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사춘기' 박주영과 버릇 잘못 들인 축구인

2012. 5. 1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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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박주영과 태극마크의 오랜 인연이 최악의 방식으로 파국을 맞이하고 있다.

박주영은 스페인과의 평가전과 브라질월드컵을 최종예선에 출전하는 최강희호의 선수명단에서 탈락했다. 박주영이 부상 같은 사유를 제외하고 대표팀에서 탈락한 것은 남아공월드컵 허정무호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최강희 국가대표팀 감독은 박주영의 대표팀 합류를 위해 마지막까지 손을 내밀었지만, 박주영은 그마저도 철저하게 뿌리쳤다. 소속팀에서 1년 가까이 경기에 제대로 나서지도 못한 선수. 더구나 편법 병역연기 파문으로 국민적 반감을 자아내며 논란의 중심에 놓친 선수를 대표팀에 발탁한다는 것은 어차피 어떤 감독이라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대목이다.

그럼에도 모든 논란을 감수하며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는 감독의 '마지막 배려'를, 박주영은 가타부타 제대로된 반응조차 보이지 않고 아예 무시하는 것으로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렸다. 작게는 감독-선수 관계를 떠나 축구계 직속 선배에 대한 무례이자, 국가대표 선수로서 박주영의 책임감 있는 처신과 최소한의 해명을 기대했던 대중의 정서마저 무시한, 무한 이기주의의 극치다.

박주영의 현재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유럽시즌이 끝난 이후 국내에 돌아와 있고, 자신을 둘러싼 논란이나 최강희 감독의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서 모두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러나 박주영은 국가대표 명단 발표를 코앞에 둔 시점까지 축구협회에 자신의 신상이나 연락처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잠적' 상태인 데다, 최강희 감독의 기자회견 요청까지 사실상 거부한 모양새다. 한마디로 더 이상 태극마크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처신이다.

박주영,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스페인과의 평가전과 브라질월드컵을 최종예선에 출전하는 최강희호의 선수명단에서 탈락한 박주영 선수(자료사진).

ⓒ 유성호

박주영은 여론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병역논란으로 자신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된 가운데 대중 앞에 나서야 한다는 부담감과, 해명 기자회견을 전제로 한 협회의 조건부 대표발탁 등의 카드에 거부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박주영 입장에서는 본인이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대표발탁에 자신의 사적인 문제가 연관되고, 기자회견 등을 통하여 해명해야 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주영의 병역논란에서 최대 쟁점은 '합법과 편법' 사이의 줄다리기에 있다. 일단 박주영의 병역연기에 규정상 법을 어긴게 아니라는 점에서는 분명 합법이다. 그러나 해외에서 활동중인 축구선수라는 지위와, 이민자를 위한 규정을 이용해 자신이 현재 거주하지도 않는 지역의 거주권을 얻어 병역연기 혜택을 얻었다는 것은, 법의 허점을 노린 꼼수라는 점에서 '편법'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는 선수 자신이 마음 먹기에 따라서 군 면제효과를 누릴 수도 있는 엄청난 혜택을 챙겼고, 이것이 앞으로 병역문제에서 다른 운동선수나 국민들에게 선례가 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이미 박주영 개인의 사적인 일을 넘어선 사안인 것이다. 박주영이 일반인도 아닌, 나라를 대표하여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선수이고, 그가 편법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한국에서 축구와 국가대표 선수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고 얻어낸 지위임을 감안할 때, 축구계나 국민들이 박주영의 공적인 처신에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그렇다면 박주영은 굳이 최강희 감독의 기자회견 권유가 없었더라도 이미 오래 전에 공개적인 해명이 있었어야 했다. 그것이 대국민 사과든, 현역 입대 약속이건, 아니면 설사 국가대표 발탁 거부와 모나코 이민(?)을 선언한다 할지라도 분명한 입장을 정리해놓는 것이 자신뿐만 아니라 박주영 때문에 덩달아 곤욕을 치르고 있는 대표팀 감독들과 태극마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박주영 입장에서는 최강희 감독과 축구협회의 기자회견 요구가 강요처럼 들려서 서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 사태를 초래한 것은 어차피 처음부터 박주영 자신이었고, 적어도 박주영이 당당한 남자라면 먼저 스스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였여야 옳은 것이다. 그러나 박주영은 이번에도 또 한 번 입을 꽁꽁 닫고 숨어버렸다. 최강희 감독을 비롯하여 차범근, 조광래, 이영표처럼 비난 여론 속에서도 꿋꿋이 박주영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를 옹호해주던 축구계 선배들의 배려에도 침을 뱉은 꼴이다. 그래도 한 나라의 국가대표였고 캡틴까지 지냈던 선수의 처신이라기에는, 사춘기 10대 소녀만도 못해 보이는 철없고 유치한 반항이 아닐 수 없다.

