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재킷 윌렛, 그 뒤엔 '아내+복덩이'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2016. 4. 12.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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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 최종 5언더파 역전 우승
대니 윌렛(오른쪽)이 11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끝난 제80회 마스터스에서 정상에 오른 뒤 ‘디펜딩 챔피언’ 조던 스피스의 도움을 받아 그린 재킷을 입고 있다. AP뉴시스
대니 윌렛이 지난해 12월 31일 송년회에서 아내 니콜과 함께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윌렛 트위터

잉글랜드인들에게 마스터스 토너먼트는 지난 82년 동안 ‘악몽’이었다. 딱 세 번 우승했는데 그것도 단 한명의 선수가 차지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린 재킷’을 차지하는 새로운 ‘잉글리시맨’이 나오길 더 학수고대했는지 모른다. 10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2016 마스터스 대회에서 새로운 잉글랜드인 챔피언이 탄생했다. PGA투어 무대의 우승이 전무했던 대니 윌렛(29)이 바로 주인공이다. 상금은 180만 달러(약 20억원)이다.

윌렛은 이날 합계 5언파 283타로 4라운드를 마친 뒤 라커룸에서 스마트폰으로 아내 니콜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10일 전 아들 자카리아(Zackharia) 제임스를 출산한 니콜은 남편에게 “잘 했느냐”고 물었고, 윌렛은 “아직은 1등”이라고 답했다. 바로 그때 3언더파 2위로 그를 추격 중이던 전년도 챔피언 조던 스피스는 17번홀에서 1.5m도 안 되는 버디퍼트를 놓쳤다. 통화 도중에 윌렛은 사실상 우승을 확정지은 것이다. 스피스가 18번홀에서 버디를 한다 해도 1타차 1위에 오를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윌렛에게 이번 대회 우승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내의 힘’이었다. 대회전 그는 4월 10일이라는 숫자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니콜이 자카리아를 낳는 출산예정일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윌렛은 마스터스 참가를 포기했다. 세계 최고의 대회보다 아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이 더 중요했다. 그런데 아내는 예정일을 열흘 앞서 아들을 낳았다. 부랴부랴 윌렛은 대회 참가신청을 했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로 날아갔다. 대회 참가선수 중 신청 순위는 맨 마지막인 89번이었다.

니콜은 출산 전에도 남편의 마스터스 출전을 간절히 염원하며 자신의 트위터에 “여보, 꼭 마스터스에 가야 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해 이 대회 사전행사인 파3 콘테스트에 윌렛의 캐디로 나섰던 그녀다. 공교롭게도 남편이 그린 재킷을 입은 날은 니콜의 생일(10일)이었다. ‘그래스 그린(Grass Green)’으로 대변되는 마스터스의 녹색이 윌렛 가족 전체에게 엄청난 은총을 내린 셈이다.

1987년 영국 요크셔주 셰필드에서 성공회 목사인 아버지와 수학교사인 어머니 사이의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난 윌렛은 어린 시절 형들과 동네 근처 양떼 목장의 잔디밭에 파3홀을 만들어놓고 시합하며 골프를 배웠다. 아마추어 세계랭킹 1위까지 올랐지만 2008년 프로 데뷔후 7년 가까이 무명생활을 이어오다 2014년부터 올해까지 유러피안투어 4승을 거뒀다. 1년 전만해도 그의 세계랭킹은 102위였다. 이번 대회에는 세계랭킹 12위로 참가했다.

윌렛과 우승경쟁을 벌였던 스피스는 ‘아멘 코너’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전반 6∼9번홀 4연속 버디로 기세등등했던 스피스는 그린 앞 대각선 워터해저드로 악명높은 짧은 파3 12번홀에서 주말골퍼보다도 못한 아이언샷 두 방으로 지옥으로 떨어졌다. 생크성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려 ‘넬슨 브리지’ 방향 워터해저드에 볼을 빠뜨렸고, 1벌타 후 50m 어프로치 아이언샷도 엄청난 뒤땅을 내며 또 물에 빠뜨렸다. 5번째 샷은 벙커행(行). 7타 만에 홀아웃하며 ‘쿼드러플 보기’를 범했다. 이때 그린 재킷의 향배는 윌렛에게로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홀에서 2011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도 전날까지 4타 차 선두를 달리다 최종 라운드 12번홀에서 4퍼트 더블보기로 우승을 날렸다. 2013년에는 2연패를 노리던 버바 왓슨(미국)이 최종라운드에서 3차례 볼을 물에 빠트리며 10타를 적어내고 고개를 떨궜다.

마스터스를 차지한 두 번째 잉글랜드인이 된 윌렛에 대해 영국 일간 가디언은 “요크셔 지방의 목사아들이 오거스타를 정복했다”고 썼고, 텔레그래프는 ‘윌렛의 숨겨진 5가지 사실’이란 특집기사를 타전했다. 윌렛에 앞서 ‘명인열전’의 그린 재킷을 차지한 잉글랜드인은 1996년 닉 팔도(1989, 1990, 1996년 3승)였다. 딱 20년 전이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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