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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큐인터뷰] '당구계의 박태환' 김행직 "롤모델은 브롬달!"

출처 스포츠서울 | 신원엽 | 입력 2012.11.23 15:33 | 수정 2012.11.2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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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닷컴ㅣ신원엽 기자] 2007년 3월 호주 멜버른. 대한민국을 뒤흔든 소식이 들려왔다.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400m에서 박태환이 금빛 물살을 가르며 대한민국 수영의 미래를 밝힌 것이다. 한국 수영 사상 첫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소식에 한반도 전체가 흥분했고, 박태환은 일약 월드 스타로 발돋움하며 '마린보이'로 성장했다.

2007년 9월 스페인 로스 알카사레스. 또 하나의 대한민국 스포츠의 '희망'이 탄생했다. 2007 세계주니어 3쿠션 선수권에서 자그마한 체구의 동양 소년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16세 나이로 역대 이 대회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는 위업을 달성한 이 소년에 대해 당시 국내 언론들은 '수영의 박태환 같은 존재가 나타났다!', '당구계의 전설 이상천이 재림했다'며 앞 다퉈 치켜세웠다. 그러나 거기까지. 이 소년는 그렇게 서서히 잊혀 갔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세계무대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꾸준히 제 기량을 펼쳐왔지만, 비인기 종목인 당구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탓에 실력에 걸맞은 관심을 얻지 못했다. 지난달 28일 스페인에서 끝난 2012 세계주니어 3쿠션 선수권에서 우승하며 3회 연속 이 대회 정상에 오른 '외로운 당구계의 천재' 김행직(20)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 28일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3쿠션 선수권에서 우승하며
3회 연속, 이 대회 정상을 차지하고 돌아온 대한민국 당구의 '희망' 김행직.
/ 문병희 기자

< 스포츠서울닷컴 > 은 지난 19일 서울 강남에 있는 한 당구장에서 김행직을 만났다. 수줍은 미소와 겸손한 성격이 돋보인 그는 어려운 당구계의 현실을 원망하지 않았다. "제가 더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당구계가 빛을 보겠죠"라며 희망찬 미래를 그렸다. 어느덧 소년에서 성인이 된 '순수 청년'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라는 자신의 좌우명을 고스란히 이야기로 풀었다.





"이제 재대로 쳐도 되죠?(웃음)" 진지한 자세로 큐를 잡은 김행직의 눈빛은
180도 변했 있었다.

◆ '외로운 당구 천재'의 무한도전


"안녕하세요, 당구 선수 김행직입니다." 3년 연속 세계 주니어 무대를 제패하고 돌아온 김행직의 첫 느낌은 그 첫 인사만큼이나 '평범'했다. 당구 묘기를 보여 달라는 요청에 실수를 연발한 그였다. 취재진과 벌인 당구 대결에서는 허무하게 지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세계무대를 호령한 '당구 천재'는 온데간데없어 '가게'를 잘못 찾아 왔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저 이제 쳐도 돼요?"라며 해맑게 웃은 뒤 다시 큐를 잡은 그의 눈빛은 180도로 변해 있었다. 특별히 눈에 힘을 주지는 않았지만, 강렬한 느낌은 압도적이었다. 동네 당구장은 어느덧 그가 우승한 스페인 경기장으로 변해있었고, 그가 때린 공들은 정확한 궤적을 그리며 연신 '땅, 땅' 소리를 냈다. 나이는 어리지만 여유를 잃지 않고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는 모습은 이미 '베테랑 그 이상'이었다.

"이번 3연패로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어요. 저만 가진 기록이니 자부심을 느끼죠. 다시 우승하니까 이렇게 언론에서도 많이 알아봐 주셔서 참 기뻐요. 2007년 우승, 2008년 3위에 오를 때는 매스컴에서 많이 주목해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지만, 그 이후에는 제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관심을 못 받았다고 생각해요. 언론의 관심을 받기 위해 욕심을 내기보다는, 당구 선수로 성적을 끌어올리는 데 더 집중해 왔어요. (당장의 무관심은) 개의치 않습니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모든 대회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날이 올 거로 생각해요. 그런데 아까 당구 정말 잘 치시던데요? 진심입니다.(웃음)"





공 3개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김행직이 당구와 함께 살아 온 이야기를 쏘탈하게 꺼내 놓고
있다.

◆ '당구 바보'의 獨한 도전

당구에 '미친' 김행직은 학창 시절, 동네 친구가 거의 없었다. 당구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6살 때 처음 큐를 잡은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당구를 배웠는데, 중학교 때부터 학교-당구장-집-학교-당구장-집을 반복했다. "중학교 때 당구의 매력을 스스로 알게 됐어요. 거의 8년간 다른 것 안 하고 연습에만 전념했죠. 학교 끝나면 당구장으로 직행해 온종일 살던 생활이 지금까지 습관처럼 몸에 뱄어요. 또래 친구들과 놀러 간 적도, 추억을 쌓을 시간도 전혀 없었죠. 그냥 당구에만 빠져 살았던 것 같아요." 안타까울 정도로 당구밖에 모르는 '바보'였다. 지난 8년간 작은 테이블 위에 흘렸을 그의 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공개 3개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김행직이었다.

