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이세돌 "알파고,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수준..지는 일 없을 것"

상하이|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2016. 3. 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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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는 게 준비입니다.”

5일 저녁, 이세돌 9단은 오랜만에 술을 한잔 했다. 지난 1일 중국 상하이에 도착한 후 맥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않던 그가 고량주를 거푸 마셨다. 제17회 농심신라면배 결승전에서 커제 9단에게 당한 패배가 너무 아파서 속을 후벼파는 독주가 아니고서는 마음을 진정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세돌 9단은 “내가 정말 화나는 일은 패배라는 결과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상대가 치명적 실수를 했는데 자신은 더욱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을 곱씹으며 자신에게 화를 냈다. 평소 “나 자신에게 만족하는 바둑을 두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오던 그로서는 이날 대국에서 범한 몇 가지 실수가 무척 뼈아픈 듯했다.

그런 이세돌 9단에게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에서도 그런 실수를 범할 수 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이9단은 그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실수가 오늘처럼 패배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왜냐하면 ‘알파고’의 기력은 프로급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번 공개 인터뷰 때 ‘알파고’의 기력은 꽤 높은 수준으로 ‘선바둑 상대’라고 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는 “선바둑이라는 말이 곧 프로급이 아니라는 뜻이다”라며 “선바둑이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소리”라고 답했다. 선바둑인 상대에게 자신이 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이어 이세돌 9단은 “사실 판후이 2단과 둔 기보를 보면 두 점 접바둑을 둬서도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알파고’가 매월 수만 판의 바둑을 두면서 스스로 학습한다기에 선바둑으로 높여 준 것”이라며 “하지만 그것이 지금 나를 이길 수 있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알파고’가 이길 수 없다고 단정짓는 이유와 관련해서는 “정상급 프로기사들의 바둑에서는 계량화할 수 없는 ‘비틀기’나 ‘흔들기’가 나오는데, ‘알파고’는 이에 대한 훈련이나 감각이 없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말 그대로 기계일 뿐이고, 직관과 감각이 승부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바둑에서, 지금 수준의 ‘알파고’가 프로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알파고와의 승부에서 자신이 5-0으로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행복한 결과이지만, 4-1로 이기는 것은 이변이며, 3-2로 이기는 것은 아주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9단은 첫 대국 후 ‘알파고’의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을 염려했다. ‘알파고’가 어느 정도 버텨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맥없이 무너지면 그동안 한껏 부풀어 오른 인공지능의 신기루가 물거품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였다.

그러면서 이9단은 “‘알파고’의 수준은 그동안 봐 왔던 바둑프로그램 ‘은별’ 등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기력을 갖췄다”며 “다만 사람과 대등한 수준의 바둑을 두려면 몇 가지 보완할 점이 있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보완하는 데는 빨라야 2년 정도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때는 정말 두려울 수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100만달러의 파이트머니로는 안되고, 최소한 300만달러 이상의 파이트머니가 붙어야 대결에 응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이날 자리는 술은 있으되 술자리는 아니었다. 한국기원 관계자와 여러 기자들이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 작은 고량주 한 병을 시켰을 뿐이다. 즉 이9단의 얘기는 술기운에서 한 소리가 아니라 자신에 찬 각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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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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