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률의 S담쓰談]'은퇴한 여왕' 김연아의 사생활, 어떻게 봐야 할까

조회수 2015. 4. 9. 08: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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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후배 기자들에게 기사에 '전무후무'라는 단어는 굉장히 조심해서 쓰라고 주의를 줄 때가 있다. 스포츠에서 선수 또는 팀이 엄청난 업적을 달성했을 때 종종 쓰이는 표현인데 가급적 피하라는 말을 해준다.

전무후무(前無後無)는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과거는 없었다 해도 아무리 대단한 기록이라도 미래에까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표현이 쓰인 기사를 보면 나중에 해당 기록이 깨지면 그 기사도 함께 고쳐져야 하나 생각도 든다.

그래서 '전인미답(前人未踏)' 정도의 대안이 있다고 말한다. 앞선 사람들이 밟지 못했다는 뜻이다. 또는 전에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뜻의 '전대미문'(前代未聞), 이전에는 없었다는 뜻의 '미증유'(未曾有)도 있다. 안심하고 엄청나고도 대단한 기록과 업적에 쓸 수 있는 표현들이다.

그럼에도 전무후무라는 표현을 써야 할 것 같은 선수는 있다. 바로 '피겨 여왕' 김연아(25)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피겨 스케이팅에서 피어난 빙판 위의 꽃이다. 예전에는 당연히 없었을 선수였거니와 사견이지만 앞으로도, 아마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재능과 연기일 것이다.

< 김연아가 지난해 소치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에서 아쉽지만 값진 은메달을 따낸 뒤 태극기를 들고 포즈를 취한 모습.(자료사진=대한체육회) >

수정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김연아가 한국 스포츠계에 미친 어마어마한 영향력과 충격 때문이다. 한국 피겨 사상 올림픽은 물론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 그랑프리 시리즈까지 전인미답의 우승 퍼레이드로 금자탑을 쌓았다.

대한민국에 피겨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김연아의 후광은 선수 은퇴 1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아직도 CF 모델 1순위로 꼽히는 그는 광고주, 소비자들을 잡아끄는 힘을 가졌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을 전후해 CF 전성기를 찍었던 '김연아의 일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도 TV를 켜면 그의 웃는 얼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전무후무의 또 다른 이유는 김연아의 사생활이다. 아마도 은퇴한 선수, 그것도 1년여가 지난 선수의 연애 생활이 이처럼 주목을 받는 경우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그만큼 김연아가 대중에게 얼마나 깊은 관심을 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교제 사실이 밝혀졌다가 결별설이 났던 아이스하키 선수 김원중과 최근 다시 만난다는 내용이다.

둘의 재결합 여부는 뜨거운 화제가 될 만하다. 빼어난 기량에 깜찍한 외모까지 갖춰 '국민 여동생'으로 불린 김연아이고 보면 어지간한 국민들이라면 모름지기 귀를 쫑긋할 것이다.

< '다시 같은 곳을 바라보나' 지난해 열애 사실이 밝혀진 피겨 스타 김연아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김원중.(자료사진=노컷뉴스 황진환 기자) >

하지만 과연 김연아가 지금도 '공인(公人)'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1년이 넘은 김연아가 여전히 그 범주에 들까 하는 점이다. 둘의 재결합 여부를 떠나 그런 생각이 먼저 든 것은 역시 김연아를 취재해왔던 빙상 담당 기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를 취재해서 기사를 써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섰던 까닭이 아닐까 싶다.

공인은 공적인, 즉 국가나 사회에 관계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공직자나 정치인, 기업인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 등 인지도가 높은 인물에게도 포괄적으로 쓰인다. 엄밀히 따져 공인은 아니나 어린 학생과 일반인까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까닭에 범위에 포함되는 추세다.

