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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준의 쿨~한 만남]<18> 심권호 격정토로 "레슬링 퇴출? IOC 논리라면 '알까기'도 올림픽 종목돼"

출처 스포츠서울 | 김용일 | 입력 2013.02.1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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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리더와 뉴스메이커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현재를 살고 있는가. 또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가. "따분한 보수는 가라"며 '쿨 보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이 변화와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들과 특별한 만남을 갖는다. 20~40대가 주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 스포츠서울닷컴 > 과 '쿨한 융합'이라는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는 곽승준이 펼치는 색깔 있는 대화는 뉴스메이커들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장이 될 것이다. < 편집자 주 >





'한국 레슬링의 전설' 심권호(왼쪽) LH 스포츠단 코치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 함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이새롬 기자

지난 12일 저녁 퇴근길에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20 하계올림픽 25개 핵심 종목을 발표했는데 레슬링을 제외했다는 것이다. 보도 직후 세계 레슬링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고 나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대올림픽과 근대올림픽 태동을 함께한 레슬링이 한순간에 올림픽에서 볼 수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레슬링은 모든 스포츠의 근간이 되는 종목이며 몸과 몸이 부딪치며 힘과 기술을 겨루는, 그야말로 올림픽 정신에 가장 들어맞은 종목이라고 평소 생각해왔다. 근대올림픽의 이상은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에 있다. 근대올림픽의 표어 역시 라틴어인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가 아닌가. 재미가 없어 레슬링을 퇴출한다면 표어 또한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재밌게'로 바꿔야하지 않을까. 오는 5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IOC 집행위원회와 9월 부에노스아이레스 IOC 총회에서 번복될 가능성은 남았지만, 현실적으로 희박하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 비록 대한민국 국기인 태권도는 퇴출을 면했지만 말이다.

레슬링의 앞날에 대해 골몰히 생각하던 중 지금도 태릉선수촌에서 땀을 흘리고 있을 한국 레슬링의 미래가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람, '작은 거인'이라 불리는 심권호(40) LH스포츠단 코치가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갔다. 예상대로 그는 레슬링 퇴출 보도 이후 수많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말도 안 되는 결정"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그레코로만형 48kg급에서 금메달을 딴 심 코치는 유럽의 텃세로 해당 체급이 폐지됐으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54kg급으로 출전해 2연패에 성공했다. 아시아경기대회, 아시아선수권, 세계선수권에서도 48kg과 54kg에서 모두 우승하며 사상 첫 2체급 그랜드 슬램이라는 위업을 이뤘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김현우라는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으나 한국 레슬링은 '제2의 심권호'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레슬링 퇴출 보도가 나온 지 이틀이 지난 14일 광화문에서 만난 심 코치는 IOC 집행부의 이해할 수 없는 결정에 대한 견해와 대한민국과 세계 레슬링이 가야 할 방향은 물론 아직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지 못한 사연 등 가감 없는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들려줬다. "아휴~"라는 한숨 소리가 마음 한쪽을 아련하게 했지만, 심 코치의 소신있는 말 한마디를 듣고 있노라니 레슬링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겠다는 확신도 갖게됐다.





레슬링의 올림픽 퇴출에 대해 "논거 없는 결정"이라고 반박한 심 코치.

- 좋지 않은 소식을 들어 유감입니다. 레슬링은 국내는 물론 세계 스포츠계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종목이죠. 올림픽에서 퇴출당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어요.

한마디로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격'입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퇴출설이 한 차례 있긴 했어요. 패시브 방식 변경과 세트제 도입 등 IOC에서 원하는 대로 모두 바꿨죠. 꾸준히 룰 변경을 통해 재미있고 역동적인 스포츠라는 이미지를 심어줬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퇴출입니다. 국제레슬링연맹(FILA)도 IOC 발표 15분 전 통보받았다고 해요. 사전에 계획된 일이었고, 음모가 많은 결정입니다.

- 주변 선후배들의 충격이 상당할 것 같은데요.

저도 소속팀 감독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뉴스를 보고 알았습니다. 어이없는 결정에 충격이 컸죠. 다들 그날 폭음했습니다. 현재 감독과 코치는 선수들을 운동시키면 욕먹는 상황이 됐어요. 무조건 쉬게 해야 합니다. 선수들의 기가 빠졌어요. 오늘도 오전 운동만 하고 쉬고 있죠.

