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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보라스의 류현진 '밀당'에 불쾌한 이유

출처 조이뉴스24 | 입력 2012.11.26 09:58 | 수정 2012.11.2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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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이뉴스24 >

[김형태기자] "굉장히 불쾌했다."

박찬호(한화)는 25일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금 수여식이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 아닌 2년 뒤 FA 자격을 얻어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할 수 있다"고 한 류현진의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를 향해서 한 말이다. 박찬호는 "무조건 이번에 메이저리그로 가야 한다. 돈 때문에 돌아오면 안 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따지고 보면 박찬호가 특별히 불쾌할 이유는 없다. 보라스의 말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나온 의례적인 표현이다. 협상 파트너인 LA 다저스도 '엄포'라는 걸 모를 리 없다. '밀고 당기기'를 시도하는 와중에 나온 기선제압용 발언이다.

그러나 박찬호와 보라스의 '구원'을 고려해보면 박찬호의 이번 발언이 이해된다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는 또 다른 포스팅시스템과 보라스, 그리고 박찬호가 얽혀 있다. 사연은 정확히 6년 전 이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시즌 뒤 메이저리그 스토브리그에선 큰 소동이 벌어졌다. 일본 출신 '괴물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당시 세이부)가 미국 진출을 선언하면서 영입 전쟁에 불이 붙었다.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텍사스 레인저스 등 '큰 손'들이 일제히 군침을 흘린 가운데 보스턴이 영입전의 최종 승자가 됐다. 당시 보스턴은 포스팅 비용으로 무려 5천111만달러를 써내 화제가 됐다.

마쓰자카의 대리인이 바로 보라스였다. 그는 그 때에도 "보스턴의 제시액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본으로 유턴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놨다.

당시 보라스의 고객 중엔 박찬호도 있었다. 앞서 2001년 겨울 텍사스와 맺은 5년 6천500만달러 계약이 막 끝난 상태였다. 2번째 FA가 된 박찬호에 대한 관심은 그러나 싸늘했다. 부상과 부진으로 이렇다할 성적을 거두지 못한 터라 가치가 크게 하락한 결과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매사추세츠 지역 유력 신문 보스턴 글로브에 이런 내용이 실렸다. "보라스가 자신의 또 다른 의뢰인인 박찬호를 마쓰자카와 묶어 패키지로 보스턴에 계약을 제안했다. 그간 선발로만 뛰어온 박찬호를 마무리로 기용하라고 권유했다."

한국에선 난리가 났다. 박찬호가 마쓰자카 계약의 '부록'처럼 여겨지는 점도 못마땅했지만 난데없이 불펜 투수로 전향한다는 말을 납득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은 박찬호 본인이었다. 자신의 시장 가치가 하락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메이저리그 경력이 하나도 없는 일본 투수 계약에 이른바 '끼워파는' 물건 취급을 당한 점을 참기 어려웠다.

당시 보스턴 글로브의 '기사 소스'는 보라스 코퍼레이션이라는 게 정설로 여겨졌다. 박찬호에 대한 마땅한 수요를 찾지 못하던 참에 마쓰자카를 이용한 '언론 플레이'로 박찬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물밑 작업이었다는 게 메이저리그 주위의 지배적인 해석이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박찬호는 행동에 나섰다. 곧바로 자신의 국내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보도 내용을 부인한 뒤 보라스와 에이전트 계약을 해지했다. 그러고는 제프 보리스를 새 대리인으로 고용했다. 모든 일이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2007년 1월27일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로데오 드라이브에 위치한 '베벌리힐스 스포츠 카운슬(BHSC)'. 박찬호는 보리스와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시 보라스와의 결별 배경을 묻는 질문에 박찬호는 "마음 편히 일을 맡기기가 힘들어졌다. 구체적인 것은 밝히고 싶지 않다"며 입을 닫았다. 당시 그의 표정은 무척 굳어 있었다.

보리스로 말을 갈아탄 박찬호는 스프링캠프가 임박해서 뉴욕 메츠와 계약했다. 기본 연봉 6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선발 경쟁에 합류할 기회가 주어진 점이 매력이었다. 하지만 박찬호는 스프링캠프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고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이후의 행보는 잘 알려진 대로다. 메츠에선 메이저리그 단 한 경기에 등판한 뒤 방출됐고, 시즌 후반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입단했지만 역시 빅리그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이듬해 친정팀 다저스에서 구원투수로 본격 전업한 뒤 이듬해 필라델피아, 2010년 뉴욕 양키스와 피츠버그, 그리고 지난해 일본 오릭스를 거쳐 올해 한화에 입단했다.

따지고 보면 2006년 겨울을 기점으로 박찬호의 야구 인생은 파란만장하게 변했다. 2001년 겨울 첫 번째 FA 계약 당시와 달리 6년 전인 2006년 스토브리그는 그에게 잊고 싶을 만큼 큰 상처가 됐다. 그의 영광과 분노 사이에는 공교롭게도 보라스가 자리하고 있다.

박찬호는 "류현진에게 절대 돌아오지 말라고 얘기했다. 에이전트의 말이 불쾌했다. 류현진에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도 많으니 (돈 때문에) 돌아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설명했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자신의 뼈저린 경험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다. 박찬호는 첫 FA를 앞둔 시점에서 "가능하면 다저스에 남는 게 낫다. 날씨와 여건 등 여러가지 면에서 다저스 잔류가 최선"이라는 주위의 권유를 물리치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텍사스에 입단했다. 그는 2008년 다저스로 복귀하면서 가진 MLB.com과 인터뷰에서 당시 LA를 떠난 걸 후회한다는 뉘앙스를 내비친 적이 있다.

한화와 1년 계약이 끝난 박찬호는 현재 거취 문제를 두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운명의 장난인지, 6년 전 그에게 큰 상처를 준 보라스는 소속팀 후배 류현진의 대리인으로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박찬호와 엮였던 마쓰자카는 소리소문 없이 FA로 풀렸다.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와 달리 시장 가치가 크게 낮아진 마쓰자카는 빅리그 잔류와 일본 유턴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도는 모양이다.

/김형태기자 tam@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