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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하의 유로풋볼]첼시의 삐뚤어진 긴장 상태

출처 다음스포츠 | 입력 2012.11.23 13:30 | 수정 2012.11.23 13:39

기사 내용

2007년 1월 필자가 근무하던 잡지사에는 당시 첼시 상황에 관한 칼럼이 한 편 실렸다. '건강한 긴장 상태!' 라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에서는 축구를 하지 못하고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지나친 간섭에 시달리는 첼시 상황을 잘 분석하고 있었다. '건강한 긴장 상태'란 당시 첼시 경영대표 피터 케년이 영국 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클럽 상황을 묘사한 말이었다. 그는 첼시에 감도는 적당한 긴장감이 클럽을 발전시키는 데 유익할 것이라 밝혔었다. 약 6년이 지난 지금, 첼시를 떠난 피터 케년은 여전히 클럽이 건강한 긴장 상태와 함께 바르게 나아가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 5차전이 끝난 다음 런던으로 돌아온 첼시의 수장 로베르토 디 마테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해고 통보였다. 런던으로 돌아온 디 마테오는 패배의 원인을 곱씹을 틈도 없이, 긴장과 원정의 피로를 풀 여유도 없이 사무실로 호출되어 경질됐다고 한다. 지난 시즌 가망성이 희박했던 클럽에 빅이어를 안겨준 감독을 야심한 시각(?) 매몰차게 내쫓은 것이다.

첼시는 유벤투스와의 조별 예선 5차전에서 패하는 바람에 자력으로는 16강에 진출할 수 없게 됐다. 승승장구하던 리그에서도 최근 4경기 2무 2패로 부진하고, 디펜딩 챔피언의 챔피언스 리그 16강 진출이 불투명한 상황. 아브라모비치의 분노가 극에 달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디 마테오가 경질되고 채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새로운 감독 라파엘 베니테스가 선임된 과정을 보면, 이미 첼시는 호시탐탐 디 마테오를 쫒아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디 마테오는 애초부터 아브라모비치의 야망을 충족시킬 만큼 이름값이나 경력이 뛰어난 감독이 아니었다. 그는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의 실패로 불가피하게 지휘봉을 잡은 측면이 강했고 챔피언스 리그에서 업적을 쌓지 못했다면 이번 시즌 첼시의 프리 시즌은 새로운 인물과 함께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첼시로서는 탐탁지 않지만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를 안겨준 감독을 내칠 명분을 찾지 못해 -그런 비난을 잠재울 만큼 엄청나게 뛰어난 감독을 영입하지 못해- 디 마테오를 정식 감독으로 임명했다고 볼 수 있었다. 결국 그런 미심쩍은 선택은 '그래, 어디 조금이라도 부진하기만 해봐라.' 같은 의심의 눈초리에서 자유로울 리 없다.

더구나 로만은 주제 무리뉴, 루이스 스콜라리, 카를로 안첼로티 같은 명장들을 내치는 데도 주저함이 없었던 인물이다. 그런 구단주에게 클럽 레전드나 더블을 안겨준 과거 업적 따위는 고심의 이유로 부족하다. 지금 내가 원해서 사온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면서 성적까지 잘 내는 것만이 고려 대상인 것이다. 설사 진심으로 원하는 감독이 따로 있다 하더라도 감독은 지금 고용된 이상 클럽을 본인 (구단주) 입맛에 맞게 다뤄줘야 한다.

첼시가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등장과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지나친 간섭이 여러 말썽을 일으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는 늘 선수단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한다. 선수기용에 자주 의문을 나타내고 전술이나 전략에도 관심이 많다. 의사표현이라고 하지만 결코 감독의 생각을 묻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내 팀을 내가 원하는 대로 운영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클럽은 감독의 권한이 줄어드는 순간 생명력도 빠른 속도로 소진된다. 구단주는 어디까지나 구단주일 뿐, 좋은 코치도 좋은 매니저도 될 수 없다.





역사는 늘 되풀이되지만 첼시를 보면 그 좋지 못한 역사의 순환 고리가 짧아도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첼시에 잠재된 문제점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리뉴는 2007년 9월 스탬포드 브릿지를 떠났는데, 코치와 매니저를 모두 수행하려는 -궁극의 권한을 원하는- 무리뉴 성격과 보드진이 충돌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 깊숙한 곳에는 2006년 밀라노를 떠나 런던에 도착한 안드리 쉐브첸코가 있었다. 2011년 1월 첼시 유니폼을 입은 페르난도 토레스 역시 여러 감독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토레스는 안첼로티가 진심으로 원하던 공격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감독은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들인 선수를 무턱대고 외면하기 어려었고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던 선수는 지금까지도 만족스러운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지나친 가정은 불필요하지만 토레스 대신 디디에 드록바가 머물렀다면 어떻게 됐을까? 디 마테오 경질 이유가 토레스 때문이라는 기사를 허투루 지나치기 어려운 것도 이미 첼시에 깊숙이 뿌리내린 잠재적 문제점이 어느 정도 짐작되는 까닭에서다. 프랑스 아르네슨은 떠났지만 여전히 첼시에는 마이클 에메날로가 존재한다.

베니테스는 일단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만 첼시를 지휘하기로 했다. 그는 당장 첼시가 구할 수 있는 가장 이름값 있는 감독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임기가 이번 시즌 말까지라는 것은 결국 베니테스 역시 아브라모비치의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물론 전임 감독들에 지급된 위약금 액수가 엄청나서 부담을 가졌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거나 6년 전 표현된 첼시의 건강한 긴장 상태는 -몇 개의 트로피를 가져줬음에도 불구- 늘 불투명한 미래와 함께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