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어서와! 아스날..이런 축구장 처음이지?"

주영민 기자 입력 2017. 2. 16. 18:05 수정 2017. 2. 1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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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튼유나이티드 경기장 입구
 
잉글랜드 FA컵 축구에서 ‘흙수저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5부 리그 팀’ 서튼 유나이티드가 오는 21일 ‘프리미어리그 명문팀’ 아스날을 홈으로 불러들여 16강 단판 승부를 펼칩니다. 서튼 유나이티드의 119년 역사에 남을 귀한 손님이 찾아오는 겁니다. 역사적인 경기를 앞두고 런던 남부의 작은 마을 서튼은 기대감에 들뜨고 있고, 언론들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서튼의 열악한 ‘축구장 시설’이 뉴스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난 1일 FA컵 16강 조추첨 결과 서튼이 아스날전의 홈팀으로 결정되자 경기력과 흥행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이 서튼의 축구장을 향했습니다. 경기장 규모가 너무 작고, 시설이 너무 낙후됐다는 이유로 장소를 아스날의 홈구장 ‘에미리트 스타디움’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튼 구단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며 당당하게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certainly Sutton!”을 외치고 있는 겁니다.

(좌) 에미리트 스타디움, (우) 서튼 구장

이렇게 ‘아스날의 서튼 원정경기’는 결코 ‘빅매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영국 국영방송 BBC가 생중계를 예고할 정도로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도대체 시설이 어느 정도기에 벌써부터 시끌시끌한지 ‘금수저 구단’을 맞이할 ‘흙수저 구단’의 안방으로 가보겠습니다.

● 프로에서는 금지된 ‘인조 잔디’

서튼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겐더 그린 레인(Gander Green Lane)은 1898년 서튼 구단이 창단되면서부터 축구장으로 탄생했습니다. 당시에는 골대만 두 개 덩그러니 놓여있는 벌판이었다가 조금씩 축구장의 모습을 갖춰가면서 진화(?)해 왔습니다. 가장 최근에 설치된 시설이 바로 인조 잔디인데, 2015년의 일입니다.

서튼 인조잔디

잉글랜드 프로축구에서는 1994년 이후 부상 위험 때문에 인조 잔디 사용이 금지돼 있지만, 프로의 범위가 4부 리그인 ’리그 투‘까지기 때문에 5부 리그인 서튼 유나이티드는 인조 잔디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푹신푹신한 천연 잔디를 누비던 아스날 선수들에게는 낯설 수 밖에 없습니다. 인조 잔디는 이번 경기의 중요 변수입니다.

● 원초적인 라커룸

(좌) 아늑한 아스널 라커룸, (우) 서튼 라커룸

아스날의 홈구장인 ‘에미리트 스타디움’은 지난 2006년에 건설된 최신형 구장입니다. 건설비가 무려 5,560억 원에 달합니다. 당연히 각종 시설은 최첨단으로 꾸며졌습니다. 선수들의 라커룸으로 가볼까요? 전시관 같은 대형 탈의실, 많은 침대와 장비가 구비된 마사지실과 물리 치료실에서 선수들은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며 결전에 대비합니다.

(좌) 아스날 마사지실, (우) 서튼 마사지실

그런데 ‘겐더 그린 레인‘의 라커룸은 관중석이 지어지던 1950년대에 함께 설치됐습니다. 당연히 모든 게 소박합니다. 작은 라커룸엔 긴 벤치와 벽에 걸린 옷걸이 뿐입니다. 벽돌 밖으로 나와 있는 각종 배관과 전선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샤워실에 샤워기가 8개뿐이라니 줄을 서야겠군요.

(좌) 비지니스석 같은 아스날 벤치, (우) 서튼 벤치

라커룸 뿜 아니라 경기장의 선수단 벤치도 빈부의 격차를 실감케 합니다. 아스날의 벤치가 비행기의 비즈니스석을 연상시킨다면 ‘겐더 그린 레인‘의 벤치는 버스정류장을 연상시킨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듯합니다. 자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10명도 채 앉을 수 없다 하니, 후보 선수들은 경기 내내 서서 몸을 풀다가 지칠지도 모를 일입니다.

● 선수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관중석

서튼 유나이티드 관중석

경기를 일주일 앞둔 지난 일요일 서튼 구단이 입장권을 판매했는데,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많은 지역 팬들은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새벽 5시부터 경기장 주변에 줄이 길게 늘어서 뜨거운 열기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티켓 구매를 1인 당 1장으로 제안해 불만이 쏟아졌고, 많은 팬들이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고 합니다.

‘겐더 그린 레인‘의 관중 수용 인원은 5천 명입니다. 중앙 본부석 일부를 제외하면 지정석은 따로 없습니다. 많은 관중은 펜스에 바짝 붙어서 선 채로 경기를 관전합니다. 바로 눈앞에서 선수들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이번 시즌 평균 관중은 1,500여명인데, 이번 아스날전에서는 시즌 처음으로 만원 관중이 예상됩니다. 에미리트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6만 관중의 함성을 듣던 아스날 선수들에겐 너무나 낯선 환경이겠죠.

● 45세 뚱보 골키퍼 화제…“비켜! 내가 뛸래“

“아스날 선수들과 언제 한 번 뛰어 볼 수 있을까?“ 아마추어인 서튼 선수들에게 아스날 선수들은 ‘연예인급’인가 봅니다. 특히 서튼 선수단에는 아스날의 팬들이 꽤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함께 뛰는 것도 영광”이라는 ‘팬심’이 표출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대놓고 “내가 뛰겠다”며 감독을 압박(?)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45세 최고령 골키퍼 웨인 쇼입니다. 나이만 많은 게 아니라 몸무게도 엄청납니다. 188cm의 키에 몸무게가 127kg에 달합니다. 올 들어 단 한 경기도 뛴 적 없는 후보 골키퍼입니다. 사실상 선수보다는 맏형으로서 코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스날전에서는 선발 출전이 유력합니다.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웨인 쇼는 샌드위치가 앞에 있으면 가장 먼저 채갈 정도로 아직 순발력이 좋다.“고 합니다.

이 최고령이자 최중량 골키퍼가 얼마나 아스날의 슈팅 세례를 막아낼 수 있을지 관심보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 ‘뮌헨 참사’ 아스날, “정신 바짝 차리자!“

서튼 선수단은 승패를 떠나 ‘축제’ 같은 분위기에 젖을 준비가 됐지만 아스날은 지금 침통합니다.

서튼 원정을 닷새 앞두고 가진 챔피언스리그 뮌헨 원정에서 그야말로 참사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바이에른 뮌헨과 16강 원정 1차전에서 ‘1대 5’로 크게 무너지면서 아스날을 향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5부 리그 팀’과 원정 경기를 치르는 아스날의 부담은 더 커졌습니다. 그야말로 “정신 바짝 차리자!“는 분위기입니다.

서튼-아스날 경기 예고

      

주영민 기자nag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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