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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자 리포트]이두환, 희망의 전도사가 되기를 8번의 대수술을 거치며 골육암과 힘겨운 사투

출처 민기자 칼럼 | 입력 2012.12.12 08:40 | 수정 2012.12.12 08:41

기사 내용

"솔직히 저는 야구하고 싶죠. 안 해 본 것도 너무 많고 그러니까. 그냥 그 생각, 안 해본 게 너무 많다는......."
그리고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지난 1년 넘게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곁을 지킨 어머니 성효선씨(51)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잠시 병상 곁을 떠났습니다.
인터뷰라기보다는 그저 두런두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깊숙이 절단해서 보이지 않는 왼쪽 다리 부위를 보니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이런 저런 겉도는 이야기를 하다가 위로 삼아 던진다는 것이 '이제 다 나으면 무엇이 하고 싶으냐?'는 바보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말했습니다. 야구를 하고 싶다는 것 외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그러다 그는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아직은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사는 게 일단 목적이니까, 살아야 뭐를 해도 하는 거니까요. 그런 것 같아요."라고.

< 지난 주말엔 청소년 대표팀 동기들이 모두 찾아와 모처럼 웃음을 찾았습니다.ⓒ민기자닷컴 >

벌써 8번의 수술을 거쳤습니다. 다리를 살려보려고 모든 노력을 하고 고통을 참아냈지만 결국은 한 달 전 종양이 너무 퍼져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년 초 타구에 맞아 봉와직염에 걸려 한 달여를 병상에서 고생한 후 다시 돌아온 이두환(24)은 괜찮았습니다. 두산 2군에서 뛰면서 여전히 거포 기대주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6월인가 사타구니가 아팠습니다. 근육통이 온 것으로 생각해 1주일쯤 쉬니까 괜찮아서 다시 뛰었는데 또 아팠습니다.
한 달 정도 쉬면서 약만 먹고 버티면서 퓨처스리그 올스타전까지 뛰었습니다. 그러나 통증이 심해지자 그제야 정형외과에 가서 MRI 촬영을 한 결과 '양성 종양이 있지만 별로 심하지 않고 물혹 정도라 제거하면 된다'라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점점 상태가 심상치 않자 10월에야 큰 병원, 아산 병원으로 갔습니다. 비슷한 소견이 나왔습니다, 물혹 같은게 있지만 수술을 해서 제거하면 문제없다는. 그런데 그 전에 비슷한 수술을 한 태권도 선수의 예를 들며 수술한 다리가 다시 부러져 운동을 못할 수도 있다고 하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혹시 수술하고 나면 슬라이딩하다가 다시 부러지는 것 아닌가 걱정도 되더라구요."

그 사이에 2차 드래프트로 이두환은 기아 타이거즈로 이적했습니다.
새로운 각오로 도전을 위해서도 몸을 빨리 추스려야 했습니다. 처음엔 고관절 쪽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알고 작년 11월말 다시 경희대 병원에 가서 그제야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양성이면 2,3일이면 결과가 나오는데 늦어졌습니다. 불길했습니다. 결국 열흘 만에 골육종이라는 판정이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고난의 길이 시작됐습니다. 11월19일 원자력 병원으로 옮겨 항암 치료하다가 종양이 줄어들지 않자 올 1월 25일에 수술을 했습니다. 종양을 제거하고 인공뼈를 삽입하고 재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3월에 폐렴이 와서 한 달 간 약물 치료 못 한 것이 화가 됐습니다. 다리가 붓고 종양이 다시 자라 재수술을 몇 차례 하고 항암 치료도 곁들였습니다. 그러나 늘 극도의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진통제를 맞지 않으면 견디질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폐에 약간 전이가 됐다는 안 좋은 소식이 또 전해졌습니다.
다리를 너무 아파하는데 사진에는 안 나오는 답답한 상황. 담당 의사는 다리를 다시 수술하고 어예 폐까지 함께 수술하자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열어보니 다리의 증상이 너무 심해서 피를 25통이나 수혈하는 대수술을 했습니다. 폐 수술은 하지도 못했습니다. 3주 정도 지나 몸을 좀 추스르자 폐 수술도 했는데 또 3주쯤 지나고나니 다시 다리가 땡땡하게 붓고 꿰맨 수술 부위 사이로 종양이 밀고 나왔습니다.
그대로 두면 척추까지 종양이 번질 수 있어 생명 위험해 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 결국 지난 11월 7일 어쩔 수 없이 왼쪽 다리를 대퇴부까지 절단했습니다. 역시 20통 이상의 수혈을 받았고 이틀이나 중환자실에서 회복기를 거친 대수술이었습니다.

