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케냐 마라토너 에루페 특별 귀화 무산될 듯

권종오 기자 2016. 1. 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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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케냐 출신 마라토너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28살)의 특별 귀화 여부가 내일(7일) 오후에 결정됩니다. 대한체육회는 이날 서울 올림픽회관에서 제21차 법제상벌위원회를 개최해 대한육상경기연맹이 요청한 에루페 특별 귀화 안건을 심의할 예정입니다. 법제상벌위원회 위원은 모두 17명으로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을 비롯해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15명은 변호사, 교수 등 외부 인사로 이뤄져 있습니다.

심의 결과를 정확히 예단할 수 없지만 대한체육회 관계자와 국내 체육계 인사들은 대부분  “특별 귀화가 승인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도핑, 즉 금지약물 문제입니다. 에루페는 도핑테스트 양성 반응으로 2012년 말 국제육상경기연맹(IAAF)로부터 자격 정지 2년을 받고 2015년 1월에 복귀했습니다.

에루페 측은 그동안 “금지약물 복용은 실수이다. 케냐 이동식 버스에서 말라리아 예방 주사를 맞았는데 그때 문제가 생겼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도핑으로 징계를 당한 것은 분명합니다. 현재 대한체육회 규정은 ‘징계 해지 후 3년이 지나야 대표 선수로 뛸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수영의 박태환처럼 현 대한체육회 대표 선발 규정이 바뀌지 않으면 오는 8월 리우올림픽 참가가 불가능합니다.

대한체육회 고위 관계자는 SBS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에루페가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이 수영의 박태환 선수와 달리 대한체육회 대표 선발 규정(제5조6항)이 생기기 이전의 일이기 때문에 불소급의 원칙에 따라 도핑으로 인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2013년 이전에 금지약물을 복용한 외국인 선수는 얼마든지 특별 귀화를 할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긴다.

또 대한체육회가 에루페의 특별 귀화를 승인할 경우 조만간 현 규정을 변경해 박태환에게도 국가대표 자격을 부여할 것이라는 오해를 줄 수 있다. 만약 에루페의 귀화가 승인된다면 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박태환도 국가대표가 될 수 있게 현 규정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하나의 난관은 한국 육상계의 의견도 통일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이 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 씨를 비롯한 국내 경기인들은 대체로 특별 귀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육상인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한 상황에서 의견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법제상벌위원들이 공연히 논란을 일으킬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특별 귀화를 승인하는 것은 외국인 선수가 대한민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이뤄질 때 가능합니다. 또는 혼혈 선수처럼 대한민국과 어떤 연결 고리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특별 귀화 절차를 통해 한국 국적을 획득한 농구의 문태종, 문태영은 모두 한국인의 피가 섞인 혼혈 선수들입니다.

캐나다에서 귀화한 남자 아이스하키의 브록 라던스키, 브라이언 영 같은 선수들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영입했습니다. 우리나라  실력이 세계적 수준과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들 외국인 선수들을 귀화시킨 것입니다.

국내 체육계의 한 인사는 “농구나 아이스하키처럼 단체 종목의 경우 2-3명의 외국인 선수를 귀화시키는 것은 큰 문제가 안 된다. 한국 대표팀의 한 부분이어서 우리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라톤 같은 개인종목은 다르다. 태극마크를 단 에루페가 메달을 딴 뒤 시상대에 혼자 서 있는 장면과 우리 농구팀이 시상대에 있는 장면을 비교해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3년간 한국에서 열린 5개의 국제 마라톤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에루페는 오는 8월 리우올림픽에서 충분히 메달을 딸 수 있는 선수로 평가됩니다.(2일 취재파일 참조) 이 점은 대한체육회 고위 간부는 물론 법제상벌위원회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항입니다.

하지만 선뜻 특별 귀화를 인정할 경우 각종 논란과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한체육회 법제상벌위원회 17명 위원들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권종오 기자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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