김연아는 지금 선수가 아니다. 지난해 소치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렇게만 보면 김연아는 공인은 아니다. 현재는 대학원생이며 공식 직함이 있다면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쯤 될 것이다. 김연아는 앞서 경기도, G20 서울 정상회의, 한국방문의 해, 한식세계화, 서울특별시, 세계헌법재판회의 등 숱한 홍보대사를 맡았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라는 의미있는 역할도 수행했다.(이렇게 홍보대사를 많이 한 스포츠계 인사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그렇다면 김연아는 여전히 공인일까. 평창올림픽이 국가의 중대사인 점을 감안하면 포함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생활이 이렇게 집중 조명되는 홍보대사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전무후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 각종 CF를 섭렵해온 유명인인 까닭에 절반쯤은 공인이라고 해도 될 법하다. 그래서 더욱 깊은 고민이 생기는 것이다.

< '평창을 위해' 김연아(오른쪽)가 평창올림픽 홍보대사로 위촉돼 조양호 조직위원장과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

김연아가 정말 공인이었던 때, 그러니까 선수로 뛰던 시절 적잖은 빙상 담당 기자들은 그의 사생활에 대한 보도를 할 기회가 있었다. 김연아와 김원중의 교제 사실은 알음알음 관계자들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소식에 가장 늦고 어두운 필자조차도 어쨌든 귀에 들어왔던 소식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이에 대한 보도는 나가지 않았다. 소치올림픽을 앞두고 훈련을 하거나 이미 경기를 치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소치올림픽 기간 현지 취재진의 모임 때 김연아-김원중의 교제는 공통된 술자리 화제였다. 다만 피겨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생활인 데다 경기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비슷한 예가 '빙속 여제' 이상화(26)다. 소치올림픽 기간 이상화는 당시 연인과 결혼설 보도가 터졌다. 현지가 아닌 국내에서 취재한 내용으로 보도가 나갔다. 이에 이상화는 현지 인터뷰에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추측성 기사가 나와 당황스럽다"면서 "1000m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주종목인 500m에서 올림픽 2연패를 이룬 뒤였기에 망정이지 그 전에 기사가 나왔다면 아찔할 뻔했던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김연아의 열애설 보도는 다행히 소치올림픽 이후에 터졌다. 빙상 담당 기자도, 스포츠 매체도 아닌, 연예 잠복 전문 매체가 터뜨린 이른바 '파파라치' 보도였다. 당초 이 매체는 김연아의 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2연패가 이뤄지면 대대적으로 둘의 데이트 사진과 열애 기사를 뿌릴 예정이었다는 말이 들렸다. 그러나 석연찮은 판정 속에 김연아가 은메달에 머물면서 보도는 미뤄졌고, 결국 묵힐 수는 없었는지 지난해 3월 6일에야 세상 밖에 퍼졌다.

파급력은 대단했다. 한동안 김연아의 열애와 관련한 이슈가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필자 역시 이와 관련된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당시 김원중의 소속팀인 상무 경기에는 구름 취재진이 몰렸다. "김연아가 대단하긴 하다. 이때 아니면 언제 관심을 받겠느냐"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 아이스하키 관계자도 있었다.(아마도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싶다.)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 김연아가 이미 선수 은퇴를 한 다음에 터진 열애설 보도였다. 특히 김연아의 어머니가 대표로 있는 소속사 올댓스포츠는 교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둘의 사진을 한 매체가 공개한 이후 관련 동영상이 무단 유포되고 당사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수준의 사진 및 기사가 지속적으로 게재되고 있는 데 대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발끈했다.

< 지난해 3월4일 김연아가 팬 미팅 때 다소 표정을 찡그리는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

당시 올댓스포츠는 "스포츠 선수가 공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적인 생활을 해당인의 동의 없이 공개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했다. 주목할 것은 공인이라는 표현이다. 일단 김연아가 그때까지는 선수이고 따라서 공인이라는 것까지도 인정했다.