두환이를 만나러 간 날은 맵게 추웠습니다.
그런데 그날 2006 청소년 대표를 함께 지낸 친구들이 모두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이틀 전부터 너무 통증에 심했는데 반가운 손님들이 온다니까 이른 아침 담당의사가 와서 진통제 주사를 놔주고 갔습니다. 링거에 진통제를 달고 살지만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통증이어서 심해지면 강력한 진통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통증은 정말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통증보다 더 두려움은 불안감입니다. "수술한 부위가 아프죠, 아프니까 계속 불안하거에요, 뭐가 또 있지 않나"
그러나 그는 이내 밝은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수척하게 마른 몸에 일어나 앉으려면 아직 균형을 잡지 못했고 운동을 하지 못해 팔의 힘도 떨어졌지만 기분이 풀리자 말도 재치 있게 하고 웃음도 환했습니다. 야구공을 잡은 긴 손가락을 보고 왜 투수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지금도 아버지가 가장 아쉬워하시는 것이 투수를 하지 않은 것"이라며 "초등학교 때까지 투수를 했는데 그만뒀어요. 제가 러닝을 워낙 싫어해서요."라며 빙긋이 웃기도 했습니다. 병원에서 나오는 식사에 고기가 단 한 점밖에 없다며 투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은 요즘은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든 지경입니다. 다리 절단 수술 후 한동안은 6인 병동의 제일 구석저리에서 커튼을 치고 두문불출했던 시기도 있지만 어떻게든 일어나겠다는 의지를 불사르고 있습니다. 그날 청소년 대표 친구들이 찾아와서 모처럼 즐거운 시간도 보냈습니다.

< 두산 시절 거포 기대주로 기대를 모았지만 1군에서 실력 발휘할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

어머니 성효선씨는 아들 두환이의 어린 시절부터 모든 기억이 생생하기만 합니다. 수유초등학고 입할 때 두환이는 1학년 전교생 중에 가장 컸습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해 태권도도 하고 한동안 축구공을 들고 다니더니 어느날 갑자기 야구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 야구부 감독님이 지나가는 두환이를 보고 4학년쯤 된 줄 알고 바로 야구부에 들어오라고 하신 겁니다. 그렇게 2학년 두환이는 형들 사이에서 야구를 시작했고 3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더니 4학년 때는 대회에서 홈런을 쳤습니다.
이수중을 거쳐 장충고에서 초고교급 거포로 이름을 떨칠 때만해도 야구 선수로서 그의 미래는 탄탄해 보였습니다. 전국 고교에서 알아주는 타자였는데 프로로 가니까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 2010년 1군에서 13경기를 뛰며 3할2푼에 1홈런 6타점의 가능성을 보인 것이 전부였습니다. 1군에서의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고 2군 홈런왕의 아쉬운 타이틀을 딴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병마에 찾아왔습니다.

두환이는 암의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고통만큼이나 부모에게 힘든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입니다. 어머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1년 넘게 병상을 지키고 있고 택배일을 하는 아버지도 거의 손을 놓고 있습니다. 외아들이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면 배달 대신에 병원으로 달려오기 일쑤입니다.
아산 병원 등에서 치료를 주선했던 두산 베어스는 2차 드래프트 후 연락이 없다가 최근 김승영 사장이 성금을 전달했고. 한 번도 뛰어보지 못한 기아 타이거즈는 올해 연봉도 인상시켜주는 등 신경을 썼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선수협은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아직 실직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중학교, 고등학교 학부모들이 십시일반 병원비를 보태준 적은 있습니다.
8번의 수술을 했지만 아직 두 번 정도 더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혈소판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몸을 추스르면 폐로 전이된 부분을 제거합니다. 그것이 잘 되면 본격적으로 재활을 할 수 있습니다.

대수술을 몇 차례나 했지만 아직도 병원 침대가 짧아 보이는 그의 곁에 한참을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눈길을 돌리자 벽에 걸린 빨간색 후드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워있는 그를 보고 후드를 다시 보니 마치 거인의 옷처럼 느껴졌습니다. 한때 185cm에 105kg의 거구이던 이 청년은 이젠 훨씬 작아진 모습으로 힘겨운 투병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병상에 누워 있는 그는 최근 SNS를 다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남긴 말은 가슴이 찡합니다.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쓰고 하는 애들 보면 말해주고 싶어요.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를요. 저도 이 모든 것을 겪고 나서야 알았지만요.'

그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그의 가족만으로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들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현실적인 도움이 절실합니다. 말로 하는, 시늉만 내는 도움이 아니라 실제로 힘이 되는 그런 도움이 말입니다. 두환이가 환한 웃음으로 야구장을 다시 찾을 날을 간절히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