전북 익산 출신 김행직은 중학교 졸업 후 전국 최초로 당구부를 창단한 수원 매탄고에 입학하며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세계 상위 랭커가 즐비한 독일 프로당구 분데스리가로 훌쩍 떠났다. 큐 하나만 들고 당구 강자들에게 한 수 배우기 위해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것이다.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기를 눈앞에서 보고 배우니, 많은 도움 됐어요. 숙식만 받고 특별한 급여는 없었죠. 그래도 독일 생활이 무척 즐겁고 신이 났어요. 별로 외로움을 타는 성격이 아니라 향수병은 없었어요. 모르면 모르는 대로 짧은 영어로 여러 가지 물어보는 등 무작정 배우며 팀 동료와 금방 친해졌죠. 물론 지칠 때도 있었지만, 하루 쉬면 금방 괜찮아져요."





김행직은 힘든 당구계의 현실을 비관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요즘 중고등학교에도 당구부
가 생기는 등 작은 변화가일고 있어요. 제가 좀 더 열심히 하면, 언젠간 당구계도 빛을 볼
수 있을 거예요!"

◆ 롤-모델은 브롬달! '新황제'를 꿈꾸며

김행직은 또래 친구들에 보다 어른스러웠다. 20살이라는 인생에 대한 다양한 고민이 많을 나이에도 현실을 원망하지 않았다. 다부진 각오로 의연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이 청년의 패기와 끔을 뒷받침해줄 현실은 너무나도 열악한 게 사실이다. 당구는 두 달 혹은 한 달에 한 번 대회가 열리는 데다, 상금 규모도 큰 편이 아니며 수준급 선수 2~300명이 모두 1등을 놓고 달려든다. 상위 랭커들도 충분히 1회전에서 떨어질 수 있는 세계다. 100~200만원의 생활비조차 없어 꿈을 포기하는 젊은이들도 많고, 담배 연기가 자욱한 당구장에서 일반인과 뒤섞여 훈련하는 것은 기본이다. "금전적인 부분은 사실 걱정돼요. 저는 입상도 하고 다른 친구들과 달리 이렇게 인터뷰도 하지만 소득은 거의 없어요." 빛 좋은 개살구다. 남들은 세계적인 선수라고 치켜세우지만 정작 본인 주머니는 텅 비었다. 고등학교 때 받아 모아둔 장학금 등을 틈틈이 쓰며 자신의 훈련 자금을 스스로 대고 있는 그다. 부모님에게는 손을 벌리진 않는다.

"저조차 이런 생각을 하는데 다른 친구들은 어떨까요? 그들은 저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연습하고 있어요. 그래도 저나 친구들이나 수입을 먼저 생각해서는 안 돼요. 제가 노력하고 준비하면, 돈은 그다음에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행직은 언제나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우상인 '3쿠션 황제' 토브욤 브롬달과 한국 당구의 간판 김경률-최성원 등을 바라보며 묵묵히 큐를 잡고 있다. "(김경률-최성원 프로는) 따뜻하게 잘 안 대해주세요~ 농담이고요,(웃음) 열심히 하라며 늘 힘을 주시곤 하죠. 아직도 연예인을 바라보는 것 같아요. 브롬달은 정말 우상 그 자체에요, 존경의 대상이라 처음에는 근처에도 못 갔어요. 저는 앞으로 단순히 '잘 친다'라는 평을 듣기보다는, 그분처럼 세계무대를 휩쓸고 싶어요. 스포츠는 1등만 기억하니까요. 언젠간 '황제'를 넘어설 수 있겠죠? (웃음)





단 한 번도 당구 선수로 살아가는 것을 후회하거나, 포기하려 한 적이 없다는
김행직은 밝게 웃으며 자신의 인생이 녹아 있는 작은 테이블 위에 몸을 맡겼다.

아직 만개하지 않은 꽃과 같은 '당구 천재' 김행직. 이제는 주니어가 아닌 성인으로서 당당히 당구계를 '접수'하기 위해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2014년쯤 군대에 갈 예정인데, 그전까지 세계 랭킹 15위권 안에 드는 게 목표다. 다부진 각오다. 김행직은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에도 당구와 함께 오랫동안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다. 지도자의 길을 걷지 못하더라도 훗날 생길 자녀와 함께 당구를 치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면 무척 행복할 것 같다며 미소 짓기도 했다. "제 성격요? 좀 내성적인 편이에요. 친한 사람과 있으면 먼저 떠들고 분위기를 리드하는데, 처음 뵙는 분들에게는 잘 그렇게 못 해요. 제 매력은 글쎄요….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서 다시 뵐 기회가 오면 그때 보여 드릴게요. 항상 행복하세요.(웃음)" 당구를 향한 순수한 사랑과 뜨거운 열정을 지닌 김행직의 앞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wannabe25@medi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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