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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기] 블루팡스의 야전사령관 유광우 (2) 화려한 날은 추억으로… 발목이, 발목을 잡다

출처 삼성스포츠 | 입력 2013.04.2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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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스포츠] 대한항공 (김)학민이 형의 오픈 공격을 (석)진욱이 형이 몸을 날려 받아냈다. 이제 세터인 내 차례다. 날아오는 공을 받아 왼쪽에 있는 레오에게 띄웠다.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레오가 힘차게 팔을 휘둘렀다. '팡'…. 대각선으로 날아간 공은 굉음과 함께 그대로 상대 코트에 꽂혔다. 끝났다. 우리가 이겼다. 삼성화재가 또 이겼다. 6년 연속 우승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함이 온몸을 휘어 감았다. 배구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배구는 나의 전부니까.

(2) 화려한 날은 추억으로… 발목이, 발목을 잡다

인창중학교를 졸업하고 인창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인창고는 '전설의 거포' 장윤창 선배님을 배출한 배구 명문고다. 고 1때까지 주로 벤치를 지켰던 나는 고 2때부터 주전으로 나섰다. '세터 유광우'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고 3때였다. 그 해 우리 인창고는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고교를 졸업할 즈음 나는 전국 대학의 영입 1순위로 꼽혔다. 아, 현재 삼성화재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토종 공격수 (박)철우는 빼고 말이다. 동갑내기인 철우는 경북사대부고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실업 현대캐피탈에 입단했다. 철우가 대학에 갔다면 아마 랭킹 2위였지 않았을까^^.


고교를 졸업하고 인하대에 함께 진학한 우리 고교 동기들은 더 똘똘 뭉쳤다. 현재 대한항공에서 뛰고 있는 이상래와 김민욱, 지금은 코트를 떠난 임시형 등이 그들이었다. 게다가 박철우와 함께 고교 시절 '최고 공격수' 자리를 놓고 다퉜던 김요한(광주전자고)까지 합류했으니 전문가들이 '인하대 전성시대'를 예고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3학년 때 인하대는 대학배구 5관왕을 차지했다.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컵을 안았다. 4학년 때도 4관왕을 휩쓸었다. 대학 3, 4학년 때는 '누구와 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정말 화려한 날들이었고 내 배구 인생의 전성기였다. 어느 순간 내 이름 앞에는 '천재 세터'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과도한 칭찬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당시에는 정말 내가 최고의 세터라는 생각도 했다.

대학 4학년 때 드디어 성인 대표팀에 뽑혔다. 슬그머니 욕심이 생겼다. 대표팀에서도 나의 존재를 보여 주고 싶었다. 소속팀-성인 대표팀-유니버시아드 대표팀을 오가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몸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화근이 됐다. 2007년 여름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서 훈련을 하다 오른 발목에 큰 통증을 느꼈다. 이전부터 계속 좋지 않았지만 참고 뛰었던 부위였다. 시간이 지나니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그 상태로 경기에 나서기를 반복했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상대편에게 밟히면서 더 큰 고통을 느꼈지만 '이러다 낫겠지'라는 생각에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해 11월에 열린 2007~2008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순위로 삼성화재에 지명됐다. 나는 그 때 월드컵 대회 출전을 위해 일본에 가 있었다. 현지에서 한 기자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믿기지 않았다. 삼성화재는 직전 시즌 현대캐피탈에 이어 2위를 했던 팀이기 때문이다. 지명 순위는 보통 직전 시즌 팀 순위의 역순이다. 이에 따라 LIG손해보험이 1순위, 대한항공이 2순위 지명권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해 확률추첨을 실시한 덕분에 삼성화재는 LIG손해보험에 이어 2순위 지명권을갖게 됐고 나를 뽑았다. 학생 시절부터 내 롤 모델은 삼성화재의 태웅이 형이었다. 그런 선배와 함께 뛸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은 첫날부터 발목이 문제였다. 정해진 훈련을 반도 마치지 못했는데 발목이 퉁퉁 부어올랐다. 제대로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신치용 감독님께서 보시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호통을 치셨다.
"이 발목으로 무슨 배구를 해. 당장 병원에 가 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