눈치만 보고 있던 축구계와 축구인들의 기회주의적 행태도 한몫

또한 박주영 사태가 이 지경까지 악화된 데는 처음부터 이 문제를 공론화하여 당당하고 엄정한 원칙을 세우지 못하고 이래저래 눈치만 보고 있던 축구계와 축구인들의 기회주의적인 행태도 한몫을 담당했다.

박주영 병역논란이 처음 알려졌을 때도 축구계는 침묵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쓴소리나 문제 제기보다는, 감상적인 관점에서 박주영의 처신을 옹호하거나 심지어 미화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2002월드컵을 통해 군면제혜택을 받았던 이영표는 "박주영이 군대가서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오히려 축구를 통하여 나라에 기여할 일이 많은 친구"라고 옹호하며 병역 의무를 준수한 일반 국민들의 입장을 무시하는 발언을 거리낌없이 내뱉기도 했다. 차범근은 SNS를 통하여 "박주영을 한 번만 너그럽게 봐주시면 좋겠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도 박주영의 처신이 무엇 때문에 잘못된 것이며, 앞으로 이런 사태가 또 벌어졌을 때 어떤 원칙을 적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에서는 하나같이 제대로 거론한 적이 없었다. 축구협회나 대표팀 감독들도 박주영 문제에 있어서, 결국 성적지상주의 관점에서 박주영이라는 카드가 대표팀에 써먹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손익계산'에 대해서만 고민했을 뿐, 진심으로 태극마크의 가치나, 병역의무를 바라보는 국민 정서에 관하여 정말로 깊이있게 이해하려는 진정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축구선수가 축구만 잘하면 된다는 말, 당연한 것 같지만 어찌보면 가장 무책임한 말이기도 하다. 국가대표 축구선수로서의 자격이나 사회적 인성보다는, 단지 박주영으로 대표되는 '축구기계'만을 필요로 했던 축구인들의 비겁함이야말로 이번 사태를 악화시킨 근본적 원인이 아닐까. 결국 그가 아무리 소속팀에서 출전기회를 잡지 못하건, 병역논란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건, 과감히 대처하지 못하고 선수의 눈치만 보며 끌려다닐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조광래 감독도 최강희 감독도 박주영에 목을 매달고 마치 한국축구가 '박주영 한 명없으면 안 돌아갈 것 같은' 한심한 착각에 휩싸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특혜에 길들여진 선수의 버릇만 더욱 나빠지게 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하지만 정작 박주영은 자신이 과연 국가대표 선수로서 그간 얼마나 많은 특혜와 배려를 누려왔는지 알고는 있었을까. 최강희 감독과 축구협회의 마지막 하소연마저 매몰차게 무시한 박주영의 처신은, 결국 태극마크나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공적인 책임감보다 자신의 자존심이나 사적인 이익이 더 앞선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모습이다. 박주영은 이미 지금까지의 처신만으로도 더 이상 태극마크를 달 수 있는 자격을 잃어버렸다. 박주영에 굽실거리다 결국 뒤통수를 맞은 축구인들이 남탓하기 전에 스스로부터 먼저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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