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아니었다면' 박재홍의 아쉬운 은퇴

2013. 1. 25. 06:2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OSEN=박현철 기자] 선수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싶었던 베테랑. 그러나 그는 선수협 회장이라는 직분을 포기하는 대신 선수생활의 끝을 고했다.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호타준족이었던 '리틀 쿠바' 박재홍(40, 전 SK 와이번스)이 300홈런-267도루의 기록을 남기고 은퇴를 결정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선수협)는 지난 24일 "박재홍 회장이 25일 은퇴 기자회견을 갖는다"라고 알리며 박재홍이 17년 간의 프로 생활을 마감한다고 밝혔다. 광주일고-연세대를 거쳐 지난 1996년 현대에 입단한 박재홍은 프로 통산 KIA-SK를 거치며 통산 1797경기 2할8푼4리 300홈런 1081타점 267도루의 성적을 남겼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 30홈런-30도루 클럽을 가장 먼저 개설했고 세 차례 기록을 보유한 대표적 호타준족 타자다.

현대 왕조의 가장 화려했던 중심 타자 중 한 명이었고 SK에서도 세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했던 박재홍이지만 그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는 그리 크지 않았다. 데뷔 초기에는 현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으나 2000년 현대가 서울 입성 꿈을 안고 수원으로 임시 연고지를 정하며 박재홍에 대한 주목도도 옅어졌다.

2002시즌 후 고향팀 KIA가 내야수 정성훈(현 LG)에 현금 10억원을 더해 데려왔으나 구단 내부에서의 마찰 속에 기대치를 밑도는 성적을 올렸던 박재홍은 2004시즌 후 우완 김희걸(현 삼성)과 맞트레이드로 SK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박재홍은 김성근 감독 체제에서 세 번의 우승을 함께하기도 했다. 화려하지 않았으나 해줘야 할 때는 해주는 모습을 보여줬던 박재홍이다.

그에 대한 견제도 심했다. 데뷔 해이던 1996년 초반부터 맹타를 터뜨리자 당시 쌍방울 감독이던 김성근 감독은 "박재홍의 타격폼이 타석을 벗어나 있다"라며 문제 제기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도 박재홍은 2할9푼5리 30홈런 108타점 36도루를 기록하며 현대의 첫 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끌었다. KIA 시절에는 포스트시즌 도중 '덕아웃에서 팀이 지고 있는데 빵을 먹었다'라는 루머도 돌았고 구단 프런트와의 마찰 이야기도 떠돌았다. 포스트시즌 루머에 대해 선수 본인은 "절대 아니다"라며 항변하기도 했다. 2009시즌에는 롯데전에서 상대 투수 김일엽(한화)과의 실랑이를 벌여 롯데 팬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원래 성격이 고분고분한 편도 아니었고 미디어 프렌들리 스타일이 아니던 박재홍이지만 야구에 대한 몰입도는 확실했던 선수다. 데뷔 시즌 자신을 흔들었던 김성근 감독도 SK 재임 시절 그가 훈련을 열심히 한다는 점을 인정해 중용한 바 있다. 김재박 감독은 LG 재임 시절 경험 많은 우타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좌완 투수와의 1-1 트레이드를 논의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 후 박재홍은 자신의 선수로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SK 측의 지도자 연수 제안을 거절하고 자유계약 방출 선수로서 새 둥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몇몇 구단도 그의 선수로서 가치를 인정했으나 '선수협 회장'이라는 직분이 박재홍에 대한 러브콜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회장직 포기를 조건으로 걸고 입단을 제의한 팀도 있었다.

선수협 회장은 선수들의 인권 보호와 권익 신장, 복지 증진을 위해 앞장서야 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구단 프런트와는 대척점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 만약 선수협 회장직을 포기했더라면 올 시즌에도 선수로 뛸 수 있었지만 박재홍은 "동료들이 부여한 직함을 내 선수 생활을 위해 포기할 수 없다"라며 스스로 은퇴를 결정했다.

17시즌을 돌아봤을 때 커리어 대비 은퇴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수 중 한 명이 바로 박재홍이다. 충분히 레전드로 추앙받을 수 있는 성적을 남겼으나 결국 은퇴 선택은 무적 상태에서 본인이 결정하게 되었다. 2011년 12월 선수협 회장 취임 후 10구단 태동에 적극 목소리를 높이고 초상권 비리 발본색원에도 발품을 팔았던 회장 박재홍은 "동료들이 부여한 직함"이라며 회장직 포기 대신 선수로서 끝을 고했다.

farinelli@osen.co.kr

화보로 보는 뉴스,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OSEN 포토뉴스' ☞ 앨범 바로가기

[Copyright ⓒ 한국 최고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www.osen.co.kr) 제보및 보도자료 osenstar@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OSE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