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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장★사람들] 남친보다 표 파는 게 좋은 '4차원 소녀'

출처 스포츠서울 | 신원엽 | 입력 2012.11.19 11:53 | 수정 2012.11.19 12:35

기사 내용

[스포츠서울닷컴ㅣ인천 = 신원엽 기자]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만화책 슬램덩크의 인기가 더해져 농구 열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농구장에는 오빠부대들이 들어찼고 학교와 시내 곳곳의 간이 농구장에는 농구공을 든 학생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요즘 농구 인기는 과거만 못한 게 사실이다. 야구와 축구에 환호하는 팬은 날로 늘어나는 반면 농구를 좋아하는 이들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학교 또는 직장에서 전날 열린 프로 농구를 이야기 소재로 삼는 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길거리의 농구 코트도 한산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농구장 곳곳에는 자신만의 특별한 농구 사랑을 외치는 이들이 많다. < 편집자주 >






밝은 표정으로 농구팬들에게 '따뜻한' 표를 건넨 김혜진 씨는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에 쑥스러워하면서도 톡톡 튀는 말투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 인천 = 신원엽 기자

2011~2012시즌 연재를 시작한 '농구장★사람들'이 다시 팬들을 찾아왔다. 올 시즌 '농구장★사람들'의 첫 주인공은 인천 전자랜드 매표소에서 일하고 있는 김혜진(20·인천시 부평구) 씨다. 자신을 '4차원 소녀'라고 소개할 정도로 톡톡 튀는 매력이 넘치는 김씨는 조그마한 티켓 창구 안 세상을 즐겁게 설명했다. 자신의 일을 정말로 사랑하고 즐기는 자세가 돋보이는 이였다. < 스포츠서울닷컴 > 은 지난 15일 SK 나이츠가 인천 전자랜드를 83-77로 이긴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김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팬들이 상당히 많이 왔다. 1쿼터 끝날 때까지도 줄이 끊이지 않았다. 힘들지 않나

저는 오히려 바쁜 것을 즐겨요. 어릴 적 즐긴 은행놀이를 실제로 하는 느낌이랄까요?(웃음) 올 시즌부터 이 일을 했는데 진짜 재밌네요. 경기가 조금 더 자주 있었으면 좋겠어요. 홈경기가 많아야 한 달에 6번 정도 있거든요. 돈 때문이 아니라 진짜 재밌어요. 바쁜 와중에도 이것저것 하는 재미가 쏠쏠하죠. 오히려 관객이 없으면 심심해서 싫은데요, 친구들에게 전자랜드 응원하러 오라고 엄청나게 홍보하고 있어요. 전자랜드 팬이 많이 오는 날이면 제가 (구단 관계자들 보다) 더 기분이 좋고,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웃음)

- 정말 표정이 항상 밝더라. 짜증 나는 순간도 많을 것 같은데….

물론, 짜증 날 때도 있죠. 몇몇 분들이 "지금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아무 자리나 줘요"라며 무작정 화내실 땐 살짝 당황스럽죠. 그런데, 매표소 안에 있으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온 지 정말 몰라요. 딱 제 앞에 선 사람만 보여요. 한 분, 한 분 친절하게 대하다 보면 시간이 좀 걸리기도 하고요. 이럴 땐 제가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하고 솔직히 속상하기도 해요. 그래도 제가 인사를 건넬 때, "감사합니다. 잘 볼게요~"라고 대답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이런 관객분들 정말 고맙고 제게 힘을 주는 존재에요!(웃음)

- 티켓 창구 안 세상은 어떤가. 그리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그야말로 전쟁이죠.(웃음) 바쁠 때면 정말 정신없어요. 일은 많지, 뒤에 매니저분들은 사람들 많이 왔으니 빨리하라고 응원 아닌 응원을 보내시지(웃음), 거기에 몰려오는 관객들을 상대로 직원 4명이 마이크 잡고 여기저기서 말하면 정말 시장터고 전쟁터에요. 이곳에서 밖을 보면 정말 다양하고 특색 있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여자 친구 앞에서 기 좀 펴보려고 "가장 비싼 자리 주세요!"라고 했다가, 카드 한도가 초과해서 창피만 당하신 남성분, 저도 모르게 서서 이야기를 주고받게 하는 귀여운 어린이 팬들,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소한 일로 승강이를 벌인 팬까지. 모두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제겐 참 행복한 세상이죠. 여러 사람을 대하다 보면, 관객분과 어떤 문제가 생길 때가 있잖아요? 웃으면서 먼저 죄송하다고 하면 다 좋게 끝나는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어린 마음에 잘잘못을 따지면 다 잘 해결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웃음)

