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훈의 언플러그드] 운동선수들이여, 인생의 '플랜 B'에도 충실하라

입력 2015. 12. 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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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독자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불안장애,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2015.11.18.일자 헤럴드스포츠>라는 필자의 칼럼을 읽고 보낸 것이다. 당시 필자는 이른바 ‘있는 자들’의 불안장애를 다루었다. 이 독자는 ‘없는 자들’에게도 불안장애는 심각한 수준이라며 여러 운동선수들의 예를 들었다. 여기서 ‘없는 자들’이란, 프로에 들어갈 실력도 없고, 운 좋게 프로에 들어갔다 해도 경쟁에서 뒤처져 중도에서 탈락하는 선수들을 말한다. ‘가방끈’이 짧아 운동과 관련 없는 직업을 구하기가 힘들어, 이에 따른 불안과 스트레스가 매우 심하다는 것이다. 독자는 결론적으로 운동선수들에게 대학시절 제발 공부를 하라고 당부했다. ‘제2의 플랜(플랜B)’을 가지라는 말이었다.

운동선수가 프로가 될 확률은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다. 그림=블라디미르 쿠쉬 <바늘구멍>

이에 필자는 우선,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 운동선수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얼마나 프로에 들어가는 지를 알아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심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0명 중 한 명만이 프로의 문을 통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는 상상을 초월했다. 미국 대학(NCAA) 디비전I 소속 대학 출신 가운데 남자농구의 경우 1.2%만이 프로 입문에 성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자농구는 1.9%.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미식축구는 1.6%에 불과했다. 축구는 1.9%였으며 아이스하키의 경우 불과 0.8%였다. 야구는 9.4%로 그나마 좀 나은 편이었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볼 때, 대학교에서 운동선수로 뛰었던 선수가 프로에 입단할 수 있는 확률은 불과 2%라는 것이다. 98%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미국 선수들은 대학 후 진로에 대해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나라와 다르다. 이들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제2의 플랜’을 미리 마련해 놓는다. 프로에 들어가지 못해도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직업을 찾기 위해서다. 그래서 대학 4년 동안 공부와 운동을 병행한다. 결국, 졸업과 동시에 이들은 일반 학생들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운동선수들이 비록 프로 진출에 실패했다 해도 다른 직업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미국 대학들이 실시하고 있는 ‘운동선수들에 대한 특별 프로그램’ 덕분이다. 운동 선수일지라도 학점이 4.0 만점에 2.0이 되지 않을 경우, 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놓고 있는 것이다. 또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하기에 이들 대학은 1대1 과외와 같은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운동선수들의 학업을 돕고 있다.

미국 대학들 가운데 운동 선수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가장 효율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대학은 명문 남가주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이다. ‘공부하는 선수 육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이 대학은 학생 선수를 위한 학업 지원(SAAS) 프로그램을 실시,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체육부 산하 21개 팀의 650여 명의 선수들이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으며 공부와 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최첨단의 시설을 갖춰놓아 선수들이 마음 놓고 운동을 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운동 센터 내에 개인 교습시설을 설치, 교수와 운동선수간의 1대1 개인 교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배려한다. USC 출신들이 미국 대학들 중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따낸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의 학업 성적 또한 일반 학생과 별 차이가 없다. 평균 학점이 4.0 만점에 2.98이라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너무나 비참하다. 대학을 졸업해도 영어로 입국 신고서를 작성하지 못하는 운동선수들이 부지기수다. 자연이 이들은 프로에 들어가지 못하면, 달리 취업할 방법이 없다. 그나마 메달리스트가 아니면 체육 관련 기관에도 취업할 수도 없다. 설사 운이 좋아 프로에 들어간다 해도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프로에 입단했지만, 불미스러운 일로 중도 하차한 선수들의 그 후 생활상을 접하다 보면 안타까운 사연을 목도하는 경우도 있다. 프로농구 A 선수는 실력도 출중하여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러나 좋지 않은 일에 휘말려 중도에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은퇴 후 그는 마땅한 일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또 다른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고 말았다.

운동 선수들이 공부를 병행한다는 게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요원한 희망일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나라 운동선수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전도양양했던 한 축구선수가 불의의 부상으로 프로선수가 되는 꿈은 접었으나,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열심히 공부를 하여 변호사까지 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엘리트 스포츠’ 병폐의 심각성에 정부가 정신을 차렸는지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공부하는 운동선수’ 만들기 정책을 시작했다. 일부 대학에서 성공적인 사례가 나타나는 등 긍정적인 신호가 보인다. 대한체육회에서도 운동선수들을 위한 유사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과 체육관현 단체들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선수 자신의 자세이다. 물론, 학창 시절 잦은 대회 참가와 훈련 때문에 수업을 등한시하여 공부하는 방법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몰라서 아예 손 놓고 있는 것 보다는, 좀 늦었지만 다시 시작하는 편이 낫다. seanluba@hanmail.net

*필자는 미주 한국일보와 <스포츠투데이>에서 기자, 체육부장 및 연예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스포테인먼트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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