하지만 약 1년이 지난 현재는 어떨까. 과연 김연아를 공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왕관을 벗어놓은 여왕, 김연아는 지난해 소치올림픽에서 돌아온 뒤 일주일 정도 지난 팬 미팅 행사에서 "운동할 때는 경기에 대한 압박, 두려움이 있었고, 긴장하면서 하루하루 사는 게 스트레스였다"면서 "이제 그런 것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왕관과 함께 그동안 짊어졌던 엄청난 부담까지 김연아는 내려놓은 것이었다. 공인이 아닌 일반인으로 돌아가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일상을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올림픽 선수촌 음식이 질렸고, 체중 조절을 할 필요가 없어서 집밥을 마음껏 먹었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연애는 하나의 일상이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청춘을 누구나처럼 발산할 때가 왔다.

그런 김연아에게 그의 연애에 대한 관심과 보도는 또 하나의 부담을 어깨에 얹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이제 그는 선수가 아니다.

물론 둘의 재결합설 보도에 문제가 있어 딴지를 거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와도 한두 해 친분이 아니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기사다. 만약 알았더라면 필자 역시 기사화했을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 역시 은퇴 이후에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그 역시 중국 슈퍼리그, 런던올림픽 등 홍보대사를 역임했거나 하고 있고,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맡기도 했다. 김연아의 기사 역시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상할 게 없다.

다만 '은퇴한 여왕' 김연아의 사생활에 대해 한번쯤 고민을 해보자는 얘기다. 기사를 쓰지 못한 것은 몰라서였을뿐더러 거기에 대한 관심은 없었기 때문에 '않은' 것이기도 하다. 올댓스포츠는 김연아의 연애사에 대해 "사생활이라 알기 어렵다"고 했다. 1년 전과 달리 알아도 굳이 알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둘의 재결합 보도의 주체는 김연아가 아닌 김원중이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는 여전히 현역 아이스하키 선수로 확실한 공인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비인기 종목이지만 지난해 김연아와 열애 보도로 그에 대한 지명도는 이미 여느 스포츠 스타 못지 않다.

앞으로 김연아는 결별과 새로운 만남, 일반적인 남녀의 과정을 더 겪을지도 모른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20대 중반의 청춘이 대부분 그렇다는 얘기다. 그 새로운 상대가 공인일 수도, 일반인일 수도 있다.

현재의 재결합이 사실이고 그 만남이 좋은 결실을 맺는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고 또 그 상대가 일반인이라면 또 어떤 보도가 나와야 할까. 사실 김원중도 어떻게 보면 일반인에 가까웠다. 김연아와 함께 조명을 받으면서 비로소 공인이 됐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최근 K리그에 복귀한 박주영(FC 서울)도 10년 전 일반인이던 여자 친구가 공개돼 큰 홍역을 치른 바 있다.

< '역시 빙판 위를 수놓을 때가' 김연아의 현역 마지막 시즌인 지난해 경기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

신문을 보면 동정란이 있다. 이른바 공인들의 동정(動靜)을 싣는 코너다. 기부나 행사 참여, 고위 공직자들의 인사 이동 등이 실린다. 유명인의 경우 결혼과 파경, 부음 소식까지 나오기도 한다. 연예인이 아닌 이상 그들의 연애와 결별 소식까지는 없다.

'피겨 여왕'은 이제 재위(在位)를 마쳤다. 여왕이 아닌, 그렇다고 평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특별한 김연아의 연애사를, 사생활을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미증유, 아니 전무후무한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도 최근 기사가 길어서 고민인 필자에게도 이렇게 긴 칼럼은 전무후무할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만약 그 김연아가 결혼이라도 한다면? 그 역시 아마도 대한민국 스포츠 사상 전무후무한 관심을 받는 대형 사건으로 남을 듯하다. 스포츠는 물론 대한민국 모든 매체가 논란의 여지 없이 떠들썩하게 다루고 축하해줘야 할 일이 될 것이다.

글=CBS노컷뉴스 체육팀장 임종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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