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장관에게 혼난 최초의 대한체육회장

권종오 기자 2016. 2. 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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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마스포츠의 총본산인 대한체육회의 김정행 회장이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최근의 현안과 관련해 질책을 받았습니다. 1920년 출범 이후 거의 100년 동안 대한체육회의 수장이 장관에게 혼이 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체육회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어제(1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 위치한 대한체육회에서는 2016년 체육 분야 업무보고가 열렸습니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1년 전부터 체육단체 통합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이런 와중에 대한체육회는 11일에 통합추진위원회를 열고 15일로 예정된 통합체육회 발기인 총회 불참을 결정했습니다. 문체부와 일전을 불사하기로 한 것입니다.

김종덕 문체부 장관은 이를 의식한 듯 모두발언부터 대한체육회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작심한 듯이 김정행 회장의 면전에서 질책을 한 것입니다. 김 장관 발언의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젯밤부터 통합체육회 관련 뉴스를 보면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대한체육회에 대해 우려되는 점이 상당히 많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이 지난해부터 계속 추진된 일인데 왜 이렇게 계속 시끄러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한체육회장님이 지금 진행되는 일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어제 대한체육회 통합추진위원회에도 회장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회장님 허락도 없이 통추위가 일을 진행하면서 자신들의 본분을 잊은 것이 아닌지 굉장히 걱정된다.”

11일 대한체육회 통합추진위원회는 이기흥 대한체육회 부회장이 위원장을 맡아 회의를 진행했으며, 통합체육회 정관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다 내용 자체에도 문제가 많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15일 통합체육회 발기인총회 참석을 거부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IOC 승인을 미리 꼭 받아야 하는 거라면 지금까지 뭐하다가 이제 와서 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냐? 통합을 좋은 뜻으로 하자고 시작한 것인데 이런 좋은 뜻을 훼손하는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의심된다”고 조목조목 따졌습니다.

또 통합체육회 사무총장 자리가 국민생활체육회 몫으로 내정된 것에 대한 대한체육회 내 일부 반발 기류에 대해 “사무총장과 선수촌장을 둘 다 대한체육회가 가져가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만일 사무총장을 대한체육회에 주면 또 다음에는 무엇으로 시비를 걸 것인가? 국민은 북한 미사일 발사에 개성공단 폐쇄 등 걱정할 일이 많은데 대한체육회는 자기 자리밖에 보지 않는 것 같다”고 대한체육회의 작태를 ‘밥그릇 챙기기’로 평가 절하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정행 대한체육회장은 “제가 변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 같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지금도 저는 한국 체육이 제대로 단합된 모습으로 가기를 바라고 박수 받는 통합체육회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일 뿐 다른 것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김종덕 장관의 질책에 김정행 대한체육회장이 제대로 항변을 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대한체육회 직원들은 자괴감에 몸 둘 바를 모르는 모습이었습니다. 대한체육회에서 30년 넘게 일한 한 직원은 “한국 스포츠를 대표하는 대한체육회장이 장관에게 혼이 나는 것은 처음 본다”고 울분을 토로했습니다.

또 다른 체육회 직원은 “역대 대한체육회장의 위상은 체육장관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노태우 대통령, 정주영 회장, 김운용 IOC 부위원장 등 거물들이 거쳐 간 자리이다”며,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체육회 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오늘의 사태에 대해 김정행 회장은 하루빨리 직원들에게 사과하고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국가대표 유도 선수 출신인 김정행 씨는 2013년 2월 체육회장 선거에서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을 간신히 꺾고 대한체육회장에 선출됐습니다. 사상 첫 국가대표 출신 회장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현 정부의 눈 밖에 나면서 가시밭길을 걸어왔습니다. 물론 문화체육관광부가 그를 집요하게 괴롭힌 측면도 일부 있지만 본인도 이렇다 할 능력과 소신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자신을 흔들었던 문체부와 정면으로 싸우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문체부의 입장을 통 크게 수용하지도 않았습니다. 중요 현안에서 거의 대부분 이기흥 부회장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시간 끌기’와 ‘버티기’로 일관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김정행 회장은 스스로 “변변하지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스포츠의 수장인 대한체육회장은 변변하지 못한 사람이 앉는 자리가 아닙니다. 장관에게 사상 초유의 질책을 당한 뒤에 제대로 항변도 하지 못한 회장을 따를 체육회 직원은 거의 없습니다. 김 회장은 지난해 대의원총회에서 "자신이 당한 억울함은 나중에 자서전을 통해 밝히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정말 억울하다면 지금 그 속사정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김정행 대한체육회장의 임기는 통합체육회 신임 회장이 선출되는 오는 10월 말까지 보장됩니다. 하지만 "이미 권위를 상실한 그가 앞으로 8개월이나 더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이 체육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의 명예와 자존심에 상처를 안긴 김 회장이 오는 22일로 예정된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어떤 입장을 밝힐 지 주목됩니다.       

권종오 기자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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