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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우의 1S1B]박찬호는 왜 아이들에게 질문을 시킬까

출처 다음스포츠 | 입력 2012.12.03 08:07 | 수정 2012.12.03 08:21

기사 내용

박찬호 장학회는 지난 1997년 설립돼 매년 10명의 초,중학생 야구 유망주들을 후원하고 있다. 박찬호는 장학금 전달식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직접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있다.

이 장학금 전달식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 순서가 한가지 있다. 학생들이 직접 박찬호에게 질문을 하는 시간이다. 예외는 없다. 모든 학생이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은 해야 한다. 이제는 행사가 열리기 전 미리 공지까지 해 둔다.

한국의 학생 야구 선수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가 적다. 주말리그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같은 학교를 다니는 일반 학생들과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오로지 팀과 승리만을 교육받았다. 그런 선수들에게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 뭔가 묻고 답한다는 건 매우 힘겨운 일이다. 배운 적이 없어서다. 박찬호가 억지로라도 자신에게 질문을 하게 만드는 이유다.

단순히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부족함을 먼저 알고 모자란 것을 적극적으로 배우려하지 않으면 결코 최고가 될 수 없음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25일에 있었던 장학금 전달식에서 박찬호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끈질긴 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박찬호의 답은 "이용규(타석에서 끈질기게 투수를 물고 늘어지는 것으로 유명한 KIA 타자)에게 물어보라"였다.

순간 식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단 한명만 빼고 모두 웃었다. 답을 내놓은 주인공인 박찬호만 웃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오늘 집에 가서 이용규 선수에게 꼭 편지를 보내라. 답장이 안오지 않을까,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미리 걱정하지 마라. 네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알아내는 것이 용기다."

박찬호는 지금도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투수)샌디 쿠펙스를 만났을 때"라고 답한다. 박찬호는 그날 용기를 내 샌디 쿠펙스에게 다가가 따로 식사 시간을 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제 막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린 동양인 투수. 하지만 살아 있는 전설은 흔쾌히 그와 함께해 주었다. 박찬호는 "그날 얼마나 많은 것을 물어봤는지 모른다"고 했었다.

뉴욕 양키스는 모든 야구 선수들이 한번쯤은 꿈꿔보는 메이저리그의 최고 명문 팀이다. 양키스의 핀 스트라이트 유니폼은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 한 시즌도 채우지 못했지만 박찬호 역시 지난 2010년 양키스의 일원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박찬호는 은퇴 기자회견에서 양키스 선수로서 박찬호에게 가장 뜻깊었던 일은 "끝날때 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긴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와의 만남이었다고 밝혔다. 요기 베라를 만나 많은 것을 물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늘 야구에 대해 궁금한 것이 가장 많은 선수였다. 끊임없이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질문은 자신의 모자람에 대한 인정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보통 최고의 자리에 선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묻기 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길 좋아한다. 물론 이런 경우는 '일반적인 최고'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박찬호는 대한민국 야구의 역사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에 그친 것이 아니라 한 팀의 에이스로 평가받았던 투수다. 그런 그가 누군가에게 야구에 대해 물어본다는 건, 어쩌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아가 그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박찬호는 달랐다. 오히려 "사람은 누구나 두렵고 부끄러울 수 있다. 그걸 극복해야만 더 강해질 수 있다"며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는데 솔직하고 당당했다.

박찬호는 지난 2002년 텍사스로 이적한 뒤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에이스로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늘 '먹튀'라는 손가락질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부족한 것을 채우려 애썼다. 당시 박찬호가 김성근 감독에게 자신의 투구폼 교정을 부탁했던 건 유명한 일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둘은 일면식도 없었다. 게다가 김 감독은 '일본식 작은 야구를 한다'는 편견의 꼬리표가 따라다니던 지도자였다. 하지만 박찬호에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건 박찬호와 김성근 감독이 같은 지론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김 감독 또한 "모르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모자란 걸 감추려다 아집만 쌓이는 지도자는 선수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역시 여전히 메이저리그와 일본의 야구 관련 서적과 영상을 통해 끊임없이 묻고 깨닫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박찬호는 은퇴식에 앞서 자신의 홈페이지에 장문의 은퇴사를 남겼다. 그 중엔 이런 문장도 있었다.

"한때 거만하기도 했었고 젊은 시절에 고마운 줄 모르고 당연하듯 지나간 일들도 많았지만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마음속에 느껴지는 감정이란 참....."

그가 말한 '거만함'은 비단 인간 관계에서 비춰진 것 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야구 앞에서 잠시 겸손을 잃고 있었던 적은 없었는지, 혹 그런 시간들이 부진의 이유는 아니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반성을 느낄 수 있는 소회(所懷)였다.

그의 말 처럼 아주 잠시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17년간 그가 보여 준 발자취가 그 증거다.

아시아 선수 메이저리그 최다승(124승), 그리고 그 보다 더 빛났던 지난 1년 간의 역투. 끊임없이 자신의 부족함을 채찍질해 온 구도자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모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