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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윤의 golf & golfer] 지옥의 레이스 108홀

출처 다음스포츠 | 입력 2012.11.27 18:01

기사 내용

2000년 12월의 일이다. 미PGA투어 퀄리파잉스쿨 최종전이 열린 캘리포니아주 라퀸타의 PGA웨스트 코스에서 최경주를 만났다. 필자는 모 신문사의 골프 특파원 신분이었고 최경주는 자신의 두번째 PGA투어 풀시드에 도전할 때였다. 6라운드 108홀을 마치고 나온 최경주는 대뜸 "이거 정말 못할 짓이다. 다시는 이 곳에 오지 않겠다. 정규 대회 우승 보다 더 힘들고 더 지친다"며 혀를 내두르는 모습이었다. 당시 최경주는 막차로 시드를 획득, 한국인 최초의 PGA투어 풀시드 선수가 됐고 투어 8승을 향한 역사적인 출발을 하게 된다.


최경주는 대한민국 남자 골프의 선각자다. 그 누구도 언감생심 미PGA투어는 쳐다 보지 조차 않았던 시절, 일본을 거쳐 미국투어에 도전장을 던졌고 이제는 자타공인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 최정상급 프로로 자리매김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8승에는 메이저급 대회인 더 플레이어즈 챔피언십이 포함돼 있으며 여전히 철저한 자기 통제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10승 및 메이저 우승을 향해 달려 가고 있다. 또한 박세리의 성공이 '세리 키즈'를 탄생시키며 50명에 가까운 미LPGA투어 멤버들을 만들어 대한민국 여자골프가 세계를 호령하고 있듯이 최경주에 자극받은 많은 후배들이 뒤를 이어 속속 미PGA투어에 뛰어들어 성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많은 국내 간판급 선수들이 '제2의 최경주'를 꿈꾸며 '지옥의 108홀'에 도전에 나선다. 오는 29일(한국시간) 최경주의 땀이 서린 바로 그 코스, 미 캘리포이아주 라퀸타의 PGA웨스트골프장에서 내년 시즌 미PGA투어 시드 25장을 놓고 퀄리파잉스쿨 최종전이 펼쳐진다. 올해는 한국에서 건너간 8명의 선수와 교포 5명 등 모두 13명의 한국(계) 선수가 도전장을 던졌다. 우선 지난 2000년 2차에서 고배를 마셨던 국내 최장타자 김대현(24 하이트)이 1, 2차전을 무난히 통과, 처음으로 최종전에 나서게 됐고 올해 신한동해오픈 우승자이자 코리안투어 신인왕을 수상한 김민휘(20 신한금융그룹)와 아마추어 국가대표 에이스 김시우(17 신성고)가 각각 첫 도전만에 최종전까지 진출해 있다. 특히 김시우는 2차전을 수석으로 통과, 절정의 컨디션을 과시하고 있고 김민휘 역시 2차전서 2위라는 우수한 성적표를 받은 상태라 차세대 한국 남자골프를 대표할 '젊은 피'들의 분전이 기대되고 있다.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 4명도 도전장을 던졌다. 김형성(32 현대하이스코), 이경훈(21 CJ오쇼핑), 장익제(39) 등은 일본투어 상금 랭킹 상위권에 배정되는 카드로 인해 막바로 최종전에 합류했고 이동환(25 CJ오쇼핑)도 2차전을 통과, 일본투어에서 갈고 닦은 기량을 뽐낼 예정이다. 또한 지난해 풀타임 선수로 활약하다 상금랭킹 125위 이내에 들지 못해 다시 Q스쿨을 찾은 강성훈(25 신한금융그룹)도 재도전에 나선다. 이밖에 리차드 리, 대니 리 등 교포 선수들 5명도 출전한다.



1부투어 하위 랭커, 2부 투어(웹닷컴투어) 상위권자, Q스쿨 2차전 통과자 등 최종전에 나서는 160명의 선수들은 PGA웨스트의 TPC스타디움과 니클로스 토너먼트 코스에서 6일 동안 108홀을 돌며 투어카드 획득을 향한 '지옥의 레이스'에 들어간다. 이들 중 상위 25명만이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미PGA투어 출전권을 얻게 되며 차하위 25명에게는 웹닷컴투어 출전권이 주어진다.

현행 방식의 Q스쿨은 올해로 마지막이라 이들은 한결 같이 마지막 도전이란 각오로 배수의 진을 친 채 도전장을 던졌고 그 만큼 더 절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역 예선과 1, 2차전을 거쳐 최종전을 통해 차기년도 투어 카드를 배정하던 현재의 방식이 변경돼 내년 부터는 2부투어인 웹닷컴투어를 거쳐야만 Q스쿨 출전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PGA투어 진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한 시즌 이상의 2부 투어를 거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또는 일본투어를 벗어나 미국의 2부투어에 전념해야 하기 때문에 그 만큼 시간과 돈의 투자 없이는 불가능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이번에 도전장을 던진 선수들은 기량이나 경험 면에서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선수들이라 저마다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선수는 김민휘와 김시우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하며 개인, 단체 2관왕에 올랐던 김민휘는 금메달 획득 직후, 코리안투어 시드전에서 탈락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거쳤으나 지난 달 열렸던 신한동해오픈에서 자신의 프로 첫 승을 올리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고 이번 Q스쿨 1차전 1위, 2차전 2위 등 절정의 컨디션을 과시하고 있다. 김민휘는 2차전을 가장 경쟁이 심하다는 플로리다 지역을 선택해 2등으로 통과한 점이 주목되고 있다. 최종전이 열리는 코스의 잔디가 버뮤다 그래스인 점을 감안, 같은 잔디 종이 깔려 있는 플로리다 지역의 출전을 감행했던 것이다. 김민휘의 부친 김일양씨는 전화를 통해 "1차전 때 감기가 걸렸는데도 1등으로 통과했고 강호들이 많이 출전한 2차전도 2위로 무난히 통과한 만큼 본인이 자신감에 충만해 있다. 장담할 수는 없으나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다"고 희망섞인 전망을 내비치고 있다.


김시우 역시 17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고 국내 메이저급 대회이자 원아시아투어인 SK텔레콤오픈에서 우승 경쟁을 펼치며 3위에 오르는 등 정상급 기량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이번 Q스쿨 2차전에 나흘내내 언더파를 치며 19언더파 269타로 1위를 통과했고 더욱이 2라운드에서는 무려 11언더파를 몰아치는 괴력을 과시,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11언더파는 올해 Q스쿨 2차전 최소타이기도 하다. 김시우는 나이가 어려 이번에 최종전을 통과해도 내년 하반기나 되어야 경기에 나설 수 있다. 역대 최연소 타이틀이 그의 수식어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일본투어 출신들에 대한 기대도 크다. 김형성, 이경훈, 장익제, 이동환 등 4명 모두 일본투어 상위 랭커들인데다 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라 경험과 기량 면에서 부족함이 없다. 또한 올 한해는 비록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으나 강성훈도 1년간의 PGA투어 경험을 살리면 다시 한번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독종' 최경주도 넌더리를 내는 '지옥의 108홀 레이스'에서 과연 올해 몇 명의 한국(계) 선수들이 극한의 긴장감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잔뜩 기대가 모아지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