- FILA의 영향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됐나요?

구체적인 영향력에 대해서는 거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라파엘 마르티니티 FILA 회장서부터 IOC와 소통에 소홀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미움을 샀죠. 특히 IOC집행부는 레슬링을 하지 않는 국가의 사람들로 많이 구성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레슬링을 안 하고, 못하는 국가가 내친 것과 다름없죠. '(레슬링이) 재미없다'는 말엔 동의할 수 없어요. 특정 종목을 거론하진 않겠지만, IOC에서 내세운 '재미'라는 조건(관중 유치, 스폰서 등)에 들어맞지 않는 종목은 훨씬 많습니다.

- 과거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 레슬링은 중·고등학교생에게 큰 인기였어요. 심지어 UFC도 주종목이 레슬링이잖아요?

그렇죠. 레슬링을 배우지 않으면 몸 자체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IOC에서 레슬링을 재미있게 만들겠다고 룰 변경을 자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재미를 찾으려면 예전처럼 몸을 부딪쳐야 해요. 5분 1회로 해서 공격 안 하면 바로 1점씩 주고, 패시브를 줘서 밀어붙여야죠. 이제 와서 수비적인 종목이라고 비난하니 어이가 없어요.





평소 레슬링 팬이기도 한 곽 위원장(오른쪽)은 심 코치에게 미국 유학 시절 레슬링 열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뉴욕타임스' 등 세계 유력 언론은 레슬링 퇴출에 대해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다고 해요. 퇴출 1순위로 거론된 근대5종은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명예위원장의 아들인 사마란치 주니어 근대5종연맹 부회장이자 IOC 집행위원의 힘이 컸다더군요.

퇴출 후보로 거론된 종목보다 레슬링이 로비에서 많이 뒤처졌다는 얘기를 해요. 사실 로비란 게 별거 없습니다. 각 종목 수장이 IOC 집행부와 밥 한 끼를 해도 로비죠. 레슬링 수장은 그런 부분을 간과했어요. 불행하게도 지금은 돈 많고 인맥 좋은 사람이 IOC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 올림픽에 자신이 바라는 종목을 넣을 수 있습니다. 바둑알로 하는 '알까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돈 많고 영향력이 있으면 올림픽 종목이 될 수 있다는 거죠. 허탈합니다.

- 태권도와 유도, 레슬링 등 투기 종목이 항상 퇴출 후보로 거론돼요. 유럽 선수가 약한 원인이 크지 않은가요?

유럽에서도 서유럽입니다. 영국서부터 귀족 문화가 강합니다. 레슬링을 안 하는 이유를 듣자하니 옷을 벗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야구는 '홈스틸'등 훔치는 개념이 있어서 안 한다고요. 이건 무게만 잡는 거죠. 올림픽의 취지는 그야말로 운동 열심히 해서 보상받는 순수한 스포츠 축제입니다. 물론 상업적인 부분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돈이 돌아야 운동하는 사람들도 힘이 나죠. 그런데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장난을 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퇴출이 확정된 건 아니죠? 5월 러시아 집행위원회에선 러시아가 레슬링 강국이니까 직접 나서지 않을까 하는 레슬링계의 기대가 크던데요.

전 세계 레슬링인이 다 나서야 합니다. 저 역시 요청을 받으면 어디든 날아가서 도움을 주고 싶어요. IOC 홈페이지에도 목소리를 높일 자신 있습니다. 우선 FILA는 회장 등 오랜 관습에 젖은 집행부 교체를 단행해야 합니다. 새롭게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를 갖춰야 합니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 세계 레슬링계가 이번 일로 충격에 빠져있고 똘똘 뭉쳐 있습니다. (퇴출 번복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레슬링의 올림픽 퇴출 보도를 접한 후배 선수들의 반응을 묻자 쓴웃음을 짓는 심 코치.

- 심 코치가 은퇴한 이후 한국 레슬링이 한동안 침체기였어요. 지난해 김현우 선수가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다시 주목받을 기회였는데.