- 작은 창구 안에서 인생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네 맞아요. 이 아르바이트가 거의 처음일 정도로 곱게 자라 인생을 잘 몰랐거든요.(웃음) 그런데 이젠 조금은 성숙해진 느낌이에요. 친구들도 제 성격이 좀 변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제가 원래 짜증이 많은 성격인데, 예전엔 엄마에게 참 못되게 굴었던 것 같아요. 반찬 투정도 부리고 청소 히지 안냐고 뭐라 하기도 했죠. 한 번은 아빠가 "엄마한테 잘해라. 너 때문에 많이 우신다"고 하시는데, 어찌나 죄송하던지…. 이 일 하면서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짜증을 안 내는데, 엄마에게는 온갖 투정을 부린 일들이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엄마의 마음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됐어요. 즐겁게 일하지만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도 알게 됐고요. 씀씀이가 헤프던 제가 적금도 들었어요! 알바가 사람 하나 바꿔놨죠 뭐.(웃음)





15일 인천삼산체육관에서 선두 다툼을 벌인 전자랜드-SK의 '빅매치'는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게 했다.

- 팬들이 알아두면 좋을 만한 유용한 티켓 정보가 있을까?


여성은 골드와 VIP석을 제외하면 항상 2000원 할인돼요. 특S석은 청소년도 할인되고요. 멤버십으로도 2000원 할인이 가능한데, 홈페이지에서 가입하시고 카드 번호, 주민등록 번호, 휴대폰 번호 가운데 하나를 지정하셔서 경기장에 오셔야 해요. 장애인은 복지 카드를 갖고 오시면 일반석이 무료고요, 동반 1인은 50% 할인돼요. 특석은 동반 1인까지 7000원씩 구매하실 수 있고요. 국가 유공자, 노약자, 군인, 경찰 등도 할인 혜택을 받으실 수 있어요. 저 잘 외우죠?(웃음) 참, 미리 표를 예매해서 오시면 줄을 길게 설 필요 없이, 더욱 편리하게 입장할 수 있고요, 3쿼터 중반쯤 매표소가 마감이 되면, 그 이후에는 무료입장도 가능해요.(웃음)

-농구는 얼마큼 좋아하나.


원래 안 좋아했어요. 경기장 음악 소리도 너무 크고 산만하게 느껴져서 싫더라고요.(그럼 왜 이 일을?)그냥 알바 사이트에 이력서 올려놨는데, 연락 왔고 재밌을 것 같아서 하게 됐죠. 그런데 요즘에는 일 끝나면 꼭 농구 보고 집에 가요. 볼수록 매력 있더라고요.(웃음)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짜릿한 기분이 좋고요, 제가 4차원인데 흑인 선수들 다리가 특히 예뻐 보이더라고요.(웃음) 운동선순데 울룩불룩하지 않고 매끈하게 신기하더라고요. 웃을 때 새하얀 이빨도 매력적이에요.(웃음) 요즘 농구를 보면 축 처져 있던 기분을 확실히 '업' 시켜주는 것 같아요. 모르는 규칙은 같이 일하는 남자친구 가르쳐 주는데요, 전자랜드가 이기면 정말 막~ 소리 지르고요, 지는 경우는 아직 별로 못 봤어요. 전자랜드 정말 짱이에요! 아무래도 제가 와서 더 잘하는 것 같아요.(웃음)

- 남자친구와 같이 일한다고?

네. 아까 제 옆에서 표 팔던 1번 창구요.(웃음) 제가 같이 하자고 했어요. 농구 하는 거, 보는 거 모두 좋아하는 아이라, 완전 만족하고 있죠. 맨날 일 일찍 끝내고 같이 농구 보자고 하고 그래요. 그리고 사실 오늘 남자친구랑 1주년인데요, 보통은 일하러 오고 싶지 않잖아요? 남자친구도 안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고요. 그런데 제가 "이 일이 정말 재밌다. 같이 와서 일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니, 남자친구는 마지못해 같이 일하고 있는 거에요.(웃음) 저 돈 조금 줘도 일 할 의향이 있다니까요.(웃음) 저 멋있죠?! 멋있는 사람이에요.(웃음)

- '농구장★사람들' 공식 질문! 당신에게 농구란?

인생의 전환점이랄까요? 성격도 바뀌었고, 관심 없던 스포츠도 좋아하게 됐어요. 농구뿐만 아니라 야구와 축구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궁금해서 경기장을 찾게 되더라고요.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전체적으로 달라진 것 같은데요, 보다 긍정적으로 변한 기분이에요. 제가 꿈이 디자이너인데, 이 모든 경험이 함축되어 훗날 제 작품에 투영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 요즘 정말 행복해요~(웃음)

수많은 관중이 몰린 이날, 김씨는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농구팬들 한 명, 한 명에게 '따뜻한 표'를 건넸다. 자신과 마주하는 팬 모두가 무척 소중한 눈치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전자랜드 흥해라!"라고 말한 김씨는 어느새 농구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표를 파는 일도, 퇴근 후 경기를 보는 일도 무척 즐겁고 매력적인 시간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다음 주 농구장을 빛낼 사람은 또 누구일까.

wannabe25@medi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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