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평정심의 노예'가 된 골퍼들을 위하여

2016. 3. 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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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나(사진왼쪽), 리디아 고(사진오른쪽), 김세영, 이보미 등의 인기가 높은 까닭은 그들이 평정심의 노예가 아니기 때문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사진은 2015년10월15일 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의 모습이다. ⓒ골프한국

[골프한국] 프로건 아마추어건 골프채를 놓을 때까지 떼어놓을 수 없는 금언을 꼽으라면 평정심(平靜心)일 것이다. 골프채를 잡은 이상 ‘골프는 기술 20%, 정신력 80%’라는 불변의 진리와 함께 싫든 좋든 평정심과의 씨름은 피할 수 없다. 골프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것의 80%가 정신력인데 이 정신력의 요체가 바로 평정심이기 때문이다.

평정(平靜)의 사전적 뜻이 평온하고 고요함이니 평정심이라면 평온하고 고요한 마음, 흔들리지 않는 평화로운 마음일 터이다. 평정에 해당되는 영어단어를 찾아보면 더욱 쉽게 윤곽이 잡힌다. calm(고요) equanimity(침착) balance(균형) serenity(평온) stability(평형) composure(냉정, 침착) 같은 단어들을 한 그릇에 담아보면 평정심의 그림이 그려진다. 선불교에서는 ‘사(捨)’라는 글자가 평정심을 대표한다. 捨의 사전적 의미 ‘버리다, 내려놓다’의 외연을 넓혀 고요, 적정, 평정, 평온, 균형, 평형 등의 선한 마음을 일컫는다. 궁극적으로는 감정이나 정열, 특히 고통, 공포, 욕망, 쾌락과 같은 정념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골퍼들이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심초사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노심초사(勞心焦思, 몹시 마음을 쓰며 애를 태움)한다는 것 자체가 평정심의 적일진대 어찌 노심초사해서 평정심을 얻을 수 있겠는가.

‘잔잔한 호수 같은 평정심’처럼 평정심의 상징으로 잔잔한 호수가 자주 인용된다. 평정심의 이상적 은유로 등장하는 호수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호수는 항상 잔잔할 수는 없다. 잔잔하던 호수의 수면도 바람이 불면 물결친다. 거센 바람이 몰아치면 파도로 변한다. 홍수가 나고 태풍이 몰아치면 호수 전체가 뒤집힌다. 그러나 바람이 멈추고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호수는 언제 그랬나는 듯 다시 잔잔해진다. 사람의 마음도 호수와 같다. 잔잔하게만 유지하는 것이 평정심이 아니라 바람 불 땐 출렁이고 바람이 멎으면 다시 평정을 되찾는 것이 평정심이다. 대부분의 골퍼들이 마음의 격한 동요에도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한 척 하는 것을 평정심으로 오해하고 있다. 흙바람이 불면 눈을 감고 입을 막아야 한다. 흙바람이 몰아치는데도 태연한척 두 눈 뜨고 흙먼지 들여 마시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흙바람이 지나고 나서 눈을 씻고 심호흡을 할 줄 아는 것이 평정심이다. 뜨거우면 손을 떼고 아프면 ‘아얏!’소리를 내야 한다. 그 상황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안도하며 마음을 가라앉힐 때 비로소 평정의 순간이 찾아온다.

호수가 잔잔한 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기류 변화에 따라 호수의 수면도 함께 변하기 때문이다.

어찌 인간의 마음이 늘 잔잔한 호수 같을 수 있겠는가. 화가 나면 얼굴이 분노에 차고 기쁘면 환희작약하게 돼있다. 슬프면 우울해 하고 억누를 수 없는 기쁨이 솟구치면 절로 밖으로 드러나게 돼있다.그러나 상당수의 골퍼들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희로애락의 감정, 순간순간의 마음의 출렁임을 억누르는 것을 평정심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기막힌 샷이나 퍼팅을 성공시켜 놓고도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을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도 태연한 척 한다. 마치 대단한 구도자라도 되는 양. 솥의 물이 끓으면 불을 끄든지 뚜껑을 열든지 해야지 불도 안 끄고 뚜껑을 그대로 두면 넘치거나 폭발하고 만다. 기쁨이나 즐거움을 억누르고 분노와 좌절감을 숨기는 것은 물이 끓는데도 불을 안 끄고 뚜껑을 닫아두는 것이나 같다. 많은 선수들이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신만의 징크스에 시달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평정심을 구한답시고 평정심의 노예가 된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LPGA투어의 대세로 자리 잡은 한국선수들 중에 의외로 이런 선수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경기하는 동안 보여주는 그들의 무뚝뚝한 표정, 감정 표현을 억제하는 모습, 무미건조한 태도 등은 출중한 기량을 퇴색시킬 뿐만 아니라 LPGA투어 자체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왜 수많은 갤러리들이 몰리고 많은 TV가 중계를 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시청자나 갤러리들은 선수들이 표출하는 희로애락을 공유하고 즐긴다. 태극낭자들이 경기 중 시청자나 갤러리들이 즐길 거리를 제공해야 LPGA도 살고 태극낭자들도 산다. 부글부글 끓는 용암덩어리를 가슴에 품고 경기할 것인가, 용암덩어리를 밖으로 분출한 뒤 홀가분하게 경기할 것인가. 장하나, 김세영, 리디아 고, 이보미 등의 인기가 높은 까닭은 그들이 평정심의 노예가 아니기 때문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평정심은 억제나 무반응이 아니다. 평정심이란 늘 마음을 호수의 잔잔한 수면처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비바람에 출렁이다가도 비바람이 지나면 고요함을 되찾는 것이다. 호수의 수면처럼, 지표면 밑의 용암처럼 상황에 따라 반응하다가 상황이 지나면 예전처럼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뉴스팀 news@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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