그래서 더 아련해요. 현재 태릉선수촌에서 운동하는 20대 후배들이 이제 무슨 동기부여로 운동하겠어요. 프로레슬링을 하고 싶어도 국내는 관련 시장이 협소합니다. 레슬링에 관중이 없다고요? 어느 올림픽을 가봐도 레슬링 경기장은 항상 만원 관중입니다. 저 역시 1996 애틀랜타 대회 우승했을 때 손을 흔드는데 눈 뜨기 힘들 정도로 플래시 세례를 받아봤습니다. 아직 독일 등 국외에서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도 봤고요. 도대체 왜 레슬링을 이런 식으로 버리는거죠?

- 우선 심 코치를 비롯해 세계 레슬링인들이 힘을 쏟고 있으니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될 것 같군요. 오히려 전화위복이 돼 레슬링이 더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요.

저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IOC 측에서도 이제껏 종목 퇴출 이후 이런 반응도 처음 겪어볼 테니까요. 이번 기회에 레슬링인이 하나가 돼야 합니다. 사실 레슬링 선수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다 친분이 있습니다. 서로 때리는 종목이 아니라 기술을 받아주는 종목이다 보니 친밀감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 그러고 보니 레슬링은 '쫄쫄이 핫팬츠'를 입어서 상대 선수의 털이나 냄새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다고 들었어요.(웃음) 1993 히로시마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곤혹스러웠다고요.

당시 무명의 인도 선수였는데 인사할 때부터 냄새가 아주 역했어요.(웃음) 심적으로 흔들렸죠. 그런데 결과는 패배였어요. 이변이었죠. 한 번은 러시아에서 국제대회를 했을 때였는데 5m 전방에서 러시아 선수가 다가오는데 냄새가 심했죠. 정말 마음속으로 빨리 끝내자고 생각했어요. 실제 1분 30초 만에 테크니컬 폴로 누르고 빠져나왔어요. 그런데 제가 경기장을 빠져나갈 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갈라서더라고요.(웃음) 몸과 몸이 닿는 운동이라서 규정상 머리털이나 수염도 짧고 까칠하게 하면 안 됩니다.





곽 위원장은 심 코치가 선수 시절 '적이 없는 선수'로 불려 상대 선수에게 미움을 사지
않았느냐고 질문하며 웃고 있다.

- 심 코치는 선수 시절 '적이 없는 선수'였어요. 그만큼 상대 선수들이 싫어했을 것 같아요.(웃음) 어느 선수와 가장 가까웠나요?

아무래도 저와 라이벌이었던 북한의 강용균이죠. 그 친구는 평소 제게 "형"이라고 다정하게 부르는 친구였죠. 시드니 올림픽까지 쭉 함께 선수 생활을 했는데 당시 제가 금메달, 그 친구가 동메달을 땄어요. 경기 후 "형 때문에 내가 많이 혼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러면서 "난 솔직히 형한테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어떻게 보면 미안했으나 냉정하게 승부를 했기에 더 친해졌어요.

- 국민들은 심 코치가 레슬링 국가 대표 코치진으로 언젠가는 와야하지 않느냐고 궁금해해요.

사실 올해 (코치진 합류에 대해) 구체적인 얘기가 오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했죠. 솔직히 전 안 가도 상관없습니다. 후배들이 레슬링에 대해 진정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길 바랄 뿐입니다. 더 나아가 레슬링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너무 아프다.

- 전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동안 스포츠에 대해 항상 애정을 갖고 많은 스포츠인을 만났죠.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인수위원회에 전해드려야겠군요.

레슬링을 떠나 운동선수 출신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느 종목이든 협회가 하나가 될 수 있게 이끌어주세요. 모든 협회에는 정치인이 많잖아요? 그런데 정치인들은 반반으로 나뉘어 다투기 바쁩니다. 예전에는 운동선수들이 나이도 어려서 그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볼 수는 없었으나 요즘엔 달라졌잖아요. 최소한 협회에 계신 정치인들이 각 종목의 룰도 관심을 두시고 올바른 정책을 펼쳐 주셨으면 합니다.





심 코치(왼쪽)와 곽 위원장은 레슬링이 다시 올림픽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
믿음을 보였다.





레슬링은 올림픽의 기둥 같은 종목이라고 주장하는 심 코치.





곽 위원장(오른쪽)과 심 코치는 레슬링의 올림픽 핵심 종목 재진입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정리 = 김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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