 그런 게 깨지는 게 싫다. 경기 전날 우리 동네를 차 몰고 돌아다닐 수도 없고, 안테나를 열어둘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웃음) 노는 건 내가 일 등으로 해봤지 않나. (웃음) 선수들을 믿는다.

내년에 대한 구상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중요 선수들이 많이 빠졌다

기존 선수들이 빠지면서 새로운 선수들과 새로운 축구를 해야 한다. 이제 진짜 최용수의 축구가 시작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만, 정말 팬들이 원하는 역동적인 축구를 계속하고 싶다. 서울을 상품화를 하고 싶다. 성공 혹은 실패는 반반(확률)인데, 관중들은 골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골이 나야 한다. 골이 많이 나는 게임을 하고 싶다.

2014시즌에는 스승격인 이차만 경남 감독, 박종환 성남 감독과도 대결을 벌여야 한다

한국 축구에 한 획을 그은 분들이다. K리그는 위기라면 위기다. 그런 상황에서 풍부한 경험을 가진 분들이 오셨다. 환영할 일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채찍 속에서 담금질을 받았다. 잠깐 잊고 있었는데, 그렇게 과감한 질책("젊은 지도자들은 경험이 부족하다")을 해 주시니 좋은 자극이 된다. 다양한 감독님들과의 신구경쟁이 기대된다.

갑자기 든 생각이다. 윤성효 감독과는 정말 껄끄러운 사이인가? "해외로 나가시라"고 부탁도했는데

차~암 냉정하다. 진짜 공사구분을 잘하는 분이다. 나와 막역한 관계를 부드럽게 다져가면서 승부 앞에서는 1%의 양보도 없다. 나도 터득을 했다. "예~예" 하면서 확 해버린다. (웃음)많은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일은 긍정적이라고 믿는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감독으로서 선수 최용수를 사용할 것인가? 반대로 선수 최용수는 감독 최용수와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나?

선수로서의 장점이 있으니 그래도 경력을 쌓은 게 아닌가. 그런데 다시 하면 제대로 축구를 하고 싶다. 학창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일들을 하는 과감한 학생이었다. 다시 태어나면 모범생이 되고 싶다. (웃음) 감독 최용수를 대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같은 스타일은 정공법으로 가면 통한다. 남자 대 남자로 이야기하면 된다. 눈을 보고 진정성 있게 이야기하면 된다.

사진=서울, 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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